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비종교인, 교회에 무엇을 바랄까?- '포용력'

(18)비종교인, 교회에 무엇을 바랄까?- '포용력'

[ <연중기획>비종교인, 그 절반에 대한 관심 ] "교회, 사회와 손잡을 방법 연구하라"

조주희 목사
2017년 12월 27일(수) 09:27

조주희 목사
성암교회

최근에 맥스 스택하우스((Max L. Stackhouse)라는 학자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에 대한 관심은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이라는 분야에서 출발하는데, 스택하우스는 "공공신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공적인 현장에서 삶의 구조화와 정치화의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학이 교회적 담론만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스택하우스의 주장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그의 지적을 겸허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한국 사회의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한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교회와 사회를 분리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교회가 배타성을 갖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를 끄집어 내려 한다. 

그 동안 성장기의 한국교회는 한국교회만으로 충분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교회의 긍정적 역할은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것이 교회의 열심으로 이어지면서, 교회는 양적 성장을 거듭하게 됐다.

그러는 과정에 한국교회는 인적인 면이나 경제적인 면 모두에서 아쉬운 것 없는 공동체가 됐다. 교회마다 사람이 넘쳐났고, 단순히 사람만 넘쳐난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사회 지도급 리더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한국교회가 가진 경제력 또한 대단했다.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매머드급 교회들이 한국교회의 중심을 이뤘다.

필자는 이것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배타성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스스로 아쉬울 것이 없는 한국교회는 자연스럽게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갖게 됐다. 뿐만아니라 성장하는 교회를 목회하고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기에 신학적 연구나 실제적 노력들이 교회의 성장, 유지, 경영에 맞춰졌고, 신학 교육 또한 이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됐다. 

한국교회는 자연스럽게 사회에 대한 연구를 외면했고, 대사회적 언어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며, 일부 성장하는 교회는 자신들의 문화를 상위의 문화인 것처럼 인식하게 됐다. 목회자들은 교회 내부를 향한 전문가적 특징을 가지게 됐고, 그들의 목회적 지향점이나 언어나 문화는 일반 사회와 점점 더 멀어졌다. 교회의 공동체를 훈련에서도 교회 내부 전문가를 양성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한국교회가 사회의 비종교인, 안티 기독교인들까지 포용하려면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첫째는 신학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교회 내부를 위한 신학의 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자시고 성령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교회공동체가 이 세상을 향해 어떻게 관계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활발한 신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는 교회의 에너지 사용의 방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내부에 집중된 것을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세상을 향한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이제는 교회가 기독교의 진리, 가르침, 가치관을 일반 사회가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일반 사회에 설득력을 갖는 언어의 개발이 시급하다.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며 교회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 공동체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이제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포용의 눈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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