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 10~15일

[가정예배]4월 10~15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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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07일(금) 18:12

월-예수 그리스도, 참된 빛
본문 : 요 9:1~12
찬송 : 428장

짝짝이 양말을 신은 날은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짝짝이 양말로 패션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기업이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조촐하게 시작됐으나, 연간 10억 켤레 넘게 생산한다. '양말을 맞춰 신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슬로건으로. 이 회사의 성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상식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편견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자신과 이웃에게 상처를 입혀 왔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 시각장애인을 만나셨다. 제자들은 '그가 누구 죄 때문에 저리 되었는지'를 여쭈었다. 주님은 단호히 "이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시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른 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리했고, 깨끗이 나았다. 결국 그를 통해 '주님이 누군가'가 또 다시 밝혀졌다. 하나님께서는 한 시각장애자의 아픔을 통해, 아들을 온 천하에 드러내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의 눈을 닫아두셨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 아픔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선포하셨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눈길이다. 우리도 그분의 시각으로, 모든 편견과 상식을 넘어, 자신과 이웃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냥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오늘 내 모습이 어떠하든, 이대로가 하나님의 작품이다. 우린 그분의 계획에 따라 창조되어, 이 땅에 보내진 그분의 자녀요, 그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여전히 질문들이 많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그렇다. 예수님이 인생에 대한 최종 해답이다. 여전히 의문과 모순 덩어리 인생이지만,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 모든 것을 의뢰하자. 그분에게서 삶의 이유를 발견하고, 인생의 목적을 찾아가자. 그분과 함께하는 삶에 참된 인생의 가치가 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단지 생존과 번영을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인생 가치를 찾아나가는 삶이 아닌가? 아니 그분께서 명하시는 삶이 우리의 인생가치이다.
이 순간에도 상처와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영적 시각장애자들이 부지기수이다. 모두 실로암의 은총이 필요하다. 실로암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주님만이 참된 치유의 연못이다. 주님은 오늘도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실로암의 새벽이 이 땅에 가득히 임하기를 소망한다. 주님은 이 소망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곧 주님은 어둠에 잠긴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우린 그 은총을 받았고, 이제 그 은총을 선포해야 할 증인이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가치요, 삶의 의미가 아닌가?

오늘의 기도
나 자신과 이웃에 대한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이 인생의 참된 해답임을 깨닫게 하소서. 온 땅에 실로암의 새벽이 오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묵 목사
오산찬양교회


화-행복한 삶
본문 : 살전 5:16~18
찬송 : 268장

"산 너머 저기에 행복이 있다기에 나는 남들 따라 그곳에 갔다가 눈물만 흘리고 돌아 왔다네. 거기에도 행복은 없었네. 사람들은 말하네. 행복은 또 저 산 너머에 있다고."
독일의 시인 칼 붓세의 '행복'이라는 시이다. 이 시가 보여 주듯이 행복이란 날아가는 파랑새요, 곧 잡힐 것 같지만 닿을 수 없는 무지개와 같다. 그런데 오늘도 이 붙잡을 수 없는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지구상에 70억명이 넘는다. 왜냐하면 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재물을 모으고, 명예도 얻고, 권력도 쟁취하고 싶어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교육도 하고, 결혼도 하고, 제도도 만들고, 예술도 창조해 나간다. 더 나아가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철학과 종교도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행복은 소유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가면서 행복에 대한 아쉬움만 남긴채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하라고 가르치는가? 하나님은 우리들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토라의 말씀 즉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명하신다. 말씀(토라)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갈보리 십자가의 사랑으로 토라를 완성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행복은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절대적인 행복이다. 그 행복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평안이다.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토라)의 본체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의 복을 받은 자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감사(토다)이다. 복이 제단에 뿌려진 피에서 비롯되었음은 일반 영어사전에도 나와 있다. 갈보리 십자가 제단에 뿌려진 주님의 보혈을 통해 인간에게 행복이 주어진다. 사순절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며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행복의 3원칙을 지킴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자.
첫째, 항상 기뻐하는 삶이다. 복음은 기쁜 소식(유앙겔리온)이다. 죽어가는 자를 살릴 수 있다는 소식이야말로 가장 기쁜 소식이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살려 구원받게 하신 크신 은혜에 기뻐하자.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이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천국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유지하는 비결이 기도이다. 기도하면 우리 속에 천국이 이루어진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다. 범사에 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가능하다. 진정한 감사(토다)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토라)에서 시작되고, 진행되고, 완성된다.

오늘의 기도
사순절에 주님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을 묵상하며, 구원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며, 기도와 감사로 천국의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청근 목사
전성교회


수-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
본문 : 눅 18:31~34
찬송 : 341장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길을 잘 걸어가서 행복과 감사를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잘못된 길,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걸어가서 후회와 눈물 가운데 사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실패하고 한 숨 쉬고 후회하는 그런 길이 아니라 행복의 길, 축복의 길, 승리의 길을 걸어가길 원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갈 수가 있을까? 우리는 예수님만 따라 가면 된다. 예수님만 따라가면 마지막에는 하늘 영광 천국이며 이 세상에서는 가장 거룩하고 축복된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신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신 길을 알 수 있는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곳을 다니셨지만 그 최종 목적지는 바로 예루살렘이었다. 예수님은 일생을 사시면서 한순간도 예루살렘을 잊으신 적이 없으며 마지막으로 가신 길은 바로 이 예루살렘을 향한 길이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채찍을 맞고 로마 군병들에게 희롱을 당하며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고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마침내는 그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그런 길이다.
그런 길인 줄 알면서도 예수님은 피하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우리를 살리는 길이고 온 인류를 구원하고 죄와 죽음에서 거지며 영원히 사는 부활의 소망을 주는 길이기에 기꺼이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길을 가셨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 예루살렘의 길이 아니라 세상의 번영과 세속의 성공과 부귀영화의 길을 가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루살렘의 길을 가야한다. 우리의 목적지와 삶의 방향도 예루살렘이 되어야 한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회사, 더 넓고 좋은 아파트, 더 좋은 환경과 삶의 자리가 우리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고난이 있고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야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예루살렘의 길을 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길을 걸어가신 것처럼, 우리도 예루살렘을 사랑하게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원식 목사
포항엘림교회


목-십자가 고백
본문 : 갈 2:20
찬송 : 439장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십자가의 은혜가 나에게 온전히 적용되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십자가에 대한 고백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야할 고백이다.
우리는 무엇을 고백해야 할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도 이 고백의 말씀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면서, 옛사람이 죽었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기뻐하며 말한다. 정말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할 만큼 변화 되었는가? 사실 죽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사실은 뼈저리게 느낀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확인하시길 바란다.
둘째,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사심을 고백해야 한다. 오늘 사도 바울은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항상 이 은혜를 고백하며 살았다. 자신은 질그릇처럼 연약한 존재이지만 보배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계심으로 얼마나 존귀한지 깨닫게 된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사람은 점점 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간다.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안에 계시기에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힘 있게 고백한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감을 고백해야 한다. 오늘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응답하는 자로 사는 사람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 살도록 구원 받았음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주기철 목사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교했다. "사람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십자가를 지려고 하면 십자가가 사람을 지고 간다. 내가 무슨 능력으로 고난을 이기며 무슨 재주로 고통을 참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생명이 내 속에 있으면 죽지도 망하지도 않는 것이다." 나의 십자가를 제대로 지고 주님 따르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 옛 사람은 주님과 함께 죽었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며, 내가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함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민상 목사
구미시민교회


금-감옥에서
본문 : 창 40:9~23
찬송 : 395장

고난주간을 맞으며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며 나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삶인지 살펴보자.
첫째,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다. 요셉이 옥에 있을 때, 바로의 두 신하가 그 주인에게 범죄하고 바로가 노하여 시위대장의 집에 있는 옥에 가두고, 시위대장은 그들을 요셉으로 하여금 섬기게 하는 일들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요셉이 왕의 두 신하를 만나 꿈을 해석해준 일은 요셉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요셉은 어떤 면에서 꿈 때문에 고난을 겪게 됐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은 꿈을 해석하는 은사를 주셨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해석하는 은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로인해 80년간이나 애굽 총리로 쓰임 받았다.
둘째, 희망을 잃지 않고 부탁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한 후 바로의 술 맡은 신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요셉은 당돌하게 꿈 이야기를 하던 옛 모습이 아닌, 겸손하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변화되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시련을 통과하게 하여 겸손을 배우게 하셨다. 아직 두 신하의 꿈을 해몽한 것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확고히 믿고 자신의 앞날을 부탁하는 요셉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성숙한 믿음이다.
셋째, 하나님의 때를 다시 기다리는 인내를 배웠다. 그 후 바로의 생일날 요셉이 해몽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바로의 술 맡은 신하는 요셉의 부탁을 잊어버렸다. 결국 자기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 즉 그의 형제들과, 성실히 섬겼던 보디발, 감옥에서 최선을 다해 섬겼던 관원장마저도 요셉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달랐다. 그것은 꿈이 쉽게 성취되면 요셉이 교만해질 수 있기에, 또 요셉이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의뢰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기에,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른 오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구원계획을 성취시켜 나가신다는 점을 요셉에게 인지시키기 위함이었다. 요셉은 감옥이라는 지독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 배우고 또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 때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가까운 사람도 때로 실망시킬 수 있음을 알았고, 그러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결국 요셉은 외롭고 괴로운 나날 속에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요셉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악의를 표하지 않았고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 고발에도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으며, 보디발에게 그의 아내의 행위에 대하여 말하지 않음으로 그녀의 명예를 지켜주었다. 요셉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지독한 고소를 당했으며, 학대와 비난을 당했으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 동안 낙망하지 않았고, 용서하며 인내하며, 주께 의존하는 것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감옥에서 요셉은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서 있었다.

오늘의 기도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만 믿고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숙 목사
좋은교회


토-고난은 기도를 뽑아낸다
본문 : 출 2:23~25
찬송 : 373장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고난을 겪지 않을 수 없다. 햇볕과 비는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동일하게 주신다. 고난이나 시험, 역경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비껴가지는 않는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도 문제는 항상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과 불신자들은 고난에 대하는 태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믿는다는 것, 하나님의 백성들은 내게 주어진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기회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기도를 뽑아내시고 기도를 통해서 은혜를 베푸신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직접 베푸시기도 하지마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을 통해서 주시는데 이런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대행자라고 한다.
출애굽기 1장과 2장은 요셉으로 말미암아 애굽에 내려가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육체적으로는 농사일과 벽돌 굽는 고된 노동을, 정신적으로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믿음의 사람이라 하고 또 수년을 믿음 안에 있는데도 오늘 내게 어려움이 있고, 일이 잘 안 풀리고, 주변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은 나만 미워하시는 것 같고, 내 기도만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난은 나를 내려놓고 하늘에 것에 집중하라는 하나님의 배려다.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환경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다.(출 2:23~25)
고난이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외면도, 죄의 결과만도 아니다. 고난은 도리어 축복이고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세상을 사랑하시고, 허물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요 3: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내가 용서함 받고, 구원을 받았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서 나를 하나님께 나가도록 하셨다. 고난은 기도를 뽑아내며,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이다.

오늘의 기도
내게 주어진 고난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부름에 응답하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대행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승일 목사
꿈이있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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