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연합기관, 희망을 찾다 ④에큐메니칼 기구와 예장 총회의 역할

한국교회 연합기관, 희망을 찾다 ④에큐메니칼 기구와 예장 총회의 역할

[ 특집 ] 정체성과 지도력 "세우고 공유해야"

안교성 교수
2017년 12월 27일(수) 09:43

안교성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우리 교단은 에큐메니칼 교회이다. 그 이유는 교단의 탄생이 에큐메니칼적으로 이뤄졌고, 교단의 역사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으며, 교단의 신학이 에큐메니칼 신학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대표적인 회원이기도 한 우리 교단은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책임이 그 어느 교단보다 막중하다.
19세기 말에 우리 교단은 선교사의 교회일치운동 분위기 가운데서 시작됐다. 선교 초기에 국내에 여러 장로교 선교부가 활동했지만, 이들은 하나의 장로교회를 세우려고 계획했다. 비록 이 계획은 한때 초교파연합교회 설립이라는 꿈으로 확대되다가 말았지만, 1907년에 우리 교단은 적어도 원래 계획을 실현한 단일장로교회로 출발하였다. 1918년에 우리 교단은 당시 선교사간의 에큐메니칼 기구를 선교사와 민족교회가 함께 동참하는 기구로 확장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력을 공유하였다. 1928년에 우리 교단은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남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1910년 개최)의 산물인 국제선교협의회에 참가함으로써,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무대에 등장하였고, 이밖에도 다양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가하였다.

1948년에 우리 교단은 세계교회협의회 창립총회에 참가했고, 그 이전부터 대회 참가를 준비했고 상징적인 소액이기는 하지만 참가비와 준비비도 분담하였다. 1950년대 전후한 장로교회 내의 연속적인 분열의 결과로, 오늘날의 우리 교단(통합측)이 출현한 것도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오해가 빌미와 원인(遠因)이 되었기에,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 교단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필수적이다. 20세기말 전후하여 우리 교단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여, 교재 발간, 신학교 교육 및 목사 안수의 필수요건으로 결정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 교단이 비에큐메니칼 혹은 반에큐메니칼 교회라고 이해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자기모순이다. 내부적인 정체성 혼란 문제를 먼저 극복하지 않고는, 우리 교단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에 제대로 기여할 수 없다.

우리 교단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참여에 있어서 종종 시비거리가 되는 것은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다. 물론 두 기구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부는 아니고, 완벽하지도 않다. 그러나 적어도 두 기구에 대한 오해로 인한 시시비비는 더 이상 반복하는 소모전을 해서는 안 된다. 비판하더라도, 사실을 확인한 뒤 그것에 근거하여 비판해야 하고, '도 아니면 모'라는 식의 전면적인 반대도 불가하다. 오늘날의 우리 교단(통합측)은 교단 출현 당시, 재결합을 위하여 두 기구와 관련하여 양보한 바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탈퇴 문제는 이 기구가 신설기구이고 국외의 일이기에 재결합을 위하여 양보하였고, 10년간 공백기가 지난 뒤에야 재가입하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탈퇴 문제는 이미 반세기 이상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역사가 있었기에 불가했고, 그 결과 재결합이 진척되지 못했다.

오늘날도 에큐메니칼 운동을 개혁한다는 미명하에, 교단의 세력을 과시하려거나 또 다른 기구를 만들어서 에큐메니칼 운동 판도를 혼란케 하는 일은 적어도 우리 교단은 지양해야 한다. 그런 식의 해결은 궁극적인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사실과 공감대에 근거한 진정한 개혁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당시부터 에큐메니칼 운동은 자기희생을 통하여 보다 넓고 높은 차원에의 발전을 도모하는 아량을 발휘했다. 가령 칼뱅은 개혁교회 발전을 위하여 특정국가에서는 감독제도 허락했다. 

한국의 경우도, 1920년대 캐나다장로교회가 연합교회가 되는 과정에서 캐나다연합교회와 잔류파 캐나다장로교회로 분리될 때, 재한선교사들은 선교지 분할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즉 전자에 소속하기로 한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사역하고, 후자에 소속하기로 한 선교사는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을 위해 사역하며, 후자 소속이되 한국에서 사역하고 싶은 선교사는 전자에 위임하는 조치 등을 썼던 것이다. 교회가 갈라졌는데도 선교지의 연합을 이뤄나갔던 것이다.

이것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에큐메니칼 운동도 신앙운동이기에, 바른 신학과 바른 실천이 필요하다. 흔히 운동은 신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신학은 문제가 생길 때 교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무릇 신학이 없는 운동은 나쁜 정치로 끝난다. 종교개혁운동이 성공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종교개혁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국내 에큐메니칼 기구들이 과연 어떤 신학을 가지고 있는지 염려된다. 

둘째, 에큐메니칼 운동은 신학교육 나아가 교회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먼저 에큐메니칼 교회 체질이 이뤄져야 자연스러운 에큐메니칼 운동이 가능하다. 

셋째, 에큐메니칼 인재 양성이다. 이 과제는 우리 교단의 인재 양성의 보다 폭넓은 틀 안에서 진행되어야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소위 특정 에큐메니칼 집단이라고 하는 이들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설사 과거에는 불가피한 현실이었다고 하더라도, 개방적인 연합운동을 폐쇄적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넷째, 우리 교단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교단의 전반적인 사역 안에서, 전반적인 사역의 일부로 진행되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별동부대 사역이나 생색내기 사역이나 모양새 갖추기 사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단이 함께 가고, 함께 확신을 가지며, 함께 책임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교회, 일치, 선교'를 불가분리한 것으로 전망하셨다. 그동안 우리 교단을 비롯한 한국교회는 이런 전망을 무시해왔다. 그러나 갈라진 교회, 싸우는 교회가 무엇을 이룰 것이며, 이룬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갈기갈기 찢어진 사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교회요, 교회의 하나됨인데. 한국교회의 종교개혁500주년 기념에 있어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회복과 발전은 결코 망각할 수 없는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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