뚤슬랭감옥과 킬링필드

뚤슬랭감옥과 킬링필드

[ 4인4색칼럼 ]

이대성 수필가
2017년 07월 21일(금) 08:24

이대성 수필가
벨로체피아노대표
진천중앙교회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며 40도를 오르내리는 무척 더운 날이었다. 캄보디아 프놈펜시 330거리 19-21번지에 한아봉사회가 설립한 프놈펜 기독교연합봉사관, 그 맞은편에 있는 뚤슬랭감옥을 방문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벽돌로 쌓은 담장에는 지금도 철조망이 둘러쳐져 오래 전 숨 막힌 공포의 현장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답답함이 밀려왔다. 뚤슬랭감옥은 캄보디아 무장 공산주의 단체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폴 포트 정권에 의해 수많은 지식인과 양민들이 감금당하고 고문에 못 이겨 숨져간 곳이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수많은 애국지사와 죄 없는 백성들이 고문당하고 죽어간 서대문형무소와 같다고 할까? 그 당시에 고문당하고 죽어간 많은 사람의 고통스러운 현장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고문의 흔적과 여러 종류의 무시무시한 고문 도구들, 무고한 생명이 갇혀 있던 어두컴컴한 수십 개의 감방들,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주검의 두개골이 어지럽게 보관돼 있다. 

이곳에 발걸음을 멈추자 당시의 고통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것 같아 온몸에 전율과 소름이 느껴진다. 여기에 수용됐던 1만 4000여 명의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이 단 7명뿐이라고 하니, 그 처참했던 현장을 말로는 다 표현 못해도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뚤슬랭감옥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집단 학살의 현장인 청아익(Choeung Ek). 프놈펜 외곽에 자리한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이 킬링필드는 폴 포트 정권 하에서 뚤슬랭감옥과 프놈펜 인근의 죄 없는 양민들과 지식인들이 고문당하고 학살당해 암매장당한 장소로 많은 사람의 시신이 발굴되고 보존된 현장이다. 

이곳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리며 그때의 아프고 슬픈 역사를 더 깊이 생각나게 해줬다.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통계에 의하면 원리주의적 공산주의 단체인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여 만 명 중 200만 명 이상의 국민을 학살해 캄보디아 역사 중 가장 슬프고도 아픈 과거사로 남아있다. 

'킬링필드!' 죄 없는 수만 명의 양민이 학살돼 묻힌 장소지만 지금은 공원처럼 깨끗하게 조성돼 있다. 중앙에는 희생자들의 두개골이 안치된 거대한 5층짜리 위령탑이 위용을 자랑하듯 높게 서 있다. 주변에는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움푹 들어간 구덩이에 군데군데 파란 잔디가 돋아있고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도 있다. 발굴 당시 구덩이마다 수백 구의 유골이 발견됐으며 구덩이 앞에 쓰여 있는 안내문에는 그때 당시의 참담했던 순간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내가 태어난 이 나라에, 그리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분쟁이 아닌 평화가 늘 함께하길 소망한다. 평화를 유지하고, 평화를 나누며, 후세에 평화를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며 최고의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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