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3월 27일~4월1일

[가정예배]3월 27일~4월1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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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23일(목) 16:37

월-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본문 : 고후 13:6~10
찬송 : 488장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고린도후서의 결론 부분이다. 양무리를 사랑하는 바울의 심정이 애절하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바울은 그동안 성도들에게 오해를 받아 현금을 갈취한 자로 취급되었고, 사도가 아니라는 박해도 받았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스스로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이 오해를 벗고, 옳았고 의로웠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고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바른 신앙의 삶을 산다면 나는 버림을 받아도 좋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은 분명 달라야 함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도 양무리들을 위해 자신은 버려져도 좋다는 사랑의 마음을 닮아가길 원하신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한다. 바울은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건 사도이다. 오직 진리를 위하여 삶을 바칠 뿐이라는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고백한다. 진리는 잊어버리고 목전의 물질적 이익에만 눈이 멀어 이웃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런 이들이 주님을 슬프게 하는 사람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뜨거운 열정이 용솟음쳐 진리를 따라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웃에게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이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사도 권을 발동하여 책벌을 가한다고 하면 바울은 강자가 되고 성도들은 약자가 된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약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즉 봉사와 헌신하는 종이 되기를 원했고, 성도들은 진리 안에서 강한 자가 되기를 원했다. 또한 성도들이 온전해지기를 위해 간구하였다. '온전해진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성도들이 진리 위에서 바르고 강하게 성장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사로잡힌바 되어 성도들을 위해 온전하고 강하해지기를 간구했던 바울을 떠올리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삶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래야만 이 나라 이 민족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늘의 기도
저희도 주님처럼 사랑으로 섬기며 눈물로 기도하며 실행하는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종훈 목사
가나안교회


화-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본문 : 롬 8:31~39
찬송 : 304장

사람을 물질적인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사람의 몸을 화학 성분으로 분석한 결과 2.25kg의 칼슘, 500g의 인산염, 252g의 칼륨, 168g의 나트륨, 28g의 마그네슘, 28g의 철과 동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결과가 있다. 이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불과 몇 천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체의 장기를 매매하는 경우로 환산하게 되면 사람의 몸의 가치는 급격히 올라간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장기매매 가격을 근거로 계산하면 사람의 가치가 6억 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런 금전적인 접근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철저히 거래할 수 있는 하나의 물건, 즉 재화가 되고 만다. 따라서 금전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면 사람 하나를 살리기 위해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면 그때부터는 손해 보는 장사가 되는 것이고, 굳이 그 이상의 비용을 들여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션'이라는 영화가 있다. 화성탐사를 떠났다가 화성에 홀로 고립된 우주비행사 한 명을 다시 지구로 데려오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물론 상상속의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우리는 여기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화성에 고립된 한 사람을 다시 데려오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우주비행사 한 사람 구하겠다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느니 차라리 그 돈을 굶주리는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것이 더 옳은 일이 아니겠냐고 주장할 수 있다. 공리주의적 접근에서 보면 맞는 말 같지만 생명의 진정한 가치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우리의 생명의 가치를 신학적으로 접근하면 어느 정도나 될까? 경제학용어 중에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기회비용'은 하나를 얻기 위해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다른 하나가 있을 때 포기하는 것의 가치로 얻는 것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어야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아들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가치 이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을 입은 존재다. 비록 우리의 외모와 지위와 재물은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할지라도 세상의 물질적인 가치나 금전적인 가치나 세속의 관점으로 계산될 수 없는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더 이상 세상에 주눅 들지 말자. 더 이상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이제부터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자. 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겨주신 일꾼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오늘도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이신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오늘도 그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원석 목사
보문중앙교회


수-그리스도로 옷 입었다
본문 : 갈 3:26~29
찬송 : 288장

제주 평화박물관 전시실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사용했던 각종 물품 중에 유난히 사이즈가 작아 보이는 군복이 전시되어 있다. 작은 체구의 일본군은 그 군복을 입고 조선사람 앞에서 힘을 과시했다. 그렇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그들은 군복을 벗어던지고 조선인의 평상복으로 바꿔 입어야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옷은 체온을 유지시키고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입을 뿐 아니라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고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입는다. 옷으로 직업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떤 직업에서 물러 날 때 옷을 벗는다는 말을 사용한다. 이 때 사용되는 의미는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을 그만 둘 때 사용한다. 이와 같이 옷을 입고 벗음은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
성경에도 인간이 최초로 만든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직접 지어 입히신 가죽 옷, 야곱의 편애의 상징이었던 요셉의 채색 옷, 집나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입혔던 제일 좋은 옷, 주님의 빈 무덤가에서 천사가 입었던 흰 옷, 영적 전쟁에 승리를 위해 입어할 하나님의 전신갑주, 계시록에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세마포 옷까지 다양한 옷에 대한 기록이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적으로 옷 입고 있을 것임을 선언한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기는 커녕 보지도 못했는데 아담과 함께 죄인이 된 이유는 온 인류를 대표한 아담과 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인되기 위해서는 아직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이런 것들이 남아 있어 아직은 부족하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할 때 그리스도와 연대되므로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온 인류의 죄가 되었듯이, 공로가 없어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대함으로 의인이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를 볼 때 오직 그리스도의 옷만 본다. 옷 아래 감추어진 죄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그리스도로 옷 입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알 뿐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악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느냐(4:9)"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사탄은 지금도 우는 사자들처럼 우리를 향하여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는가?'라고 의심을 주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3:27)"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와 연대한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를 외칠 때 하나님이 아신 바 되고, 그 어떤 송곳 같이 예리한 사탄의 공격도 그리스도의 옷을 뚫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있음을 확실히 알고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덕열 목사
은혜소리은성교회


목-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본문 : 마 6:1~19
찬송 : 213장

주님은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하는 일에 있어서 주의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한 행위들을 통해 은근히 우리를 들어내려는 교만하고 얄팍한 마음에 경종을 울리신다.
첫째, 구제할 때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 당시 율법을 좀 안다고 하는 자들은 구제하는 일을 할 때 나팔을 불어서 마치 "나 이렇게 좋은 일을 합니다"라고 선전하는 듯 보였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많은 돈을 헌금할 때에 거드름을 피우거나 동전을 쏟아내는 소리가 많이 나도록 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외식적인 구제와 행위들을 본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셨다. 이들의 외식적인 모습들은 자기를 나타내면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이 혹시 우리 안에도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구제를 누가 보지 않는다 해도 은밀히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다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구제를 바라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제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다 보시는 분이시다.
둘째, 주님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신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기도시간이 되면 회당이나 큰 거리에 나와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기도 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과만의 은밀한 기도를 강조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새벽 미명에 제자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시간에 홀로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다. 그러나 외식적인 기도자들은 보는 사람들이 많은 회당이나 길거리에서 기도했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서서 기도했다.
셋째, 주님은 금식에 관해서도 분명한 말씀을 주셨다. 당시의 많은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의 왜곡된 금식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을 금식 하는데 이것을 스스로 아주 대단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금식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억지로 슬픈 기색을 드러내거나 힘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몸을 잘 씻지도 않았다. 금방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금식 중이라는 것을 눈치챌 만큼의 행색을 했다. 그러나 주님은 차라리 "너희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셨다. 오히려 너희의 금식을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오직 숨어서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만 보이는 금식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보이기 위함이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 금식이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금식, 더 나아가 나를 부인하고 겸허하게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진실한 금식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오늘의 기도
오직 주님만이 보시고, 들이시고, 받으시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공철혁 목사
창조교회


금-제자의 자격
본문 : 막 6:7~13
찬송 : 399장

엄마 품에 안겨있는 어린아이는 행복하고 평안하다. '엄마, 아빠가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아이에게는 '엄마가 함께 있느냐 없느냐'가 관심사다.
믿음을 정의할 때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의 믿음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순수한 믿음을 갖기 원하신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주님의 제자가 가져야할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잘 가르쳐 주신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영접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고 그 마을을 떠나기까지 그 집에 유하라고 하신다. 유숙할 집을 옮기지 말라는 뜻이다.
제자의 자격을 생각해본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되어 주님의 일을 할 때에는 주님이 말씀하신 방법으로 감당해야 한다. 제자라 인정받기 위해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기대하고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팔복의 말씀 중 첫 번째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없고, 믿는 구석도 없으며, 의지할 곳도 없는 사람이다. 주님께 매달리는 것 외에 아무런 방법이 없는 사람이다.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나의 방법, 나의 지혜, 나의 수단들을 다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만을 붙잡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주님이 주신 능력과 은혜로만 감당할 수 있다. 주님이 제시하신 방법으로만 열매가 있다.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을 때,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능력이 나타났다.
세상에 향한 기대나 미련을 다 버리고, 오로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내 삶은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담대히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도하심에 대해 내 생각의 잣대로 판단하고, 의심하는 것은 돈이나 옷이나 배낭을 굳이 가져가려고 하는 것으로써,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인도하심에 맡기고 순종하여야 한다. 이것이 제자의 자격조건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모든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오늘의 기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영기 목사
아산온유교회


토-'5기'로 성공하자
본문 : 요 2:1~12
찬송 : 391장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상식과 합리성, 그리고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지 못하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지성, 감성, 상식과 신념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개인기도 생활이 높고 크게 도약하는 만큼 우리를 통한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며 기적이 상식이 되는 복을 받고 크게 쓰임 받는 대열에 설 줄 믿는다.
그러기 위해 5기가 필요하다.
기도 :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대화가 되려면 우선 관계가 돼야 한다. 관계가 될 때 속사정을 전부 털어 놓을 수 있다. 성경의 거인들의 특성 중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기도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크게 기도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기 역량보다 더 크게 쓰임 받았다. 이들은 능력이 자기한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다. 일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기도를 많이 하자.
기대 :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내가 왜 이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이유를 묻는다. 그러나 성경은 침묵한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첫째, 그 시련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함께 동행 하고 계신다. 둘째, 예수님, 내 인생의 선장이 되신다. 셋째, 예수님이 마침내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하신다. 고난이 클수록 위로도 크다.
아픔이 클수록 더욱 큰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기다림 : 기다림이란 나의 예측을 벗어난 것을 기다리는 것도 포함한다. 성경은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들에게 걱정 근심이 물러간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들에게 소망이 생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 : 하나님의 축복은 기회로 환산된다. 최근에 '위기'라는 말이 유행이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 새로운 위기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기(危機)는 위태함과 기회를 합한 단어이다. 위기는 위태함이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도하며 준비하고 기대하는 사람에게만 위기가 기회로 보이며 응답을 받을 수 있다.
기적 :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상식과 합리성에 근거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기적의 삶을 의미한다. 거의 모든 기적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적이 일어난 모든 현장은 문제에서 출발하며, 그 문제 가운데서 주님을 신뢰하고 믿으며 순종할 때 일어났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통해 기적을 창조하신다. 문제 없이는 기적이 없다. 문제는 변장된 축복이다. 하나님을 만날 때 사람이 변화된다. 나의 변화가 진정한 기적이다.

오늘의 기도
위기를 만날 때마다 5기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렬 목사
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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