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3월 6~11일

[가정예배]3월 6~11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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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03일(금) 18:31

월-아름다운 성도
본문 : 사 43:1~7
찬송 : 428장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영광은 영예, 찬양, 명성, 광휘, 엄위를 뜻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은 그분의 현존과 연관되어 있는 때도 있고, 그분의 신적 본질이나 신적 존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때도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나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런 광채가 나타나게 한다는 의미다. 사도 바울을 통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천지와 만물이 창조 목적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자기의 할 일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께 찬송으로 영광을 돌리자.
우리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찬송 받을 이'이시며, 예수님은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받으시는 분이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여 함이니이라.",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셨다. 찬송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찬양)을 말한다.

둘째, 이웃에게 선행에 힘쓰자.
예수께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시며,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선행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라고 하셨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셋째, 의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아름다운 성도다.
예수께서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맺어야 할 이 아름다운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인 성령의 열매 즉 사랑의 열매다. 아름다운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에게 선행으로 하나님의 빛을 비추며, 자신에게 의의 열매를 맺는 성도이다.

오늘의 기도
위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에게는 선행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며, 성숙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식 목사
화순장로교회


화-성도는 주님만 바라본다
본문 : 히 12:1~3
찬송 : 83장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아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 영광의 면류관을 쓸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면 된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성도는 어떤 모습일까?

겸손하다. 남을 내려다보면 교만해진다. 나보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내려다보면 무시하게 되고, 나보다 가난한 사람을 내려다보면 멸시하게 되고, 나보다 낮은 사람을 내려다보면 천시하게 된다. 겸손하려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아무리 지식을 갖추고,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최고의 자리에 앉았을지라도 전지하신 하나님,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겸손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겸손한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경건하다. 삶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 쾌락과 향락에 물질과 시간을 허비한다. 향락과 방탕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아가려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거름더미와 같은 곳에서도 장미꽃처럼 필 수 있고, 시궁창 같이 썩은 곳에서도 연꽃처럼 필 수 있고, 죄악으로 어두워진 곳에서도 등불처럼 빛을 비출 수 있고, 부패하여 무미건조한 곳에서도 소금처럼 맛을 낼 수 있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경건하게 사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다. 현대인들은 가치관을 상실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이 근본적이고 지엽적인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잘못된 가치관은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게 만들고, 잘못된 목표는 잘못된 삶을 살게 만들고, 잘못된 삶은 인생을 병들게 만들고, 가정을 무너지게 만들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데 올바른 가치관은 윤리 도덕이나, 철학이나 어떤 종교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지게 된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소망을 가진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도 10~30대 청년층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고, 자살 원인 중 80%가 우울증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절망은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빠지게 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소망을 가지고 힘차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라.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승리의 인생이 되어 영광의 면류관을 쓰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현세 목사
황금동교회


수-영웅본색
본문 : 창 49:22~26
찬송 : 288장

충신과 간신은 나라가 어려울 때에 구별이 된다. 대간(大姦)은 사충(似忠)이라고 큰 간신은 오히려 충신처럼 보이지만 나라가 어려우면 본색이 드러난다. 믿음도 성도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울 때, 힘들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인식하고 경험하게 되지 않는가?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된 영웅의 본색을 이제 세상에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타남 같이 말이다.

첫째, 영웅은 문제 앞에서 드러난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골리앗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문제에 봉착해 있을 때 다윗이 나타났다. 평상시에 큰 소리치고 왕으로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무시하던 사울왕이나 너 같은 목동이라고 다윗을 비난한 형과 군사들은 골리앗이라는 문제앞에서 숨고 두려워하며 작아졌다. 그 때 다윗은 '영웅본색', 즉 하나님을 경외함과 믿음의 담대함으로 골리앗 앞에 나타난다. 그 실력이 발휘된다.

욥은 10자녀가 죽고 재산은 강도에게 모두 강탈당하고 자신은 병들고 아내마저 떠난 상황에서도 그 신앙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정금같이 될 것을 기대한다. 믿음 있는 척, 잘난 척, 십자가 메달고 교회인 척 하지만 진짜인가? 영웅의 본질적 면모를 가지고 있는가? 교회에 가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이 전부일 수 없다. 세상속에서 수많은 문제 앞에서 그 믿음이 드러나야 하고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우리로 인해 드러나시게 해야 한다.

둘째, 믿음은 사명앞에서 나타난다. 다윗이 영웅인 것은 문제속에서 사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말을 들을 때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고 칼과 창에 구원이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리라는 사명이 그를 골리앗 앞에 나타나게 했다. 세계적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네 가지 사명으로 인생을 산다고 말한다.
하나,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 나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어느덧 3월이다. 세월 따라 살지 말고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어려운 때에 문제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풍성함으로 더욱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게 하시옵고 세월을 아껴 주신 책임 감당하여 하나님의 영광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현 목사
양평명성교회


목-사명감을 가지고
본문 : 사 49:1~7
찬송 : 552장

어떤 사람이 사람 인(人)자 여섯 자를 써놓고 이렇게 읽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그렇다 육신을 입었다고 다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도 있다.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출생해야 하고, 거듭나야 하고, 마지막으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첫째,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 둘째, 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 셋째,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사명이 있다. 그러므로 사명을 발견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등에가 되어 부패하고 타락한 시민들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고,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한국독립의 대업을 사명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일까?

첫째,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우리는 내가 할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복중의 있을 때 이미 우리를 부르셨고 할 일을 맡겨 주셨다.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다. 예수님이시다. 여러분이 잘하는 일, 맡은 일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삼으셨으니(엡 4:11)"라고 하셨다. 교회에서 하는 봉사나, 직업적으로 하는 일이나 어떻게 하다보니 이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심부름 맡긴 것으로 알고 사명을 감당하기 바란다.

둘째,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이나 직업적인 일을 주신 것은 소득을 얻어 밥 먹고 살라고만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주셨다. 그래서 신앙인이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얼마나 남는가? 얼마나 힘이 드는가 하는 문제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자신의 유익이나 체면이나 감정이 기준이 되면 안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명자들은 자기 힘으로 하면 안 된다. 경쟁의식을 가지고 누구보다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문제가 된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사명은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할 힘도 주신다. 사명을 받았다면 걱정할 것 없다. 누구든지 사명자는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지옥가야 마땅한 죄인들을 부르시고 사명까지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지영 목사
충절로교회


금-마카리오이의 복
본문 : 마 5:1~3
찬송 : 412장

진정한 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 성경에서 나오는 복의 뜻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베리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물질. 소유, 번영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 22,28절에서 이 복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다. 신명기 28장 2~3절을 보면 성읍과 들에서도,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물 그리고 우양과 새끼에도 미친다.
둘째는 '아쉬레'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행복, 만족, 평안, 기쁨을 의미한다. 즉 심적인 복을 말한다. 그런데 본문 3절에 나오는 복의 단어는'마카리오이'이다. 이것은 복중에 최고의 복을 말한다. 이 복은 단순히 심리적인 행복 이상의 의미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복도 뛰어넘는다. 그리스 고전에서 이 단어가 신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주관적인 행복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행복이다. 또한 단순히 외부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지고의 행복을 가리킨다. 즉 이는 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최고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3~10절은 '마카리오이'를 소유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소개한다. 즉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바로 그들이다. 참된 복은 성품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여덟가지 성품을 다 합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된다. 그러므로 참된 복은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과 같게 되는 데서 온다.

많은 사람들이 복은 소유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소유하려고 한다. 재물을 많이 소유하려하고, 권력을 많이 소유하려고 하고, 세상적인 것들을 많이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귀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많이 소유하면 행복한가? 부자들은 다 행복한가? 많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다 만족하며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가? 오히려 많이 소유한 까닭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불안해하고 다투는 것이 그들의 실상이다. 소유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지 못한다. 소유함으로 행복해지려는 것은 베리카의 복에만 머물게 된다. 아쉬레의 복은 없다. 베리카의 복은 얼마동안 우리를 편리하게 할 수는 있지만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마카리오이의 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 즉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바꾸어질 때 마카리오이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복, 참된 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해 인생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질과 행복지수는 달라지게 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오늘의 기도
얼마를 갖기 원하기보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에 욕심 내고 우리의 귀한 인생을 투자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송규 목사
예일교회


토-환영받는 불청객
본문 : 눅 7:36~47
찬송 : 369장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가 있다. 돌담길에 버려진 강아지 똥은 배설물이고, 냄새가 나기 때문에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슬퍼한다. 오늘 본문에는도 강아지 똥처럼 소외된 여자가 등장한다.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예수님을 찾아온 여자는 누구일까? 

첫째, 자신을 안다. 불청객이자 죄인으로 낙인찍힌 여자가 예수님을 초대한 시몬의 집에 찾아온다. 여자는 주인에게 매우 불쾌한 방문객이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예수님 곁으로 간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발에 눈물을 쏟고, 입을 맞추고, 머리털로 닦는다. 시몬은 여자의 생뚱맞은 행동과 이를 만류하지 않는 예수님을 의아해 한다.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시고 시몬에게 물으신다.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과 오십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 둘 중 누가 주인을 더 사랑하겠느냐?" 예수님의 상식적인 질문에 시몬 역시 상식적으로 대답한다. 예수님께서 정말 하시고 싶은 이야기의 본론은 지금부터다. 그렇게 상식이 있는 사람이 어찌하여 손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느냐는 말씀하시는 것이다.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하고도 발 씻을 물도 주지 않고, 입맞춤의 인사도 하지 않고, 뙤약볕에 걸어 다닌 사람의 머리에 감람유 몇 방울을 뿌리는 예의도 차리지 않는다. 시몬은 죄인과 어울리지 않는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면서 은근히 예수님을 폄하한 셈이다. 이와는 달리 여자는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했다. 예수님은 여자가 시몬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았으므로 사랑함이 많다는 말씀을 하신다. 시몬의 깨달음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시몬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반면 여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음으로 예수님을 찾고, 죄의 길에서 돌아선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둘째, 믿음이 있다. 유대교나 카톨릭은 행위 구원을 강조한다. 율법을 지킴으로 혹은 선을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주장한다. 시몬도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줄로 생각하는 바리새파이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여자에게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7:50)." 여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의 올무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잃어버린 행복과 자유와 생명과 기쁨과 평안을 얻는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의 결과는 생명과 구원과 평안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들을 가까이 하신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 구원의 은총을 허락하신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시고, 구원 받을만한 믿음을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삼영 목사
포항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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