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 30일~11월 4일

[가정예배]10월 30일~11월 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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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6일(목) 18:03

월-소망을 전염시키는 사람들
본문 : 눅 24:13~35
찬송 : 488장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소망이 무엇인가? 물질, 성공, 출세가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소망이다.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인생에 소망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질 때 소망이 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만나 주셔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은혜를 주심으로 그들에게 새 소망을 주신 예수님을 만날 때 소망이 살아나고, 소망을 전염시키는 사람들이 된다.
첫째, 예수님이 동행하면 소망이 다시 살아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동행하지만 눈이 가리어져 있어도 알아보지 못했다. 이것은 오늘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삶의 주인 되시는 분이심을 알고 들었지만 믿음이 없어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영적인 눈이 가리어져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의 꿈과 소망을 빼앗아 갔고, 슬픔에 빠뜨렸다. 그리고 부활 소식도 들었다. 이 부활소식은 전혀 소망을 주지 못했다. 열심히 예수님을 쫓아 다녀서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세상 근심과 두려움과 문제와 답답함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으면 아무리 좋은 소식이 들려도, 아무리 주님께서 내 곁에 계셔서 나와 동행하셔도 그 좋은 소식, 은혜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데 주님이 동행하면서부터 소망이 다시 살아났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을 뜨거워지게 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 것을 음식을 먹으면서 보게 된다. 그때 눈이 밝아져 그들과 함께 동행 하시고 말씀을 자세하게 풀어주시던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알아보는데 예수님은 사라지신다. 이것은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이들은 중요한 것을 나눈다. 그들과 동행하시고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시면서 그들과 동행하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 알고 예수님께서 동행하시면서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경험을 나눈다. 이것이 은혜이고 말씀의 능력이다. 뜨거움은 이들 자신들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뜨거움의 은혜다. 그리고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다.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깨달아질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
셋째, 소망을 전염시키는 발걸음이 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에게 더 이상의 절망을 찾아 볼 수 없다. 아니 이제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이 솟아오른다. 예수님을 만나서 가지게 된 말씀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절망의 자리로 돌아가 소망과 새로운 사명으로 시작한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없던 소망도 생긴다. 식어버린 열정도 회복된다. 마음이 뜨거워진다. 이런 은혜로 부활의 소망을 전염시키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자.

오늘의 기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은혜로 소망이 회복되어지고, 사명이 회복되어져서 소망을 전염시키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경자 목사
제주생명나무학교


화-필요한 것은 시계 아닌 나침반
본문 : 요 14:5~6
찬송 : 94장

인생은 매일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든지 예외없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날마다 걸어가고 있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잘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남은 날 동안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
인생은 자동차 경주가 아니다. 인생은 빨리 가는 것보다 바르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학장을 지낸 에머슨 총장은 "성도는 성공을 위하여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신실함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가치는 성공이 아니라 성실과 충성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과 직분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서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얼마나 빠르냐' 보다, '얼마나 바르냐'가 더 중요하다. 방향 설정이 잘못 되어 있으면 빨리 갈수록 불행한 것이고, 형통할수록 더 완전하게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방향이 바르다면 속도가 느린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조금 늦을 뿐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시계가 아니라 나침반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두 가지의 나침반이 있는데, 하나는 성경말씀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중국 극동 지방에서만 자라는 나무 중에 모소대나무라는 것이 있다. 이 나무는 4년 동안, 3㎝ 밖에 자라지 않는데, 5년째부터 하루에 무려 30㎝씩 폭풍 성장하기 시작해, 6주 만에 15m까지 자란다. 이 모소대나무의 성장에는 비밀이 있다. 처음 4년 동안은 충분히 뿌리를 내리고, 그런 다음 위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모소대나무는 그 어떤 폭풍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대나무 숲을 이루게 된다.
우리 인생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자.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나보다 앞서서 달려가는 다른 친구나, 동료들이 부럽기도 하고, 뒤처지는 것 같지만, 비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는 조금 늦을지 모르지만 천국에서 별과 같이 빛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힘겨운 길인가를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의 아픔과 부족함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과 함께 남은 길을 걸어가자

오늘의 기도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믿음을 주셔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기현 목사
방초교회


수-오병이어의 기적
본문 : 요 6:5~11
찬송 : 421장

오늘 말씀은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만 5000명을 먹인 사건이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어떻게 예수님은 그 큰 무리를 먹일 수 있는 생각을 하셨는지?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나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우리가 말씀을 자꾸 읽고 묵상하면 우리의 생각과 사고가 예수님을 닮아간다. 믿음의 사고로 전환된다. 마가복음 11장 22절에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믿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이다.
이때 안드레가 예수님께 여쭌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앉히신 후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신다. 또 물고기를 가지고 축사하신다. 축복하고 감사하셨다. 예수님께서 축복하고 감사하셨을 때 여기에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다. 거기 있는 사람들을 풍족하게 먹이신 것이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내가 가지고 있을 때는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릴 때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셨다. 다 배불리 먹이셨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을 때와 주님의 손에 올려드릴 때와는 그 값어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께 올려드리면 그때 그때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풍성한 것이 될 수 있다. "너의 작은 지혜와 정성과 노력이 나에게 바쳐질 때 내가 그것에 축복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먹이는 생명의 떡이 되게 하느니라." 오래 전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가진 재능, 정성, 물질이 주님께 올려질 때 주님의 귀한 일을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이미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주님의 일과 뜻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물질만이 아니라 지혜와 재능과 몸도 주님 것으로 생각하고, 작은 것을 가지고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믿음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주님께서 더욱 복되게 하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 아이가 가진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올려질 때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오늘 우리도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먼저 주님께 올려드리는 믿음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란 목사
중리교회


목-율법과 은혜 그리고 교회재판
본문 : 약 1:25~26
찬송 : 305장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는 신앙의 척도이다. 나에게나 남에게 어떤 신앙의 척도를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수준과 질이 결정된다. 어떤 사람은 성경이 말씀하신 것을 엄격한 기준으로 지키기에 힘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적당히 지킨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 세상에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완전치 못하다는 전제 하에 내가 온전치 못해도 된다거나 다른 사람의 신앙에 대하여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던지 나와는 상관없다는 것은 잘못된 교회관이다. 우리가 믿는 거룩한 공교회는 나 한 사람이 아니라 성도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척도 '은혜와 율법 그리고 교회재판'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자.
첫째, 율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율법을 지키지 않음을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우리 자신에게 엄격한 신앙의 척도를 적용할 것을 명하신 말씀이다. 말씀이 말씀대로 지켜지지 않는 자유란 있을 수 없다.
둘째, 은혜는 율법이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루게 하신다.
기독교가 금욕주의 종교는 아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죽이면서 신앙을 지켜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채택한 신앙고백도 언급한다. 은혜없이 율법만으로 구원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 모두는 은혜 안에서 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있다.
셋째, 은혜와 율법은 서로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 일맥상통한다.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은혜이다. 그러나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어떤 값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은혜'이다. 만일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후에도 계속 죄를 지어서 이 은혜를 헛되이 하면 안된다. 은혜와 율법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되는 개념이다.
넷째, 인법과 말씀은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지켜야 한다. 교회의 법도 마찬가지이다. 성경과 신앙고백들을 근거로 대한민국 국가법과 현실적인 상황들을 고려해서 최소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을 기도하고 정해놓은 것이 총회 헌법과 시행령이다. 그러므로 이 헌법을 개인이나 교회나 노회나 총회 어떤 기관도 어겨서는 안된다. 법이 지켜지는 곳에 은혜가 있다. '거룩한 공교회'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특히 거룩한 공교회를 올바른 신앙으로 지키자고 만들어 놓은 헌법과 시행령을 지켜야 한다.

오늘의 기도
거룩한 공교회를 지키기 위해 율법을 잘 지키기에 힘쓰며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류보은 목사
광천교회


금-바른 신앙
본문 : 왕하 23:1~3
찬송 : 516장

오늘 성경본문의 주인공은 유다 왕국의 16대왕 요시야이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다윗 왕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었다.
요시야 왕 때에 낡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율법책을 서기관이 읽을 때 요시야는 지난 과거와 현재의 백성들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옷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통곡하며 회개했다.
왕은 자신의 깨달은 바를 온 백성들에게 가르침으로, 백성들은 언약의 말씀 앞에 결단한다. 지금까지 잘못 섬겼던 우상을 완전 제거하고 유월절은 지키면서 대대적인 종교개혁, 신앙의 바른 모습을 되찾게 된다.
바른 신앙의 기수였던 요시야 왕으로 인해 기우는 국운은 바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마음은 흡족하시게 되었다. 이러한 요시야 왕을 보며 바른 신앙을 되찾고 늘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교훈을 생각해 보자.
첫째, 성전을 수리해야 한다.
성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어디 수리할 곳이 없는가 부지런히 찾아보지 않고서는 바른 신앙의 길에 이를 수가 없다. 오늘의 성전 수리는 예배당이 아닌 우리의 심령, 곧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전을 바로 고치는 일이다. 나를 보고 남을 보며, 다른 성도를 보고 나를 살피면서 신앙의 모습이 어떠한지 살펴야 한다. 바른 신앙이 아닌 것을 찾아내야 한다. 출발은 좋았는데 중간에 비뚤어진 것, 약해진 것, 병든 것, 잘못된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둘째, 성경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요시야 왕의 개혁은 말씀으로 새롭게 된 것이다. 바른 신앙 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그 표준과 기초는 하나님의 성경말씀이었다. 루터도, 칼빈도, 웨슬리도 모두가 그랬다. 성경을 읽고, 듣고, 배워야 한다.
셋째, 실천해야 한다.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을 열심히 행동으로 옮길 때 신앙은 바로 세워진다. 먼저 실천할 것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방해되는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 붙잡힌 옷자락을 벗어던지고 쾌락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의를 지키면서 감옥을 선택했다. 요시야 왕은 우상들을 태워 가루로 만들어 뿌렸다. 악한 이방 제사장들을 죽였다. 하나님보다 더 귀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혹은 누구이든지 깨끗하게 버려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실천할 것은 이웃을 향한 관심과 내 몸처럼 사랑하는 헌신이다. 아끼는 것, 힘써 모으는 것, 선한 일에 쓰는 것, 질서를 지키는 것, 기도하는 것, 선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개혁되어 바른 신앙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이웃을 돕고 사랑하는 것이며, 이렇게 할 때 가정과 교회, 사회와 국가는 바로 설 수 있다.

오늘의 기도
구원받은 저희들이 항상 마음의 상태를 살펴 주님의 성령이 계실 수 있는 거룩함으로 충만케 하시고, 생활 속에서 바른 생활의 열매로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승군 목사
덕신제일교회


토-복된 가정
본문 : 삼하 7:28~29
찬송 : 559장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아니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었다면 그 은혜와 사랑의 길이만큼 나는 사람을 사랑해야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종착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와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시면서까지 보여주신 사랑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정신도, 주님의 기도의 정신도, 십계명의 정신도 주님의 삶을 구현하는 데 있다. 그래야 주님의 제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삶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정에서부터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자기 곁에 두신 가족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 그 어떤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자기 골육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 혈족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십계명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공경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카바드'는 무겁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의 삶의 무게를 존중하는 것이다. 혹여나 부모를 존경하거나 사랑할 수 없어도 그분의 삶의 무게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나이 차이만큼 자식보다 앞서 인생길을 걸어간 부모의 삶에는 자식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있다. 자식이 그 부모의 삶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부모는 자식에게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삶의 무게를 존중하면 비록 늙고 병들고 돈 없는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인생의 귀한 스승이 된다. 
가정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이 태어나, 그 자식이 또다시 자기 짝을 만나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우리의 가정이 주님의 기적적인 은혜와 사랑의 결과임을 믿는다면, 우리 각자 먼저 우리 가족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사랑하는 주님의 통로로 살아가야만 한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가정 속에서 사람이 태어나게 하시고, 가정 속에서 사람이 양육되게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생길을 앞서 걸어가신 부모님의 삶의 무게를 존중할 줄 아는 믿음의 자식이 되어야 하고, 나이 들어 진리를 쫓아온 자기 삶의 무게로 자식들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주는 믿음의 부모로 살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진정으로 한 몸을 이루어 한 인생을 사는 믿음의 부부가 되어야 하며, 한 핏줄을 나눈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일 뿐임을 잊지 않는 믿음의 형제자매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우리의 가족을 사랑하는 주님의 통로가 되어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빚 진자로 살아갈 수 있다.

오늘의 기도
가족을 위해 먼저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 가정이 이 세상을 향하는 생명과 사랑과 진리의 빛을 발하는 출발점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연규용 목사
비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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