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7월 10~15일

[가정예배]7월 10~15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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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07일(금) 11:30

월-봇물의 법칙
본문 : 잠 21:1~13
찬송 : 384장

봇물은 '보의 물'이라는 뜻으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물을 준비하는 시설인데 둑을 쌓아서 흐르는 냇물을 막아 그 물을 담아 두는 것을 말한다. 봇물이 열리면 마른 땅이 물을 머금고 곡식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열매를 맺게 된다. 본문 1절을 보면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말 성경을 보면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어 강물과 같이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대로 돌리신다"고 번역하고 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손에 있다는 말이다.

2절 말씀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봇물을 터뜨릴 때를 결정하신다는 말이다.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도 감찰하시지만, 우리의 악한 행위도 감찰하셔서 봇물을 닫아 버리신다. 감찰이라는 단어는 '꿰뚫어 보다 세심한 것까지 살핀다'는 뜻으로 남이 안 본다고 사람들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찰하시는 기준이 무엇일까? 어떤 자에게 하나님께서 봇물을 터뜨려 주실까? 첫째, 원칙 경영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봇물을 터뜨리신다. 3절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는 '원칙 경영'으로 공평함과 정직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경영해 나가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합격점수를 얻을 수 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 악인의 강포, 남의 재앙을 원하는 마음은 공의와 정의가 없는 모습이다. 둘째, '부지런함의 경영'에 하나님께서 봇물을 여신다. '부지런함'의 반대말은 게으름이지만 오늘 본문 5절은 '부지런함'과 '조급함'을 비교하고 있다. 부지런함과 조급함은 열심 있는 행동이라는 의미에서 유사하지만 부지런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때를 기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면, 조급함은 내가 나의 때에 나의 뜻을 따라 내 삶을 살려고 하기에 조급한 것이다. 조급함은 '거룩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는 '나만의 열심'이다. 바쁜 사람이 아닌 부지런한 사람으로, 게으른 사람이 아닌 부지런한 사람으로 사는 것 이것이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셋째, '사회적 약자를 향한 경영'이 하나님의 봇물을 여는 방법이다. 13절 말씀처럼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이처럼 귀를 막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자를 하나님은 감찰하셔서 봇물을 막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회적 약자들과 작은 자들을 향한 책임과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에 삶의 봇물을 여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공평하고 정직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거룩한 열심을 내어 하나님의 봇물을 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광재 목사
대조제일교회


화-복되고 형통한 인생
본문 : 시 1:1~6
찬송 : 429장

성경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 의지하여 길을 찾았다. 우리는 다윗과 야곱과 같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 매달림으로 구원을 얻고 승리한 많은 사람들을 주위에서 만날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인생의 승부를 하나님께 걸어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복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믿음이다. 히브리서 11장 6 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 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과 복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믿음 없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제일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복을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육적인 문제도 해결하게 되지만 그것을 통하여 보다 중요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기도해야만 한다. 야곱과 같이 복 주실 때까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철저히 매달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는 말씀을 결국 듣게 되시리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복 주실 기쁨을 느끼실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

복중의 복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복이 아니라 씨와 같은 복이어서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것을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로 늘어나는 놀라운 복이다. 그 복은 씨이기 때문에 심어야 한다. 가꾸어야 한다. 심고 가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심고 가꾼 후 받는 복에 비하면 그와 같은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라. 그럴 때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복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나누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복을 그리고 더 좋은 복을 계속해서 부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나누지 않고 창고만 짓고 혼자서만 그것을 즐기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저들에게 주셨던 복을 거두신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가 그랬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것과 같은 상황 속에도 길은 있다. 하나님이 그 길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의 뜻이 구원이다. 그 구원은 영적인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육적인 구원도 포함하고 있다. 믿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면서 산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복주신다.

오늘의 기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여도 믿음으로 이겨내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병수 목사
성서제일교회


수-사랑하며 사는가?
본문 : 요일 3:23
찬송 : 503장

우리는 지금도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에게 행한 엄청난 반 인권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정작 미안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음식점에서 손님이 종업원을 부를 때도 일본사람들은 "미안합니다"라고 하고 부른다. 이런 일본인들이 당연히 사과해야 하는 문제 앞에 사과를 하지 않고 있지 않다. 일본이 건넨 10억엔은 마치 부자가 가난한 자를 욕보인 후 돈 몇푼을 던져주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와 위안부피해자들을 거지 취급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인들이나 비기독인들이나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표현은 "사랑한다"는 말 것이다. 그 어느 때 보다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아니한가. 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끔직한 사건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말하고 있는 사랑이란 언어의 의미를 알고나 사용하고 있을까? 고양이가 쥐를 좋아하고, 다람쥐가 도토리를 좋아한다. 이 행동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고양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어서 쥐를 좋아하는 것이요. 다람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도토리를 좋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상황에서 좋아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만족을 위해 하는 말이 '좋아한다'는 말이다.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은 때로는 끔직하고 무서운 말이 될 수도 있다. 좋아한다는 표현은 이기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 하라"고.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이처럼'이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사람을 사랑하사 하나님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죄인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것이다. 사랑은 순종과 섬김과 희생이다.

내가 원하는 바 조건이 갖추어져서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것을 가지고 희생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이타적인 행동이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혼돈하지 말자. 좋아하기는 쉽지만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라"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처음부터 사랑하라고 지음 받은 것이다.
사랑하고 사는가? 아니면 좋아하며 사는가?

오늘의 기도
우리는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에, 기호에 맞을 때 좋아만하지 않았는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이웃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 희생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해숙 목사
베데스다교회


목-그리스도인의 신앙 자세
본문 : 룻 1:15~18
찬송 : 543장

본문에는 시모인 나오미를 따르는 룻의 답변이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시적 고백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나오미의 종교까지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그의 율법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룻은 비록 모압 여인이었지만 히브리인의 가정에서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들의 여호와 종교를 배우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이 말은 룻이 아예 나오미의 모국에 귀환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즉 룻이 유대 땅으로 가는 것은 시모인 나오미 때문이지만 시모가 죽은 후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기고 거기서 죽어 묻히게 될 것이라는 결심을 표현한 것이다.

룻은 이 결정으로 인해 이방인으로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윗과 인류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룻의 이 같은 결단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도록 하자.

첫째, 겸손했다. 겸손은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의 태도요 표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누구보다도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 유다의 땅으로 갈 결심을 굳혔을 때 룻은 매우 겸손한 태도를 가졌다. 그녀는 홀로 된 시어머니를 돕고 살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자기의 여생을 함께 보내게 해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룻과 같이 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둘째, 룻의 결심은 진정한 사랑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녀는 이미 나오미와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정이 들어 있었다. 룻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나오미와 함께 유다 땅으로 가는 것이었기에 그 길이 비록 험난하긴 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다름 아닌 룻이 가졌던 것과 같은 신실한 마음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행하는 룻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일이 그야말로 그녀의 최대 목표였던 것이다.

셋째, 룻의 결심은 단호했다. 유다 땅으로 가기로 한 룻의 결심은 확고한 것이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세상의 명예나 물질이나 쾌락을 찾는 것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 한다. 본문을 살펴보면 룻의 신앙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복되고 영광스러운 결단을 도우신다. 우리도 오직 주님께 전부 의지하여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면 이 세상의 영광과 복은 물론 천국까지도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을 따르기로 시작한 우리의 믿음이 어떤 환경에도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경호 목사
대전동안교회


금-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본문 : 시 107:1~9
찬송 : 310장

얼마 전 대중매체를 통해서 뉴욕 출신 외국인 멤버 4명으로 구성된 그룹 이엑스피 에디션이 출연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비록 외국인이지만 한국대중음악을 사랑해 한국에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그룹의 멤버들과 비슷한 나이에 이 나라에 들어와서 미신과 가난에 빠져있던 조선을 구하고 많은 영혼을 구하려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130년 전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이다.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이 땅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젊음을 헌신하며 살았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왜 감사해야 할까?

첫째로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1절은 선하시며 인자가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감사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 영원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있다. 그 인자하심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고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과거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셨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택하신 백성들을 축복하고 인도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를 세우시고 택하신 자들을 복주시고 인도하신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인자하심의 대상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계속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감사하라고 한다.

둘째, 하나님께 속량(구속)받았기에 감사해야 한다. 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속량(구속)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 하나님께서 사방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불러 모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고 그들은 포로생활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시 동서남북에서부터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의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여 주신다.

셋째,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므로 감사해야 한다. 9절에는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복음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 와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언더우드선교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우리도 사모하면 만족을 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성호 목사
광생교회


토-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
본문 : 갈 5:1~10
찬송 : 197장

타락한 이 시대를 무엇으로 변화시킬까? 무너지는 가정들을 무엇으로 회복시킬까? 성령의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한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러므로 어느 순간 갑자기 하나님의 성령이 온 몸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절대 권능 앞에 생포되는 그 평화로움을 우리는 사모해야 된다. '은혜'를 히브리어로는 헨(hen)이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카리스'라고 한다. 헨이나 카리스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라고 말한다. 따라서 은혜라는 말의 뜻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총'이라는 뜻과 '아름답다'라는 뜻이 있다. 은혜를 받으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름다워진다. 또한 말과 행동이 아름다워진다. 우리가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더 충성되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못하는가? 왜 나쁜 말만 골라서 하는가?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이다. 은혜가 무엇인지를 바로 깨달으면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교훈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은혜에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지거나 주식이 떨어지면 아우성을 치고 야단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은혜에서 떨어졌는데도 애통해 할 줄을 모른다. 우리는 영혼의 무디어짐을 두려워해야 한다. 육체가 무디어지면 분명히 병들었다는 증거이다. 심령이 병들면 결국에는 은혜에서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은혜에서 떨어지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첫째로, 은혜에서 떨어지면 믿음이 떨어진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노라." 여기에서 떨어진다는 말은 헬라어로는 순간적으로 밑바닥까지 떨어진다는 의미가 있다. 순간적으로 밑바닥까지 떨어지기 쉬운 것이 바로 믿음이다.

둘째로, 은혜에서 떨어지면 사랑이 떨어진다. 비행기에 휘발유가 떨어지면 땅으로 곤두박질하듯이 은혜가 떨어지면 사랑이 뚝 떨어져 버리고 만다. 에베소 교회는 은혜가 충만했을 때에는 사랑이 충만했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자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고 믿음과 사랑이 식어졌다.

셋째로, 은혜에서 떨어지면 영력이 떨어진다. 사사기 16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삼손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삼손이 전과 같이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그를 떠나셨으므로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더라."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면 영력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주일에 세상 것을 버리고 교회에 나올 힘도 없어진다. 시험을 이길 힘도 없어지게 된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주철 목사
언양영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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