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월 23~28일

[가정예배]1월 23~28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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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0일(금) 18:02

월-새해의 결심
본문 : 스 7:1~10
찬송 : 200장

 새해가 되면 사람마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기로 다짐한다. 그 결심의 내용은 제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술 담배로부터 자유하고 싶어 금주 금연을 결심한다. 어떤 사람은 늘 운동이 부족하다고 느껴 운동을 규칙적으로 실천해 건강의 회복을 결심한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에 힘쓰셨듯이 새벽기도를 해 보겠다고 결심하고 다짐한다. 다 결심할만한 것들이다. 그렇게 잘 실천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본문 말씀 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고 했다. 이스라엘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민족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새로운 결심이었다. 새해를 맞은 우리도 이러한 결심을 해보자.
 첫째,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요 생명의 양식이다. 육신인 사람이 육신의 양식을 통하여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또한 영을 가진 사람은 영의 양식인 성경을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십시오' '말씀을 들으십시오'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읽는 것. 듣는 것도 필요하지만 에스라는 연구하겠다고 결심했다. 연구하겠다는 말은 더 적극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말씀에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성도들이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주의깊게 연구하는 자세로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연구한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자. 본문에서 에스라는 "준행하여"라고 했다. 왜 말씀을 깊이 연구해야 할까?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준행하기 위하여 연구한다. 신앙은 지식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즉 삶의 실천의 문제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어려움은 말씀대로 실천하여 살지 않음이 문제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내 이익을 하나님 말씀 보다 더 앞세웠다는 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 이익보다 교회의 유익,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셋째, 연구하며 실천하며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자. 에스라는 본문에서 또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고 했다. 내가 연구하여 확신에 서야 가르칠 수 있다. 또 내가 먼저 실천하며 가르쳐야 권위가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었다는 말이 이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와 믿는 성도들의 숫자는 적었지만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가르쳤기 때문에 교회가 권위가 있었다. 권세가 있었다. 그래서 나라에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 우리도 이런 결심을 하여 교회를 새롭게, 나라를 새롭게 하자.
 
 오늘의 기도
 에스라가 결심한 내용이 나의 결심이 되게 하시고 또 이 결심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셔서 보다 나은 성숙한 삶을 살아 교회와 나라를 새롭게 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화종 목사
노인요양원 솔향


화-참 즐거운 우리 모임
본문 : 빌 2:1~4
찬송 : 220장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한 삶을 알려 주고 있다. 첫째는 하나됨이다. 같은 마음, 같은 사랑, 뜻을 합한 한 마음이 되라고 하신다. 펭귄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그들은 '허들링'을 한다. 서로 모여든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위치를 바꾼다. 밖에 있었던 펭귄은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 있었던 펭귄은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수많은 펭귄의 무리가 하나로 모일 때에 추위를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서 살게 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한 분이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 예수님의 사랑이 서로에게 전해지고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케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겸손이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다. 다툼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과 싸워 이기려고 하는 이기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상대방 위에 올라서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허영은 '내용 없는 영광이나 자랑'을 의미한다. 그것은 교만이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이것이 바로 겸손이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람은 다투지 않는다. 허영심이 없다. 그런 곳은 평화롭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충만하다.
 셋째는 성실이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보라"고 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자기의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 각각 자기의 일을 돌보라는 것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자기의 일에는 충실하지 않으면서 남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넷째는 섬김이다. 자기의 일을 다 했다고 뒷짐 지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일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 약하기에 미처 다하지 못한 사람의 일을 거들어 주는 것, 일이 너무 많아서 지쳐 있는 동료를 살피며 도와줘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주 예수님으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이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충만하게 된다. 서로 주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는 곳, 모범을 보여 주신 주님의 겸손과 섬김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도와주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참 즐거운 우리들의 모임이다.
 
 오늘의 기도
 서로 사랑하고 겸손하며 섬김으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참 기쁘고 즐거운 가정, 교회, 직장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석환 목사
증평제일교회


수-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본문 : 렘 33:1~11
찬송 : 365장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옥중에서 두 번째 받은 계시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에 대한 언약의 말씀이다. 지금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시험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실망하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축복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이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 와서 옥에 갇히고 계속적인 억울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고난아 오너라. 내가 상대해주마!'라며 고난 속으로 더 들어가므로 총리가 되어 가족과 민족을 구원했다.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오면 고난 속으로 더 들어가면 축복이 더 가까워진다.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은 축복의 마지막 관문이며 축복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련이 올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고난을 기뻐하며 부르짖으라. 부르짖어 기도하면?
 첫째, 반드시 응답받는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께서 당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라고 하신다. 큰 소리보다 내면의 울음, 내면의 아픔으로 부르짖으라는 말이다. 상한 마음 애통한 마음으로 부르짖으면 고난이 끝난다. 부르짖으면 더 이상 응답을 늦출 수 없는 성품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주시고 회복시키신다.
 둘째, 큰 영역의 사람이 된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입을 크게 열면 입이 찢어진다. 입이 찢어지면 아픔이 있다. 아픔을 통해 크게 찢어진다. 내 작은 영적영역이 아픔을 통해 넓어진다. 큰 영역의 사람이 된다.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열방을 품고 그 영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찢어지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 아픔을 통해 크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 큰 나라, 큰 교회, 큰 사업, 큰 일꾼 만드시려고 찢으신다.
 셋째, 높여 주신다. 우리 하나님은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에도 자기 자식을 높이지 않는 부모는 없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낮아지는 비결은 고난을 받아야 낮아진다. 낮아진 자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고난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고 답답해서 부르짖는 자를 높여 주신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한단계 한단계 높여 주신다. 부르짖음을 통해 더 겸손하라.
 넷째, 영적인 사람이 된다. 고난을 너무 많이 받으면 세상에 미련이 없어진다. 세상에 만족이 없어진다. 영혼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이 된다. 바울의 고백처럼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고난을 통해서 영적인 능력을 얻게 된다.국가적인 아픔이나 개인적인 고난이 금년에 반드시 결실이 될 것을 확신하며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어 기도하라.


 오늘의 기도
 기도가 답인 줄 믿고 부르짖는 한 해가 되게 하셔서 큰 영역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해욱 목사
대구열린교회


목-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자
본문 : 요 1:19~23
찬송 : 528장

 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임금이나 고관대작들이 행차할 때 반드시 앞에서 "쉬이~물럿거라! 임금님 행차시다!" 혹은 "누구누구 대감마님 행차시다"라면서 길을 예비하는 종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갈도(喝道)라고 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그 길을 먼저 예비하는 한 종이 있었다. 그가 바로 세례요한이다. 세례요한의 사역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소리로서 사역했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라고 했다. 소리는 외치고 사라진다. 소리는 형체가 없다. 사람들은 소리를 통해서 내용을 파악하고 난 후 그 소리의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례요한은 소리로 사역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인기가 엄청나게 올라가고 심지어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관심이 집중될 때 그는 "나는 그 선지자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자신을 부정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 사람의 심령에 전달되도록 소리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예수님만을 높이고 우리는 사라지는 소리로서 사역해야 한다.
 둘째로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사역을 했다. 세례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선언한다.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사역이란 사람들의 죄 문제를 지적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을 위한 길, 출세를 위한 길, 부와 명예를 위한 길을 닦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좋은 말,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 시대의 죄 문제를 지적하며, 그 시대의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했다. 우리도 상처나고, 깨지고,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교만한 마음을 낮추고, 왜곡되어서 굽은 마음은 곧게 펴서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사역을 해야 한다.
 세 번째로 광야에서 사역했다. 세례요한의 외침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고 했다. 산 속에서 외치는 소리는 돌아오는 메아리라도 있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다 퍼져 버리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힘이 빠지고 맥이 풀릴 때가 많다. 그러나 누가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세례요한이 계속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의 사명을 감당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다. 우리도 당장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인정을 받거나 인기를 끌지 못할지라도 계속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세속에 우리의 마음을 팔지 말고, 세속적인 문화에 우리의 거룩한 삶을 섞지 말고, 외롭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진리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 만약 진리가 제대로 외쳐진다면, 그리고 그것에 생명이 있다면 사람들은 몰려올 것이다. 마지막 때에 주의 길을 잘 예비하여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마지막 때에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오시도록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새숲교회


금-행복으로 나아가는 길
본문 : 창 32:3~12
찬송 : 370장

 하나님은 '화해자'이다. 화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길 원하셨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의 길을 가로막는 많은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라며, 먼저 희생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희생해 주기를 원하고, 배려하기보다 자기 욕심만 챙기며 살아간다. 결국엔 우리 모두가 행복하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은 모두 버려야 한다.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할까?
 첫째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 야곱과 에서는 형제임에도 원수가 되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복을 가로챘기 때문에 에서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없었다. 어느 날 야곱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고향을 향해 떠났지만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을 짓누르는 부담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야곱은 도망치지 않고 용기를 냈기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요건 중 하나는 '두려움'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신다.
 둘째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야곱은 형 에서를 찾아가기에 앞서 사자를 보내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돌아온 사자들로부터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을 때 야곱은 더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두 때로 나눠 혹시 있을 줄 모르는 에서의 공격에 대비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먼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다윗왕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았기에 그의 삶은 형통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었다.
 셋째로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진심은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야곱이 진심을 다하여 에서에게 다가섰을 때 에서는 야곱의 마음을 받고 화해, 용서를 이룰 수 있었고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었다.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섰을 때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 주셨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는 이 약속은 야곱을 통해 이루어 주셨다.
 
 오늘의 기도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진심을 다하는 노력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이 땅위에 소외되고 고통 받는 자들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행복의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은탁 목사
아름다운교회


토-삶이 곧 예배다
본문 : 롬 12:1~2
찬송 : 214장

 크리스찬은 삶이 곧 예배이다. 그래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영적 예배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삶 속에 만나는 사람이든지 머무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힘쓰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때는 예배의 삶 속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자기의 신앙을 의심하고 믿음이 떨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좀 더 개인의 영적 프로필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무엇을 어떻게 누구에게 드려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프로필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로, '나는 어디에 열정이 있는가?'이다. 하나님은 작게는 가족에서부터 많게는 세계 가운데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하셨다. 서로의 지경이 있는 것처럼 섬겨야 할 대상과 장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심령 가운데 그 무엇을 사모하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개인 또는 공동체가 그것을 찾아 섬기는 것이 열정이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의 기준으로 높은 것 많은 것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후미지고 어두운 곳까지 빛을 내시는 분께서 우리의 열정으로 오셔서 그 곳까지 섬김의 사랑을 베푸신다. 내가 섬길 곳이라면 반드시 기쁨이 충만해 질 것이다.
 둘째로, 내가 받은 은사이다. 은사는 높고 낮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영적 은사를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고 나면 기쁨은 똑같기 때문이다. 누구를 섬긴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섬길 수 있도록 영적인 도구를 주셨다. 그것을 구원과 함께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은사를 모르고 남을 섬기는 것은 목적도, 결과도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영적 은사를 가지고 섬기며 좀 더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도록 우리의 능력을 더하여 주신다. 또한 기쁨도 충만해진다.
 셋째로, 개인의 스타일(성향)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일을 할 때에 결과중심 일중심인가하면, 어떤 사람은 사람중심이다. 체계적인 사람, 또는 비체계적인 사람 등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나는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가? 나를 발견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도록 사람을 보내신다. 어떤 사람들에게 보내실까?
 내가 가야할 곳이 바로 내가 기쁨으로 영적 예배로 드려야 할 곳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의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할 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더욱 충만하게 하옵소서. 나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에 게으르지 않게 하시고 회복의 기쁨을 늘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경자 목사
우리쉼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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