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2월 27일~3월 4일

[가정예배]2월 27일~3월 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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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24일(금) 11:39

월-거듭났는가?
본문 : 요 3:1~15
찬송 : 288장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고 유대인의 지도자이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국회의원에 해당한다. 신앙은 보수주의자요, 정치적으로는 애국사상이 강한 사람이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리고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고 당신이 하는 표적들을 보니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등 칭찬을 늘어놓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라고 묻는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심령을 꿰뚫어 보시고 말씀하시는데 니고데모는 뚱딴지같은 말을 하고 있다. 거듭남이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출생하면 동사무소에 신고를 하면 주민등록 번호가 주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처럼 거듭나면 생명록에 이름이 등제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출생으로 땅에 속한 사람이 되고, 거듭남으로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된다. 사람은 육적인 탄생으로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의 방법은?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물로 나는 것에 대해 세례라고 많은 신학자들이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영세나 세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지 않는다. 세례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하는 신앙고백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물은 회개를 의미한다. 물로 더러운 것을 씻는 것처럼 회개함으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수양이나 도덕적인 실천으로 거듭날 수 없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는 성령의 도우심을 뜻한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이 믿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도 이해 할 수 없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이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죄에 대해서 민감해진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죄에 대해 민감하고 혹시 죄를 범했다면 속히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안 지으려는 결단을 한다.

거듭남의 결과는 무엇인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다. 거듭나면 증거가 있다. 첫째,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고 했다(롬 8:16). 듣거나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 둘째, 범죄하지 않는다. 죄를 범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은 땅에 속한 사람이다. 거듭나면 죄를 싫어한다. 멀리한다. 그리고 선과 의를 행한다. 셋째, 말씀에 맛을 느낀다. 건강한 사람은 밥맛이 좋은 것처럼 거듭난 사람은 말씀의 맛을 느낀다.

오늘의 기도
거듭난 사람답게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지영 목사
충절로교회


화-죽은 나무에 봄은 오지 않는다
본문 : 요 15:1~8
찬송 : 436장

겨울에 보면 나무가 다 죽어있는 것 같다. 봄이 되어야 비로소 죽은 나무와 산 나무가 구별이 된다. 살아있는 나무여야 봄이 오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아무리 봄이라 해도 죽어 있는 나무는 싹이 나지 않는다. 꽃은 말 할 것도 없다. 성도라 해도 다 성도가 아니다.

믿음이란 종교적 의식, 형식이 아니다. 교회 다닌다, 예배드렸다, 봉사 한다는 형식 속에 내용으로서의 생명이요, 내 삶의 주인 되신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이다.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나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죽은 나무에게 봄이 무슨 소용이랴.

첫째, 주님께 붙어 생명을 가져야 한다.나무가 남쪽을 향한다고 싹이 나지 않는다. 비료를 많이 준다고 자라는게 아니다. 생명이 있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성도란, 그리스도 예수로 사는 사람들이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안에 주님께서 사시는 것이다(갈 2:20).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기에 나무로부터 오는 영양분과 수분을 온전히 공급받을 수 있다. 오직 주 예수님으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과 거룩함과 은혜의 풍성함을 누린다(엡1:3~7).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서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고 고백한다. 사울왕은 주님께 붙어 있지 않음으로 실패했고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님께 붙어 있음으로 승리했다. 요셉도 종으로 살면서도, 감옥에서도 주님께 붙어 있음으로 하나님의 형통케 하신 은혜를 누렸다.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주님께 붙어 있자. 주님편에 서서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자.

둘째, 풍성함이 있어야 한다. 생명 있는 나무는 살아있음을 기초로 하는 풍성함을 마음껏 드러낸다. 오늘 우리는 생명 있는 자로 그 풍성함을 나타내야 함에도 '누구 나무가 크냐? 내 나무 굵다'는 것을 요구하고 자랑한다. 그래서 불평과 원망이 많고 다툼과 시비가 가득하다. 무성해져서 많은 이들이 깃들게 되어야 하는 일은 관두고 그저 장작으로나 쓰이고 만다. 더 많은 재물과 성공만을 목표로 신앙을 갖고 더 많은 양의 장작으로서의 요구와 소원만 가지고 있다면 구원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풍성함과 주님으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갖는 하나님의 자녀 됨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가야 한다. 그렇게 풍성한 삶을 살아가자.

오늘의 기도
보혈의 은혜로 생명과 구원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신 주님으로 살아서 그 생명의 열매로 풍성하여 주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현 목사
양평명성교회


수-환상방황에서 벗어나는 방법
본문 : 시 119:105~112
찬송 : 379장

소설가 황순원 씨가 쓴 '링반데룽'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짙은 안개나 세찬 눈보라를 만났을 때 제일 안전한 방법은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데서 날씨가 호전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관계나 식량 사정으로 부득이 다음 목적지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때 보통 등산자는 자기가 목표한 곳을 향해 곧장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자신도 모르는 착각에 의해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둘레를 빙빙 돌기가 일쑤이다. 이것이 이른바 링반데룽이라는 것으로, 사람에 따라 왼편으로 돌기도 하고 오른편으로 돌기도 한다. 그러다가 결국 세찬 눈보라나 짙은 안갯속에서 등산자는 이 환상방황을 하다가 조난을 당하게 된다." 스스로 '똑바로 걷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링반데룽이란 독일어로 원을 의미하는 링(Ring)과 방황을 의미하는 반데룽을 합한 링반데룽이다. 앞으로 나아간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출발했던 원점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링반데룽, 환상방황은 우리 삶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위기에 처하게 되면 사고력이 둔해지고 삶의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 방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방향을 알려주는 기준점이 없으면 똑바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어 있다. 자기 안의 링반데룽, 환상방황에 빠지지 않도록 나만의 확실한 등대가 있어야 한다. 시대가 변화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등대. 변하지 않는 등대가 있어야 한다. 그 등대를 보고 우리 인생은 걸어가야 한다.

본문 말씀에서는 확실한 인생의 등대를 제시하고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 인생은 순풍에 돛을 달고 행복하게 항해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성난 파도를 만나 사경을 헤매일 때도 있다. 원치 않는 파도를 만날 때에는 그 절망의 늪에서 사투를 벌여야만 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인생의 칠흙 같은 밤에 파도와 싸울 때 저 멀리서 등대의 불빛을 발견하게 된다면 얼마나 희망적이겠는가? 얼마나 기쁘겠는가? 얼마나 은혜이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말씀으로 돌아오라. 길이 보일 것이다.

도무지 사건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말씀으로 돌아오라.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듯 풀릴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말씀으로 돌아오라. 삶의 뚜렷한 목표를 갖게 된다. 가장 안전하게 우리를 항구로 인도할 것이다. 모든 문제에서 해결하는 답을 줄 것이다.

오늘의 기도
어려움을 만나 방황할 때에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길을 찾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송규 목사
예일교회


목-잃는 것과 얻은 것
본문 : 창 32:18~25
찬송 : 284장

탈무드의 이야기다. 랍비는 로마의 황제에게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랍비의 이야기를 들은 황제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은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갈비뼈를 훔쳤으니 도둑이라고 해야 마땅하겠군." 그러자 곁에 있던 랍비의 딸이 재치 있게 지난밤에 도둑이 들어서 금고를 훔쳐간 후 금 그릇을 놓고 갔으니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부하를 한 사람 빌려달라고 한다. 황제는 그런 도둑이라면 우리 집에도 들러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이때 랍비의 딸은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를 훔쳐내신 대신 여자를 남겼지요"라는 지혜로운 대답을 한다. 역설적인 진리이다.

오늘 본문에도 이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야곱은 타향살이 20년 만에 장인이자 외삼촌인 라반과의 불협화음으로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의 귀향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의 쌍둥이 형 에서는 야곱의 귀향 소식을 듣고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에게로 오고 있다. 진퇴양란의 상황에서 야곱은 얍복 강가에 홀로 남아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신다. 야곱은 인식하지 못한 하나님과 밤새 씨름을 한다. 날이 샐 무렵, 하나님은 야곱의 집요함을 떨치기 위해 그의 환도뼈를 치신다. 곧 떠나시려는 참이다. 야곱은 아랑곳하지 않고 축복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축복 대신 야곱의 이름을 물으신다. 동문서답이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께서 왜 야곱의 신체의 기능을 훼손하시는가? 해답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 그러나 이어지는 본문에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야곱은 신체 기능의 일부를 상실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에서와 화해하고 생명을 건지는 큰 복을 받는다. 자신의 육체와 꾀에 의지해 살던 야곱은 실패한 인생이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는 승리한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난다.

둘째, 하나님은 왜 야곱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생뚱맞게 이름을 물으시는가? 야곱의 이름은 '속이는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물으심으로 그의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뉘우치게 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을 주신다. 이스라엘은 변화된 인격이다. 얍복 강가에서 과거를 청산한 야곱은 육체적으로는 절뚝거리는 인생이지만 영적으로는 환한 태양 아래 선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야곱은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건강과 생명 혹은 소중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시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잃은 것이 아니라 더 큰 복을 받은 셈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되 단지,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하실 뿐이다.

오늘의 기도
거듭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육체나 꾀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삼영 목사
포항노회


금-내 이웃, 네 이웃
본문 : 눅 10:25~37
찬송 : 220장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선택의 자유'라는 책에서 "앞으로 새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한스 싱거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은 "사람들의 마음 자세라"고 했다.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하나님은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예수님의 권세가 내 권세가 되고, 예수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되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알게 될 때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이웃 사랑을 통해 나타내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된 믿음의 사람이며, 이웃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거짓된 행위의 사람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믿음이라 하고, 이웃을 향한 사랑을 행함이라고 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믿음과 행함이 균형을 이룬 산 믿음의 사람이 된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나 죽게 되었는데, 제사장, 레위인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 중 이곳을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어 주고, 자기 나귀에 태워 주막에 데려다가 돌보아 주고, 다음날 떠나면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주인에게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고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물으셨다. "이 세 사람 중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 "나를 사랑해주고 도와줄 내 이웃이 누구냐가 아니라 네가 사랑하고 도와줄 네 이웃이 누구냐?"

사람들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없고 나를 사랑해 줄 이웃만 찾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사랑해줄 이웃을 찾지 말고 내가 사랑할 이웃을 찾고, 나를 도와줄 이웃을 찾지 말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이웃이 되어 주어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다. 사랑이 강력한 능력이며, 이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새 시대의 새 힘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여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시대를 이끌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현세 목사
황금동교회


토-무엇이 문제인가?
본문 : 마 19:16~22
찬송 : 570장

삶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죄의 문제(시 32:1, 3), 불확실성의 문제(잠 27:1),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재난과 고통의 문제, 궁핍의 문제(상대적 빈곤, 영혼의 빈곤), 죽음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문제들의 해답을 가진 사람이라면 소유와 능력에 상관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성경은 다섯 가지 문제가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결됨을 선포하고 있다.


첫째, 예수를 나의 주 그리스도로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 20:31)."

둘째, 우리 앞서 행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으로 평안케 된다(민 23:19, 잠 3:6, 시 23:4).

셋째, 주의 도우심으로 형통케 되어 승리하게 된다(롬 8:28).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넷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족하며 풍성한 삶을 누린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다섯째, 예수 안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요 5:24, 요일 5:11~13). 예수를 믿는 사람은 더 이상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는다. 모든 죄는 사해졌으며, 주께서는 우리의 가는 길을 동행하시며 형통케 하실 것이다. 오늘 화를 당하였다 할지라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궁핍할지라도 자족할 수 있고, 더 이상 세상의 것으로 인하여 목말라하지 않고, 오직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하게 된다(요 14:6).

오늘 본문에 엘리트 청년이 영생의 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왔다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다고 한다. 해답을 찾았는데도 자기가 가진 물질 때문에 돌아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인생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나의 인생이 어떻게 결론이 날 것 같은가? 본문의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영생의 문 앞에서 돌아서서 또 다시 세상이 주는 근심의 짐을 짊어졌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오직 예수시요, 우리의 영원한 희망은 오직 예수이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오늘의 기도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며 우리를 모든 눌림에서 자유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다가 주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식 목사
화순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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