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10월 1~6일

[ 가정예배 ]

2018년 09월 28일(금) 17:49
월-지혜의 말씀을 외치라
본문: 잠 8:1~21
찬송가: 484장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질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혜의 말씀으로 명철과 진리, 사랑과 정의를 가르치고 선포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시고 그 지혜의 외침으로 우리를 깨우치신다.
 
본문의 잠언 8장은 '지혜'를 인격적 존재로 의인화시켜 그 지혜의 권면과 능력에 따르는 유익성을 기술한다. 성경 안에 지혜서는 잠언, 욥기, 전도서이며 구약성경에서 지혜의 의미는 '깨달음(사 33:19)', '지식(잠 4:1)', '신중(욥 26:12)'등 이다. 그 출발점과 목적은 인간의 이성과 관찰, 즉 인간의 지적인 활동에 있으며 인간의 이성과 경험적 관찰을 강조하는 데 있다.
 
첫째, 명철을 외치는 지혜이다. 명철은 사전적인 의미는 '밝고도 밝다'는 뜻인데 사람의 아둔한 머리를 깨우치고 어둠을 비추는 빛처럼 밝은 것을 의미한다. 명철을 신약적 입장에서 해석하면 예수님 자신이고 그분의 말씀이다. 곧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지혜의 말씀이다.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서 명철 즉 지혜의 말씀을 외치셨는데, 길 가의 높은 곳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명철을 선포한다는 말씀은 만나는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둘째, 진리와 사랑을 외치는 지혜이다. 진리를 한자로 '변하지 않는 참된 이치'라 풀이한다. 영어로 진리를 'truth'라고 하는데, 사도행전에는 '도' '길(way)'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길과 진리가 반복되어 쓰임은 그 의미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 증언한다. 진리이신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당신이 진리이고 길 되심을 외치셨다. 주님께서 진리를 외쳐 그를 믿는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셨는데 곧 주님과의 '신비한 연합'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자에게 지혜의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자.
 
셋째, 정의를 외치는 지혜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 양국이 정치적, 경제적 최대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부패와 퇴폐풍조가 상류계층의 타락과 아울러 사회전반이 극도로 타락하여 정의가 무너진다. 그 때에 아모스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외치며 정의의 심판을 선언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공법이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마지막 때에 아모스 선지자와 같이 지혜를 사랑함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정의와 공의를 외치며 명철과 진리와 사랑을 외치는 자가 되자.
 
오늘의 기도
지혜를 외치며 그 능력 안에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이선 목사/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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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섭리적인 경영
본문: 마 17:1~13
찬송가: 384장

본문의 변화산상에서 저명한 구약과 신약을 대표하는 믿음의 선배들을 보게 된다. 모세, 엘리야, 베드로, 요한, 야고보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없지만 하산 시 언급된 세례요한이다. 그들을 보면서 상고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곧 주도적인 결정과 섭리적인 경영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태어날 시대와 날과 장소, 성별, 그리고 죽는 날도 정하신다. 모세는 예수님 오시긴 전 1400년 전에 애굽에서 출생하여, 120년을 살았다. 엘리야는 예수님 오시기 전 , 800년 전에 길르앗 가까운 디셉에서 출생을 하여,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 예수님은 예언의 성취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해 33년을 사셨다. 제자 야고보는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얼마 안 있다가 순교했다. 요한사도는 다른 사도들보다 오래 살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결정으로 이런 시대에 태어나 한 때를 산다. 하나님의 것으로, 평생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둘째는 관계를 결정하신다.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친지, 친구, 그리고 지역교회에서의 만남도 정하신다. 하나님께서 가족 또는 친지, 친구, 교우 관계를 맺게 했으니, 그 관계를 통해 이루실 일이 무엇인지 물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덕을 세워가야 한다.
 
셋째는 그들을 통해 할 일을 결정하신다. 모세는 애굽에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곧 가나안으로 옮기는 일을 해야 했다. 엘리야는 아합이 바알과 아세라를 국교 삼고 있는 때에,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는 일을 했다. 세례 요한은 예언을 따라 엘리야의 심정을 갖고, 주의 오실 길을 예비했다. 예수님은 구주요 주가 되시기 위해 오셔서, 죽고 다시 사시고, 승귀하셨다가 다시 성령님과 함께 오셔, 성도들의 심령에 내주하셨다. 베드로, 요한은 예수님의 구주요 주되심을 말과 인격과 삶으로 증언했다. 모두 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헌신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실 때에는 당신의 실제를 확연히 드러내신다. 모세에게 호렙산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 만나 주시고, 사역하는 동안 전능으로 함께 하셨다. 제자들에게는 변화산상의 경험과 성령 충만케 하심이 있었다.
 
하나님의 자녀인가? 그러면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주도적인 뜻과 섭리적인 경영에 나의 삶을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밀하게 대해 주시고, 그리고 하나님을 누리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일군으로 귀히 써 주신다. 가치와 보람을 챙기며, 후회 없게 하신다. 나의 나 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맺게 하신 관계를 소중히 다루며, 관계 속에 담길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하나님을 누리며, 소명 있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호병기 목사/봉화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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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윗이 받은 축복
본문: 대상 17:23~27
찬송가: 205장

솔로몬은 시편 127편 1절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고백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일인자였지만, 가정만은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이는 가정은 하나님이 세워 주셔야 된다는 뜻이다. 다윗의 가정을 살펴보자.
 
본문은 나단 선지자가 전해 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다윗의 감사기도이다. 19절에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실 것을 약속하셨으니 감사한 것과 23절에 "이제 말씀하신 대로 견고하게 서도록 행하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선지자 나단을 통해 약속하신 두 가지 축복은 무엇일까? 첫째, 8절에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고 축복하셨는데 말씀대로 역대상 18장 6절과 같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둘째는 10절에 "너를 위하여 왕조(가문)를 만들어 주리라"고 축복하셨는데 40년 제위 기간 중 위기를 여러 번 만났지만 하나님이 붙잡으사 그의 가문을 견고하게 하셨다. 이는 다윗과 그 가문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한없는 축복이다. 그 결과 다윗은 죽는 날까지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살았다.
 
그렇다면 다윗은 뭘 잘했기에 하나님은 이렇게 축복하셨을까? 1절에 다윗은 자신은 너무나도 좋은 백향목 궁에 있는데 하나님은 천막 사이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너무 가슴 아파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드리기로 결심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은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할 때 하나님이 반대하셨다는 것이다. 성전은 솔로몬 왕 11년째 완공된다. 다윗의 제위 기간 40년과 솔로몬 11년을 합하면 서원에서 완공까지 51년이 걸린다. 성전건축을 시작도, 완공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셨고 다윗의 왕좌 40년 동안 축복하셨다. 이것이 성전건축의 신비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축복하신 것이다. 요아스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성전수리를 위해 마음에 계획만 했는데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 또 학개서에서도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결심하여 기초를 놓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들에게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셨다.
 
위 세 가지 내용은 성전에 대한 헌신을 말한다. 교회에 대한 헌신은 그 결과를 보고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하겠다는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자.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가고 날마다 구원얻는 자가 많아지도록 열심히 전도해 내가 먼저 겸손과 온유와 사랑으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묶어 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힘쓰자.
 
오늘의 기도
우리 가정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아끼고 잘 섬기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재용 목사/주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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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바라봄의 원칙
본문: 창 13:8~18
찬송가: 383장

몸이 만냥이면 눈이 구천냥이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 몸에 있어서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눈을 통해 보이는 많은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고 대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좋은 눈은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목적하는 바를 위한 많은 유익을 끼쳐 성취하게 한다. 요즘과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먼저 보고 판단해 대응한다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것이다. 생물학적인 좋은 눈도 이렇게 유익하지만, 사물을 보고 그 이치를 분별하는 안목의 중요성은 생물학적 중요성에 견줄 바가 아니다.
 
보는 일에 관하여 어디를 보는가?(방향,대상) 어디까지 보는가?(거리, 깊이, 범위) 어느 각도로 보는가?(시각, 보는 이의 태도, 동기) 그리고 마주 보는지 훔쳐보는지(직면과 회피), 시간을 거슬러 보는지 앞당겨 보는지, 혹은 현미경으로 망원경으로 파노라마로 그리고 우리의 이성과 감성과 영성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다.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갔던 아브람은 그의 조카 롯과 함께 큰 부요함을 이뤄서 돌아왔지만 소유가 너무 많아서 부득이 롯과 분가하기로 한다. 이때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통 큰 양보로 조카에게 선택권을 내어주었고 이에 조카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고 선택하여 이주하게 된다. 롯이 떠난 후에 남아 있는 아브람에게 여호와께서 오셔서 말씀하신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롯은 투자 가치가 있는 기름진 땅을 보는 눈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아브람에게는 좋은 땅을 보는 안목보다 하나님을 향한 탁월한 식견이 있었다. 아브람의 양보는 그저 너그러운 인격의 발로가 아닌 롯이 채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향한 넉넉한 믿음의 안목이 있었기에 여유롭게 내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하나님이 바라보시며 가리키는 곳을 함께 보고 있다. 하나님처럼 멀리 깊이 그리고 온전히 보는 자로 함께 하고 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곳을 함께 보는 자에게 그곳을 하나님은 맡겨주신다. 선지자 엘리사가 거주하는 도단성을 에워싼 아람군대의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만 바라보았던 엘리사의 청년사환은 크게 당황해하며 절망하였지만 그 너머에 둘러선 불말과 불병거로 무장한 하나님의 군대까지 보고 있었던 엘리사는 당황할 이유가 없었다. 엘리사는 당황해하는 사환을 위하여 기도한다.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 기도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궁천수 목사/낙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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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전을 사모하라
본문: 시 84:1~7
찬송가: 208장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다. 고라는 명예욕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레위 증손이요 고핫의 자손이고 이스할의 아들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민족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의 사촌으로 종형이다. 누구 보다 온유하고 겸손해 모세를 많이 도왔다. 그러면서도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는 선봉에 서서 르우벤의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 벨렛의 아들 온 그리고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자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의 권위 앞에 대항했다.
 
고라 자손들은 성전에서 봉사한 자들이다. 병이 날 정도로 성전을 사모하며 봉사했다. 성전에서 봉사하고 성전을 사모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봉사와 예배는 하나님께 기쁨이 될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큰 기쁨이 된다. 시인은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하고 감탄을 연발한다. 2절에서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함이여"라고 했다. 궁정은 성전 뜰(마당)을 말한다. 사모하여 쇠약하다 한 것은 심령이 하나님의 궁정을 너무 사랑하였기 때문에 피곤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와 중에서도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겼다는 표현이다. 마음과 육체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성전을 향한 그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았기에 늘 설레이며 그리워하며 기슴이 뛰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리운 성전을 사모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성도에게는 행복이다.
 
고라의 자손은 모세의 가족만 제사장이 되는데 불만이 있었다. 불만이 있으면 온전한 신앙생활을 못한다. 하나님은 고라를 향해 진노하신다. 함께 했던 자들을 책망하신다. 250명에게 향로를 들고 나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고라 일당들을 따로 서게 하신다. 땅이 갈라지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에게 속한 사람들은 물건과 함께 산채로 땅 속 깊이 빠져 죽었다.
 
고라당이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반역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는다. 그들이 서 있는 기반,기업, 환경, 단체, 사회가 그들을 잡아 삼키게 된다. 고라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회개한다. 성전 문지기로 쓰임을 맏게 되고 성전을 사랑하는 자들로 변화되었다. 그들은 성전을 보금자리로 여겼다. 하나님은 이들을 용서하시고 성전 문지기로 일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크다.
 
교회는 쉼이 있는 곳이다.평화가 있고,영혼의 안식처가 된다. 누가복음 2장 36절을 보면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일평생 성전에서 봉사한 사람이다. 성전을 보금자리로 사는 자는 복이 있다. 우리의 보금자리인 성전을 늘 사랑하고 사모하며 사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성전을 사모하며 봉사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준 목사/곡성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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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해를 선으로
본문: 창 50:19~21
찬송가: 342장

요셉은 꿈꾸는 자이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았다. 장래에 형제들 중에 으뜸이 될 것이라는 꿈이다. 그 얘기를 들은 형들은 요셉을 시기질투하여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 과정은 대부분 성도들이 잘 알고 있을 줄로 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모든 일이 우리의 계획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요셉은 요셉의 계획대로 안되었고 형들은 형들의 의도대로 안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은혜이다. 왜냐하면 나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악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기 때문이다. 본문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이시다. 죄를 의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시다. 만약 우리 가정에 어려운 일이 닥쳤다면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들이 바라는 대로 안 되었다면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큰 고난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때로는 우리도 요셉처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요셉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와도 함께 하신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것이 합력한다는 말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안 좋은 일을 통해서도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잘되면 좋고 안되면 더욱 좋은 것이다. 고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요셉에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형제들을 더욱 집중해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제들에게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은혜를 더하신다. 우리는 요셉같은 모습보다 형제들 같은 모습이 더 강하다. 그러므로 나에게도 큰 은혜이다. 나는 매일같이 악하고 게으르고 추하지만 주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신다.
 
미로가 있다. 미로 안에서는 정말 답답하다. 어디가 길인지 모른다. 방황하게 된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보면 정말 쉽다. 어디로 가야 빠져나갈 수 있는지 훤히 다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은 위에서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출구를 알고 계시고 해답을 알고 계신다.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에 선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해를 선으로 바꾸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바라보시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식구들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 가족이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석하게 하시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용 목사/소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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