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기 총회 주제해설 (4)선교적 존재양식의 관점에서

제102회기 총회 주제해설 (4)선교적 존재양식의 관점에서

[ 특집 ] 교회의 거룩함, 세상 속 선교의 '빛'으로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7년 09월 27일(수) 10:08

선교적 측면에서 보자면 102회기의 주제인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는 교회의 거룩함이 세상 속에서 선교적인 빛으로 드러나야 함을 의미한다. 칼뱅(John Calvin)에 따르면 교회의 거룩함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노력을 통해서 주어지기 보다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칼뱅은 구원론적 측면에서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성자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게 해주시는 영이시지만, 창조-섭리론적 측면에서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의 영(Spiritus Creator)이시기에 교회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성부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영으로 본다. 

따라서 칼뱅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하면서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은 당연히 성령에 의해 이 몸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리는 동시에 몸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그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라는 주제가 암시하듯이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선교적 측면에서 세상 속에서의 거룩함 보다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존재하는 거룩함만을 강조해왔다. 세상 속으로 성육신하신 예수처럼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타락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을 강조하면서 철저히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이해가 강력하게 작동해 왔다. 선교는 교회의 많은 활동이나 프로그램으로 인식되었고 교회의 성장이 교회의 선교의 유일한 목표가 되고 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동일시되었다.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의 성장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하였고 구원론적 측면에서 세상은 교회의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한국교회 안에서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위기'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한국사회가 마주한 위기가 아니라 교회성장이 멈추고 감소하기 시작하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자기중심적인 선교이해는 교회가 선교의 주체가 되는 서구의 기독교왕국(Christendom)의 패러다임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한국교회는 한국사회가 서구와 같은 기독교왕국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리고 자신을 그 속에 있는 교회로 생각하면서 이 패러다임을 알게 모르게 고수해왔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작동되기 시작한 이 패러다임에서 선교는 국가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진행되며, 교회의 확장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가졌다. 또한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된 후로, 서구에서 이제 선교는 국가 밖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문명인(로마인)이 비문명인(비로마인-야만인)을 개도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한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 되었다. 한국에 온 서구의 선교사들도 이런 기독교왕국의 선교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기독교왕국의 선교패러다임을 한국교회가 계속 견지해 온 이유는 서구 선교사들로부터 이것을 부지불식중에 받아드렸기 때문이었고, 이 패러다임이 그 동안 급격한 한국교회성장으로 인해서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패러다임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서구에서 교회와 선교가 위기를 맞으면서 서구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서구교회가 그동안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선교의 주체가 되어서 교단이나 종파의 확장을 목표로 한 선교에 몰두해왔으며,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식민주의정책에 동조하거나 무비판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독교왕국의 선교패러다임은 무엇보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하나님 중심의 선교 이해와 충돌한다. 게다가 한국에서 불교나 유교가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측면에서 온 나라를 주도했던 불교왕국(Buddhistdom-고려)나 유교왕국(Confuciandom-조선)이었던 적은 있어도 서구에서와 같은 기독교왕국이었던 적은 없었다. 이 사실은 해외만이 선교지가 아니라 한국도 여전히 선교지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자신이 마치 기독교왕국에 있는 것처럼 인식하면서 행해왔던 기존의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선교방식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 교단은 하나님의 선교를 지향하는데, 사실 '하나님의 선교'의 핵심은 교회가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선교의 주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성령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도되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로서 세상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가 되어야한다. 사실 문자적으로 '선교'를 의미하는 라틴어 'missio'는 '보냄(sending)'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보내심'으로서 선교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점에서 교회의 사도성을 말할 때 '사도'란 말의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가 '보냄을 받은 자'를 뜻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선교관점에서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구속하시고 변화시키고자 아들과 성령을 보내셨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교회도 또한 세상으로 파송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에 봉사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공동체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고자 하는 선교적 교회는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서 단순히 교회의 기능이나 조직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인 자기정체성에 끊임없이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세상이 하나님의 선교의 장이라면, 해외나 특별한 곳만이 선교지가 아니라 교회가 서있는 모든 곳이 선교지가 된다. 달리 말하면 각각의 교회가 위치한 마을과 지역이 구체적인 선교지이다. 하나님의 선교의 계획은 온 세계와 온 인류를 포괄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를 실행하시면서 아주 구체적인 역사와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교회를 그들이 서있는 마을과 지역으로 파송하시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선교를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곳에 흘러가기를 원하신다. 교회가 구체적인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상황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측면에서 교회는 구체적인 선교현장을 갖는다. 그렇기에 선교적 교회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그리고 교회가 서있는 모든 곳이 선교지이다. 성육신적 차원에서 예수께서 구체적인 상황의 문화 속으로 오셨다는 측면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자신이 서있는 구체적 현장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께서 세상의 사탄적 문화를 비판하고 생명과 부활과 샬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신 것처럼 한국교회도 자신이 서있는 각각의 현장에서 그러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평신도들의 현장에 대한 이해에 귀 기울여야 하며, 교회의 이웃의 소리를 경청해야하고, 사회과학적인 방법들을 통해서 현장을 이해하는 법을 발전시켜가야 한다.

교회는 자신이 서 있는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예시로서 주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적인 통치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한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산위의 동네'로서 세상 가운데 존재하기를 원하신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고, 교회가 드러내는 공동체적인 삶의 증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행동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선교적으로 살고자 할 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와 예수 사이의 사랑의 교제 자체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진리와 거룩함과 사랑과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게 된다(요 17:17~23). 결론적으로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라는 것은 교회의 선교적 소명과 사명을 동시에 드러내는 주제이다. 따라서 이 주제는 성자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의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비전을 품고 성령의 능력을 따라 나사렛 예수로 사신 것처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우리도 성부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성령의 능력을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지역에서 삶의 예배를 통해 거룩한 공동체가 됨을 만끽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마을의 교회로 살라는 요청이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