11월 5~10일

11월 5~10일

[ 가정예배 ]

2018년 11월 05일(월) 11:22
월-믿음의 사람
본문: 민 14:1~10
찬송가: 354장

노재근 목사/감교교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데스바네아에서 각 지파별로 한명씩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40일간 정탐하러 모세가 보내게 된다. 그들이 돌아와서 12명 중 10명은 불신앙적인 보고를 하였고, 이를 들은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여호수아와 갈렙을 죽일려고 한다. 밤새도록 통곡을 하며,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땅이기에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신앙과 불신앙의 대립이 되었다. 그 결과 불신앙의 백성들에게는 죽음이 주어졌고, 신앙인인 두 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는 저주와 축복이었고, 죽음과 삶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악평, 불평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자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끌어 내어 파멸시키려 했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겠다고 불평을 한 것이다. 믿음 없는 말을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하고만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게 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망녕되이 일컬어지고, 더럽혀 질 때에 과연 우리들의 심정은 이와 같은 것인가? 하나님은 이런 자를 찾으신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 정복을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선택과 순종, 인내하는 것으로 믿음을 시험하신다.
 
불신앙의 60만 3550명은 인간적 판단 기준을 가지고, 가나안 정복 전쟁이 불가능하다고 저울질 하여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실하게, 굳건하게 믿지를 않았다. 하나님의 결정에 순종만 하면 되는데, 자신들의 생각만 앞세운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그들을 불러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데, 사람의 말과 10명의 정탐꾼들의 판단을 더 믿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한 사람도 남김없이 광야에서 죽었고, 산 동안 40여 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믿음은 그 가나안 땅의 거민이 우리들의 밥이라서 거저 숟가락으로 떠서 먹으면 된다. 눈 감고도 먹을 수 있다. 그만큼 쉬운 것을 주신 것이다라고 말하자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 믿음이 없으면, 항상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 능히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주께 순종하는 것밖에 없다.
 
오늘의 기도
이 세상에서 매사에 믿음으로 판단하여 믿음의 장부답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화-보혈의 능력으로 살자
본문: 요일 1:5~10
찬송가: 270장

박복점 목사/안식관은빛사랑공동체 원장
하나님은 빛이시다. 어둠이 없으시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사귐이 있어 어둠에 행하지 아니한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는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으로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받은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 하셨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의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믿으며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에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오심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에는 보혈의 공로, 보혈의 능력이 들어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고 용서받는 놀라운 능력이 들어있는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의 빛 된 자녀답게 보혈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첫째로,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한다. 양심에 위배되게 살 때 우리는 거리낌이 생기고 당당하지 못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움츠려들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주님의 보혈은 우리로 하여금 죄로부터 자유함을 주므로 행복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이끈다. 이 믿음이 진리의 시작이요 마침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게 만드는 원동력과 천국으로 잇닿는 은혜의 줄이 된다.
 
둘째로, 말씀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보혈의 능력으로 살아가면 행복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하늘의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을 모른 채 범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속에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씀이 우리 속에 있고 진리, 즉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고, 죄인으로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과정을 통해 보혈의 능력으로 살 수 있다. 하나님의 빛 된 자녀로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기를 원하면, 그의 아들 예수의 피, 곧 보혈의 능력을 믿고 살아야한다. 이 엄청난 복음의 말씀은 개인, 가족, 글로벌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 영향력이 얼마나 파급적인지 온 시대가 증명하고 있다.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진리의 시작이며 마침이 되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자. 거리낌 없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빛 된 자녀로서,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이 시대를 이겨나가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여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어둠을 이기고 빛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본문: 행 18:1~11
찬송가: 399장

최영태 목사/대현교회
사도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쾌락과 향락과 음란의 도시 고린도에 도착했다. 사도 바울은 훗날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 그때의 심경을 고백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었던 이유는 고린도 선교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자기 홀로 남았다는 영적 외로움 때문이었다.
 
실라와 디모데와는 베뢰아에서 헤어져 소식도 모르고, 홀로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 선교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힌다. 주중에는 텐트 만드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안식일에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다. 더욱이 사도 바울은 도덕적으로 감각을 상실한 고린도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심한 영적 거부감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떨었던 바울에게 선물을 주셨다.
 
첫째, 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었던 상황 속에 있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선물을 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둘째, 좋은 사람들과 만남의 선물을 주셨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는 선물을 주셨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부부로 사도 바울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갔다.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내놓음으로 고린도교회가 시작되었다. 또한, 베뢰아에서 헤어졌던 실라와 디모데를 만나게 하셨다. 이들은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 신자들이 준 선교비를 가져옴으로써 사도 바울이 오직 말씀 전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었던 상황 속에 있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응답되는 선물을 주셨다. 사도 바울이 다시 힘내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자 고린도시에 있는 유대교의 최고지도자인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 온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이 일로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아가 고린도 사람들이 사도 바울 편을 들어 기독교로 개종한 회당장 대신 새로 부임한 회당장 소스데네를 끌고 와서는 총독이 보는 데서 유대인을 때려주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주님께서 "주님이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라는 약속을 지켜주시려고 주신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고 오직 주님 말씀만 쫓아가는, 좌절했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약하고 두려워하는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말씀의 선물, 만남의 선물, 응답의 선물을 내려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위대함의 시작
본문: 마 4:18~22
찬송가: 135장

장대영 목사/안강영락교회
콜럼버스가 아무도 이루지 못한 신대륙 발견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고 항해에서 돌아왔다. 축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배를 몰고 바다 서쪽으로 가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어느 날 축하파티에서 다시 이런 말들이 오갈 때 콜럼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달걀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 달걀을 탁자에 세워보시오." 사람들은 달걀을 세워보려고 애썼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달걀 끝을 탁자 모서리에 부딪쳐 살짝 깨뜨리고는 탁자 위에 반듯하게 세워 놓았다. 그러자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사람들은 다시 비아냥거렸다. 그때 콜럼버스가 말했다.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다.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들, 요한과 야고보 형제들을 부르신다. 그들은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던 어부였다.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던 어부가 오직 그 네 사람밖에 없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갈릴리 어부의 전부였다면, 그날 이후 한 동안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이 이쯤 미치게 되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많은 어부들이 있었는데, 왜 주님은 그들을 부르지 않고 하필이면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였을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적임자는 주님과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밖엔 없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들에게서 들을 수는 없으니, 우리 스스로 묻고 대답하며 답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들만 '부른' 것이 아니라, 그들만 '응답한' 것이 아닐까?
 
그날 주님은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향해 베드로 형제들을 부르신 것과 똑같은 말로 부르셨을 것이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나, 아무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나를 따라 오너라"는 말에 그들은 "네가 뭔데?" 했을 테고, "사람 낚는 어부되게 하겠다"는 말엔 "물고기 한 마리 잡아보지 못한 녀석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사람을 낚다니?" 이렇게 비웃는 사람들 속에서 마침내 응답하는 어부들이 있었는데 바로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였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날 그들의 응답은 교회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는 시작이었다. 그때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던 주님은 지금도 다니신다. 지금도 부르고 계시며 찾고 계신다. 지금 내 곁을 지나고 계신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오늘의 기도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금-형통한 자가 된 요셉
본문: 창 39:19~23
찬송가: 490장

여성우 목사/한빛교회
본문을 포함한 창세기 39장의 말씀은 요셉이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신앙의 모습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다. 요셉은 꿈이 있었다. 그 꿈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형제들의 미움을 사게 했다. 결국 그 미움 때문에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는 불행을 맞이하게 된다.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끝이라고 생각할 만큼 절망적이었지만 그의 꿈은 더 화려하고 멋있게 이루어졌다. 형통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로 요셉은 절망 속에서도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워지고 현실이 자신의 꿈과 멀어지는 듯 하면 낙심하고 절망하여 믿음을 잃어버린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것은 절망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둘째로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이 주어진다 해도 그 삶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면 안된다. 흔들려서도 안된다. 지금 요셉의 형편은 자신이 원대하게 가졌던 꿈과는 정반대의 삶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4절 말씀에는 요셉이 주인을 '섬겼다'라고 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솨라트'라는 말인데, '봉사하다'란 의미로 쓰여 졌다. 종으로서 주인에게 성심을 다하여 봉사한다는 말이다. 비록 지금의 처지가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요셉은 언제나 믿음으로 자신의 삶에 성실했다.
 
셋째로 절망 속에서도 요셉은 죄를 멀리하고, 죄와 타협하지 않았다. 주인의 아내가 유혹했다. 그 유혹을 받아들였다면 생활이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셉은 뿌리쳤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셉은 일시적인 영달을 위해 죄와 타협할 수가 없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때 우리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고 그 삶속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하며 죄를 멀리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요셉은 절망 속에서 이러한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한 사람이 된 것이다.
 
오늘의 기도
시대가 어렵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게 하시고 요셉과 같은 믿음으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광야에서 드리는 기도
본문: 눅 18:1~8
찬송가: 364장

이양재 목사/명성비전교회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과 어려움들을 그 권세를 통해 넉넉히 이겨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권세의 핵심은 기도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이 많지만, 그 중에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최상의 특권 중 하나이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요청하신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기도를 드리면 좋을까?
 
첫째,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해주셨다. 인생의 본질은 고난과 탄식과 문제의 연속이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포기는 가장 쉬운 선택일 수 있지만, 그 결과는 가장 비참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지만, 포기한 것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게 된다.
 
둘째, 분명한 기도제목으로 간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한 도시에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찾아가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는 분명한 제목으로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분명하지 않은 제목의 기도는 기도라 할 수 없다. 기도에는 분명한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소원이 있어야 한다. 세상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며 강조한다. 시간을 내어 앉아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창조적인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짧은 인생 가운데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 분명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셋째, 기도의 근성이 있어야 한다.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게 된 이유는 과부의 배경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과부가 계속 찾아와 자신을 괴롭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불의한 재판장은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했으며, 그 과부도 당연히 무시했다. 그러나 과부의 근성은 무서웠던 모양이다. 에스더는 3일 동안 금식기도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아하수에로 왕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민족을 구원하게 되었다. 근성이 있는 기도는 강력한 힘이 있다. 광야는 힘든 곳이지만, 근성을 길러 주는 곳이기도 하다. 광야에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광야에서 근성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라 할 수 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도 근성 있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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