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 17~22일

[가정예배]4월 17~2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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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15일(토) 19:31

월-가장 귀한 것
본문: 눅 5:1~11
찬송: 321장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파하고 베드로를 제자 삼으신 내용이다.

첫째, 깊은 데로 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파하신 후 시몬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했다. 첫째, 이것은 마음의 깊은 대로가라는 말씀이다. 사람은 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깊은 영혼의 갈증을 안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깊은 대로 가는 일만큼 귀중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얕은 물에서는 큰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들이 고귀한 존재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깊은 자리로 가야한다. 둘째로, 은혜의 깊은 데로 가라는 말씀이다. 시몬베드로는 경험 많은 어부였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 그물을 내렸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았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섭리 앞에 인간이 쌓아온 경험이나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인생을 허탈에서 충만으로 바꿔줄 수 있는 귀중한 것들은 다 깊은 데서 나온다. 고기 잡힌 것 보고 시몬베드로가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것도 깊은 은혜 가운데서 얻어진 자기 발견이며 고백이다. 셋째, 사람들 깊은 데로 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하셨다. 전도자는 얕은 말 따위로 다른 사람을 구원시킬 수 없다. 깊은 사랑, 기도, 갈망, 영성, 헌신이 아니면 다른 사람 구원할 수 없다.

둘째, 시몬베드로가 예수님을 "선생님이여!"라고 불렀다. 시몬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의 선생님으로 봤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고 했다. 지금도 예수님을 선생으로 보든, 한 인간으로 보든, 선지자로보든,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면 기적을 체험한다. 오늘 우리도 말씀에만 순종하여도 많은 은혜와 복이 임한다.

셋째, 시몬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다.
밤새도록 노력해도 얻지 못한 것을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므로 두 배가 만선을 이루자 시몬베드로가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라고 했다. '선생이여'라고 불렀던 그가 '주'로 바꾸어 부른 것이다.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자만이 예수님이 '주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발 앞에 엎드리게 된다. 예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자신을 드리는 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신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후에 시몬베드로는 설교하여 3천명 5천명을 회개시켰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11절을 보면,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예수님을 얻는 것이었기에, 다 내려놓고 좇을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내가 가장 귀한 것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을 좇고 있는가? 오늘 또 한 번 예수님의 깊은 은혜 안에 들어가 그분을 만나고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주님만 따르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복된 성도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숙 목사/좋은교회 


화-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본문: 엡 2:4~7
찬송 : 40장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의미있고 중요한 날은 부활절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고백처럼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크리스찬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고전 15:12~19)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2000년 전 십자가에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시고 나를 살리셨다. 오늘 우리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나의 허물과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일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계시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 부활, 승천의 예수 그리스도가 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의 은총을 믿고 부르심을 받아 이 땅에서 새 사람,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 성전이 되고 아버지의 거하실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일도 크고 중대한 일이지만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게 하셨으니 더욱 큰 은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고, 함께 일으킴을 받았으며,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다. 하나님이 이일을 행하신 이유는 세상을 향한 자비가 풍성하시며 사랑이 크시기 때문이다.(엡 2:4~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이 나에게서 멈춘다면 아브라함의 복은 흐르지 않는다. 오늘 나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받은 복이 흘러가야 한다. 나를 통해서 내 가족에게, 내 가정에, 내 삶의 현장에서 흘러나가서 이방인과 만물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십자가,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으면 이제는 구원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한다. 구원 이후의 나의 삶이 신앙이고, 고백이며 나를 이 땅에서 부르신 내 존재의 목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내게서 멈춰서는 안된다. 나를 통해서 또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내가 누리는 이 기쁨과 감격, 감사를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이 땅을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살아 내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감격이 인격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나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그분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고 작은 헌신이라도 드려서 그분을 이 땅에 심으려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로 하여금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옵소서.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가 만난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보여지게 저를 사용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승일목사/꿈이있는교회


수-죽음을 넘어서 부르는 노래
본문 : 고전 15:55-57
찬송가 : 165장

죽음은 슬픈 것이다. 죽음은 파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것들을 부숴버린다. 꿈도, 사랑도, 학문도, 경험도, 쌓은 재물도, 쟁취한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부서져 한갓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이고, 죽음을 끌어안고 죽음에 붙여져 버린 운명이기에 더욱 영원을 갈망하며 사는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 권력, 명예, 재물, 의학의 힘으로도 죽음의 길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모든 인간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을 '프레이도'라고 표현한다. 부서짐, 파멸, 배신을 뜻하는 말이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부서짐이요, 파멸이요, 배신의 아픔을 남기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죄인인 인간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성경은 또 다른 말로 '타나토스'라고 죽음을 설명한다. 죄의 형벌로 주어진 두려움, 고통을 상징하는 말이다. 따라서 죄의 형벌을 받은 인간은 죽음의 권세에 눌려 두려워하며 고통 할 수밖에 없다.

죄와 죽음의 절대 절망 앞에 통곡하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새롭고 사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히 10:20).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 삼으셔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여 보여주셨다(롬 5:8). 그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은 죽음의 절대 절망을 뛰어 넘어 영생의 절대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5~57)."

태양이 뜨는 아침은 많았지만 무덤이 열리는 아침은 그토록 많은 세월 중에 오직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아침이었다.

2017년 부활의 아침을 맞이한 우리는 주님의 열린 무덤을 통하여 열린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죄와 절망, 고통과 슬픔, 허무와 죽음의 닫힌 세계를 극복하고 무덤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힘입어 구원과 희망, 영생과 환희, 사랑과 승리의 메아리가 온누리에 울려 퍼지도록 열린 세계를 노래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절대 절망의 죽음을 넘어 절대 희망의 부활의 승리를 노래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힘입어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과 환희의 감격으로 살아가는 부활의 증인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청근 목사 / 전성교회


목-부활을 믿습니까?
본문 : 고전 15:1~11
찬송가 : 327장

톨스토이의 명작 '부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몇 십만의 인간이 한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을려놨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쫓아냈어도, 도시에 돌아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태양은 따사롭고 풀은 소생한다." 그렇다. 어찌 오는 봄을 막을 수 있으랴? 그가 말하는 봄은 부활을 뜻한다. 아무리 부정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엄연한 사실이다. 죽은 자의 부활은 인류의 마지막 소망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한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그러면서 증인들을 제시한다. 게바, 오백 여 형제들, 야고보, 12사도들, 바울 자신 등. 부활의 목격자들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특히 바울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는 차라리 혁명이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꾼'들에 대한 지독한 박해자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부활의 증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부활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부활'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있을 우리의 부활을 위한 약속이요 보증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라고 외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고. 첫 열매는 추수의 시작을 의미한다. 주님의 부활은 장차 일어날 우리의 부활에 대한 출발이다. 예수님이 첫 부활이시고, 그분을 구주로 믿는 이들 또한 그분을 따라 부활할 것이다. 이 소망을 가진 이들이 진정한 크리스찬이다. 부활신앙은 '종말론적 부활'을 기다린다.

나아가 부활신앙은 오늘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꾼들은 이미 주님의 부활생명에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실존적인 부활'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예수꾼들은 이미 '죽음으로부터' 그분의 '생명 안으로' 옮겨졌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 생명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주님의 부활생명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톨스토이가 말하는 부활이기도 하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신앙의 핵심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과 미래의 종말론적 부활, 그리고 오늘 그분의 부활생명에 참여함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산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예수님의 부활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의 기도
주님! 진실한 부활 신앙으로 살게 하소서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묵 목사/오산찬양교회


금-부활의 확신
본문 : 고전 15:1~11
찬송가 : 171장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 로마서 8장은 성령장, 오늘 우리가 읽은 고전 15장은 부활장이다. 사도 바울이 부활장을 쓰게 된 배경이 되는 질문이 있다. 고린도 교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첫째, 오래 전부터 성경에 계시된 진리로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의 3-4절은 신학적으로 원복음이라는 불리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초대교회가 사도신경처럼 여겼던 말씀으로서 복음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강조점은 바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성경대로' 이루어진 진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귀가 인간을 타락하는 순간부터 십자가와 부활을 계획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므로 자기가 승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게 되어 성경을 확증하셨다. 성경의 확증으로 우리는 부활을 확신할 수 있다.

둘째, 오래 전부터 살았던 증인으로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을 세우고 있다. 먼저 베드로는 게바로서 주님을 만난 후 베드로라고 이름을 바꾸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십자가에 주님이 못 박히자 게바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게바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찾아오셔서 다시 사람 낚는 어부로서 베드로로 회복시켜 주셨다. 또한 마지막 승천하시기 전에는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셔서 그들이 초대교회의 주축이 되어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가까운 가족이었기에 오히려 주님을 믿지 못했지만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기에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초대교회 지도자로 우뚝 섰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부활의 증인들로 살았던 사람들로 인해 부활을 확신할 수 있다.

셋째, 오래 전부터 계획된 선택을 통해 알 수 있다. 율법에 열심을 냈던 사도 바울은 주님을 멸시하던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다. 그런 그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다. 예수님을 만나니 자기가 죽은 자가 되었다. 오직 길과 진리와 생명은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더 복음을 위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이 고백은 부활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다.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 그 모든 것보다 확실한 것은 내가 믿어진다는 사실이다. 내가 주님의 부활이 믿어지고, 나 또한 부활할 것이 믿어지면 이는 확실한 증거이다. 믿어지는 것이 내 힘과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더욱 큰 확신 가운데 담대하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민상 목사/구미시민교회


토-너는 힘을 내라
본문 : 대상 19:10~15 
찬송 : 347장

지금 우리는 모두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있다. 개인은 물론, 가정, 사회, 나라 할 것 없이 총체적인 어려움들을 만나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당한 모든 어려움들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다윗 왕 시대에 암몬이란 나라가 아람이라는 나라와 연합을 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요압이 그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말씀이다. 요압이 어떻게 연합국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자.

승리하는 삶에 필요한 것은 협력하는 마음이다. 요압은 적들의 침공에 아비새라는 형제와 아주 긴밀하게 협력을 하는데 아비새에게 말하기를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돕겠다고 약속을 한다. 오늘 어려운 시대일수록 협력이 필요하다. 하나보다는 둘의 힘이 강하고 둘보다는 셋의 힘이 강한 것처럼 서로가 협력하고 돕는 마음을 가질 때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요압은 아비새에게 연이어 말하기를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고 격려하고 있다. 이 협력과 격려는 우리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주는 동시에 우리 공동체를 세우고 승리하게 하는 중요한 에너지가 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협력과 격려보다는 비난과 갈등이 더 심화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 비난하고 갈라져서 힘을 빼는 사람이 되지 말고 문제가 많아도 힘든 일을 만나도 서로 힘을 내자고 격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모든 범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오늘 요압은 아비새에게 자신들이 해야 할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마지막에는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바라는 고백을 한다. 이 말은 지금 치루고 있는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의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모든 범사를 겸손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자기 날개 짓으로 날아가는 새는 쉽게 지치고 말지만 바람에 자기 몸을 맡기며 날아가는 새는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며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서로 협력하며 하나님께 겸손히 맡김으로 힘을 내어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원식 목사/포항엘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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