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7월 3~8일

[가정예배]7월 3~8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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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30일(금) 16:04

월-믿음으로 올라가자
본문 : 신 1:19~33
찬송 : 347장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면 불합리하게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 판단이 신앙의 걸림돌이 될 때가 많고 이유가 합당할 때만 따르려고 한다. 신앙은 이성을 초월해야 믿음으로 승리한다. 본문 21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고도 하신다. 사람들이 경제가 어렵다 보니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주의 백성들은 어려운 경제와 사회적으로 처한 난국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으로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신명기 1장의 말씀은 40년 광야생활의 마감을 앞두고 모압평지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말씀인데 과거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던 역사를 교훈삼아 다시는 실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나아가면 가나안 땅은 정탐할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그들은 정탐을 하자고 고집을 앞세운다. 그러나 정탐으로 말미암아 계획도 세우기 전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올라가지 말자 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축복의 길은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자녀들은 이 어려운 경제의 시대를 믿음으로 사시기 바란다.
그들은 정탐 후 원망과 불평에 사로잡혔고 불신앙의 길로 나가게 되었다. 인간이 지식과 경험으로 세상을 안다고 해도 축복의 길을 걸을 수 없고 오히려 불신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축복의 길은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믿음의 길을 걸어 가는 데 있다. 믿음의 길을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예비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며 보호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서 행하시며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 바로를 굴복시키시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 같이 우리 앞에 능력을 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시는 분이신 줄 믿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길을 막는 사탄과 어둠의 세력들을 막으시고 물리쳐 주시고 경제적인 문제나 건강의 문제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살아야 한다.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약속한 말씀과 같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믿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이루어지길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시대를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경옥 목사
신실한교회


화-급변하는 세상, 붙들어야 할 복음
본문 : 요일 5:1~13
찬송 : 94장

복음이란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생명의 씨앗을 의미하고 있으며 예수라는 말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었던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 기름을 붓는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상징하고 있다.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어 우리의 신분이 생명의 씨가 회복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권세를 누리게 되므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이 회복되어 긍정적인 측면에서 세상을 다스리며 승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라고 했다. 즉 예수님께서 인류와 세상과 우주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왕이심을 믿고, 그분이 참 선지자로 말씀의 통치를 하시며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완벽한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을 가진 자라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인 것이다. 그 사람이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다.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담대하라 너희도 세상을 이길 것"이라는 약속이 그 선포 안에 담겨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라는 말은 철저하게 인간을 말하는 것이고 철저하게 하나님이심을 표현하는 말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왜 세상을 이기는 길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씀에 따르면 믿음이 승리의 길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씨 즉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생명의 근원되시는 그분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하나님의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분을 찾고 믿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세상을 승리할 수도 없다. 또한 사단은 사람들에게 죽으면 끝이라고 속인다. 그래서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게 만들어서 돈을 사랑하게 만들고 현세에서의 쾌락과 건강 등이 전부이며 결국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하여 우리를 멸망의 자리로 미혹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큼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없다. 복음이야말로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오늘의 기도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변하지 않는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철봉 목사
성주제일교회


수-진정한 회개
본문 : 삼하 12:1~15
찬송 : 255장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을 때마다 희생제물을 드려가며 제사를 드렸다. 헌물을 통하여 불사르고 죄를 사해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의 문제를 한 번의 희생으로 누구나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 거룩한 성도로 살아 갈 수 있다.
첫째, 진정한 회개는 부패한 독성을 제거해야 한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렘 17:9)"이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가까이 나아가면 갈수록 느끼게 되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죄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우리가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 이렇게 누워도 편치가 않고 저렇게 누워도 편치가 않다. 결국 나중에 먹은 것을 다 토하여 내면 어떤가? 그렇게 속이 편할 수가 없다. 부패한 죄의 독성은 내 속에 체증처럼 편치 못하게 붙어 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말처럼 우리 안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은 죄를 토해 내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둘째, 진정한 회개는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이 넘친다 할지라도 죄악으로 오염된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삶을 정화시켜야 한다. 죄에 대한 자각과 죄인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죄성을 깊이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생활의 요소이다. 죄로부터 돌이키는 신앙 행위는 죄를 포기하는 것으로서, 거룩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성령의 위대한 인도하심이다. 그리고 참된 회개에는 죄를 멀리하는 마음의 변화와 죄에서 떠나는 생활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 진정한 회개는 나를 살리는 길이다.  회개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다. 믿음의 사람 다윗이 가장 진실하게 회개한 사건이 밧세바 사건이다. 나단이 다윗을 단호하게 책망했을 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하였다. 죄에 대한 고백은 회개로부터 출발한다. 나단은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은 다윗을 살려주셨다. 이는 어느 누구도 회개함으로 긍휼을 얻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용서를 하시되 죄는 반드시 책임을 물으신다는 사실이다. 죄를 사하시고 책임을 묻는 것이 두렵다면 회개의 자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성경에는 옷을 찢는 회개가 아닌 마음을 찢는 회개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입술의 회개는 물론, 그 회개에 따르는 변화된 생활, 곧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회개가 나를 살리는 것이며 그 누구도 자신의 죄를 책임 질 수가 없기에 죄의 고백은 회개를 통하여 나를 살리는 길이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성령의 감동으로 깨우쳐 주소서.  진정한 회개는 나로부터 시작되게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형곤 목사
거제제일교회


목-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본문 : 시 131:1~3
찬송 : 459장

오늘 읽은 시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1년에 3차례씩 하나님을 만나 뵙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가는 긴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면서 불렀던 이 노래는 오늘도 우리에게 예배를 위해 마땅히 준비해야 하는 태도를 가르친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건 바로 겸손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이 시편이 가르치는 예배자의 겸손은 무엇인가?
첫째로, 교만을 거절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며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이 교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내 마음이다. 교만은 마음을 높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마음에서 시작된 교만이 어디에 나타나는가? 눈으로 나타난다. 그 다음에 교만은 오만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오만한 행동이란,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를 높이기 위해 큰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큰 일은 이생의 자랑이고, 놀라운 일은 안목의 정욕이다. 교회에서는 공로자가 되지 말아야 하고,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겸손한 자의 마음속에는 고요함과 평안함이 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결코 부산하지 않고 억울하지 않다. 속상하지 않고 기분 나쁘지 않다. 아직도 기분이 나쁘다면 나는 아직도 교만한 사람이다. 어떤 일 때문에 심히 속상하다면 나는 지금도 교만한 사람이다. 아직도 엄마의 젖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는 젖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젖을 달라고 끊임없이 울면서 보챈다. 사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젖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3살 쯤 되면 엄마의 젖을 뗀다. 이제는 엄마의 젖이 없어도 살 수 있다. 엄마가 옆에 함께 계신 것만으로도 마냥 좋다. 신앙생활이 미숙할 때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축복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지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축복만을 구하면 기복신앙이라고 한다. 이런 기복신앙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만족하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겸손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 신앙의 강점이 무엇인가? 하나님 당신만을 기뻐하는 믿음이다. 그의 손에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절대 권력을 맡겨주셨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차지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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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여민 목사
송천교회


금-존경의 영성
본문 : 마 7:12
찬송 : 146장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만나는 동네 어른들에게 반드시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당시의 예절이었고 존경의 표시로 당연히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언제부터인지 인사와 서로 간 존경하는 언어도 사라지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모습, 자기중심주의 생각과 의견들이 선행되어진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가 먼저 대접하라고 가르치고 계신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향한 존경이 사라지고 막말과 비판 비난이 너무 많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많은 지식과 넘치는 정보 그리고 교육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욕설을 하고 반말을 하고 자신의 실력과 자신의 것이 최고라고 뽐을 낸다. 우리가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한 가지, 생명뿐이다. 명예, 권력, 물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두는 누구든지 존경의 대상이 된다. 존경의 영성이 필요한 시대이다. 내 자신이 존경을 상대방으로부터 받으려면 내 자신이 상대방을 먼저 존경해야 한다.
첫째 존경어 동사를 사용하는 영성이 필요하다. 언어는 습관이요, 인격이요, 신앙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영성이다. 우리나라 언어는 동사의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 동사는 낮은 말, 상용어, 존경어, 신격어로 표현할 수 있다. 낮은 말은 반말로서 예를 들어보면 '감사해'이며 상용어는 '감사해요' 존경어는 '감사합니다' 신격어는 '감사를 드리옵나이다' 등으로 표현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엔 상용어 동사도 구사하지 않고 대부분이 동사의 존경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존경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영성의 회복이 필요하다.
둘째, 지난 역사를 만들어 오신 분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역사를 만들어 오신 분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자랑하고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자랑한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부모님께서 계셨기 때문이요, 우리가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먼저 앞선 이들 믿음과 기도와 그리고 사랑과 섬김이 우리 앞에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존경의 영성은 존경받을 만한 일을 찾아내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아무 조건 없이 먼저 존경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먼저 대접을 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먼저 존경하는 것이다. 조건을 찾아내서 존경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며 우리 기독교인의 모습은 아무 조건 없이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생명의 존재로서 존경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에서 존경의 영성이 회복되어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주여 모든 사람을 먼저 대접할 수 있는 존경의 영성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덕식 목사
갈보리교회


토-참다운 용서
본문 : 마 18:21~35
찬송 : 218장

우리는 흔히 용서라는 말을 이해할 때 한두 번 타인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정도를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 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시고 있다. 즉, 용서하되 끝까지 용서해주라는 의미인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를 입으면 보복하려고도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의 모습은 원수 갚는 일을 주님께 맡기고 먼저 용서하고자 힘써야 한다.
당시 문화로 사람의 죄를 세 번까지 용서하라는 랍비들의 교훈이 있었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형제에 대한 참된 사랑으로 무한히 용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용서의 개념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힘으로 결코 청산할 수 없는 거대한 빚을 지고 있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억만 죄악 가운데서 구속되어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으니, 무한하신 그 사랑을 입은 우리가 형제의 작은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다 함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1만 달란트 빚 진자가 자신의 빚을 탕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백 데나리온을 갚아야 한다며 다른 종에게 완악한 모습으로 행동한 것은 인간의 완악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받은 거대한 죄짐을 잊어버리고 타인의 작은 허물을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성도는 구원받은 감격으로 이웃을 용서하며 사랑으로 섬겨야할 의무가 있다. 즉 나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큰 죄를 용서받았는가를 생각해 보아, 주기도문의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의 내용처럼 입술로만의 용서가 아닌 참된 마음에서 하는 용서가 있어야 한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
예수님은 사랑으로 용서하며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누리려 힘쓰셨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도 용서하며 회개할 기회를 주어 다시 범죄치 않도록 하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에게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며 용서를 베푸셨다. 더불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기까지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며 용서를 베푸신 것이다.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 되어 모든 자들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 자녀로 살게 하셨사오니, 그 사랑받은 자로서 이웃을 용서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심남숙 목사
일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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