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19~24일

[가정예배]12월 19~2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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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6일(금) 16:54

월-구속사를 위해 살았던 여인들-룻
본문 : 마 1:1~16
찬송 : 342장

마태복음의 족보 가운데 세 번째로 등장하는 여인은 룻이다. 그리고 기생 라합처럼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모압여인'이었다. 룻은 모압 사람이었고 신명기에서의 선언처럼 여호와의 총회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이방여인이었다. 그런 룻이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주한 나오미의 며느리가 된다. 그러나 나오미의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을 비롯한 두 아들 기룐과 말론이 죽게 되고 룻은 시어머니 룻과 함께 과부가 되는 슬픈 운명의 여인이 되고 만다. 그리고 룻은 나오미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머니를 모시고자 하는 마음, 어머니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여호와의 총회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었던 모압여인의 운명이 바뀌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 것이다. 룻은 베들레헴으로 와서 이삭 줍는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죽은 남편의 친족인 보아스와 결혼을 하게 되고 보아스의 기업 무름을 통해 예수님의 조상 중의 한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질문은 여호와의 총회에도 들어올 수 없었던 이방여인이었던 모압여인 룻이 베들레헴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등장하는 한 여인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보아스를 통한 은혜를 입은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그녀의 옆에 끝까지 있고자 했던 룻의 성실함이 또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고 자기를 먼저 챙길 수 있었지만 룻은 어머니의 삶을 먼저 보았고 어머니의 인생을 책임지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다말이 한 생명을 낳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을 통해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다면 기생 라합은 자신의 집으로 숨어들어온 두 명의 정탐꾼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 것을 통해 영광을 얻었다. 부지중 한 일이 아무 계산 없이 했던 일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게 되었다. 룻 역시 자신 보다는 자신의 어머니, 자기의 안위보다는 어머니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긴 그녀의 태도가 구속사의 계보로 들어오는 은혜를 입게 했던 것이다.
 
오늘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걸어가야 할 나의 가족 그들을 책임지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은 곧 나에게 허락하신 구속사의 삶을 향한 여정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부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흔들리는 이 세대에 가정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이, 가정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를 지닌 나의 자세가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나를 사용하시는 거룩한 믿음의 계보를 이루게 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내가 섬겨야 할 부모, 존중해야 할 가족을 지키고 함께하는 성실함으로 구속사를 이어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성욱 목사
꿈이있는교회

화-청지기의 사명
본문 : 벧전 4:7~11
찬송 : 450장

2016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본문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살아야 한다. 본문은 주후 60년 전후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은 박해를 받을 때에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베드로에 의해 집필된 것으로 특히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고 말씀한다. 그러면 청지기의 사명은 무엇일까?
 
첫째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말씀은 '때를 의식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염두에 둔 말씀이지만, 한편으로 개인적인 종말도 포함된 말씀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다. 말세에 주님은 기도하는 믿음을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는 아무리 책을 오래 붙들고 있어도 소용이 없듯이,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권능을 얻고 시험도 이겨낼 수 있다.
 
둘째로 뜨겁게 사랑하되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 해야 한다. 사랑은 서로 줄 줄도 알고,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뜨겁게 서로 사랑하면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씀한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 준다. 어떤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남의 허물만 들추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 모두는 용서받은 죄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있겠는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자.
 
셋째로 서로 대접하는 것이다. 9절에서는 단순히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 없이 대접하라'고 말씀한다. 원망 없이 대접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하고 사심이 없어야 할 것이다. 교만한 마음으로 사심을 가지고 대접하면 나중에 꼭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듯이 바라는 대접이 아닌 섬기는 겸손한 대접을 하자.
 
넷째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되,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다. 혼자서 다 하려고 욕심 부릴 필요가 없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나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면 되는 것이다. 내 힘으로만 일하고자 한다면 조금만 해도 피곤해지고 짜증난다. 내 의지, 내 능력이나 내 주관으로 봉사하려면 얼마 못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해야 변함없이 꾸준히 봉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는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긴 것처럼 반드시 승리한다.
 
오늘의 기도
 
선한 청지기처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며, 서로 사랑하며 대접하며, 그리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되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병문 목사
울산호계교회

수-성탄의 기쁨
본문 : 마 1:18~25
찬송 : 38장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성탄절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한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기뻐하는 이유나 생각이 다른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은 선물을 받기 때문에 기뻐한다. 다른 사람은 쉬는 날이기에 기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갖는 것으로 인해 기뻐한다. 백화점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매출을 올릴 기회가 되기에 기뻐할 것이다.
 
그런데 성탄절의 진정한 기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절에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탄의 기쁨을 바로 알고 그 기쁨을 얻는 성탄절이 되길 바란다.
 
첫째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구체적인 사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성탄절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고 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성탄절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기에 그 사랑을 아는 우리는 기뻐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구원자로 오셨기 때문이다. 성탄절에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다. 그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죄로부터 저주로부터 구원하실 분으로 오셔서 인류의 소망이 되시기에 기뻐하는 것이다.
 
셋째는 임마누엘로 오셨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다. 죄인된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 성탄절이다.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 놀라운 은혜로 인해 기뻐할 수밖에 없다.
 
넷째는 선한 목자로 오셨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들 가운데 오신 사건이다. 그렇게 오신 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선한 목자가 되시기 위해서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을 잘 아신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사랑하신다. 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태어났으니 얼마나 기쁜가? 기뻐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성탄절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주어진 기쁨으로 충만하시길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아기 예수님을 성탄절에 보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성탄절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죄로부터 구원하시며, 선한 목자로 오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기쁨이 가득한 성탄절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환국 목사
예본교회

목-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본문: 눅 2:8~14
찬송: 123장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로마는 아우구스도에 의해 제정이 확립되고 모든 것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인구조사령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을 방문하게 된 계기이다.  그 와중에 예수님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낮고 천한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본문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구세주로서 이스라엘이 수천 년 동안 고대하던 메시야 탄생의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밤에 밖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다. 당시 목자는 아주 비천한 신분으로 거친 들에서 밤새 양들을 지켜야 하는 아주 힘든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주인의 양을 속여 파는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이 기쁨의 소식을 전했을까? 복음이란 낮고 천한 자들,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아픔과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주의 영광의 빛을 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목자들에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온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리고 그 표적으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라고 말씀한다. 이어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천사와 함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며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럼 왜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인가? 예수님은 '그리스도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구유탄생이 말해주듯이 예수님은 죄로 인해 고통 받는 낮고 천한 죄인들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다. 즉, 죄인인 우리들이 받아야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까지 낮아져서 종의 형체로 오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옥의 형벌을 대신 감당하셨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낮아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성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죄 때문에 단절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임마누엘 하심으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다. 또한 인간 본연의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탄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이다.
 
만약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도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영원한 평화를 누리는 감격적인 성탄절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의 이러한 구속의 은혜를 목자들처럼 믿음으로 받고 즉시 실행에 옮기는 자들에게 임함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미숙 목사
여교역자 안식관 원장

금-예수님은 구원자이시다
본문 : 마 1:21
찬송 : 325장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안에는 자연히 변화가 일어난다. 불행이 변하여 행복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매여서 살던 사람들이 변하여 의와 거룩을 추구하고 거룩을 즐거워하며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복음은 사람을 바꾸고 복음은 가정을 바꾸고 복음이 미치는 땅을 바꾼다. 악한 마귀가 지배하는 삶에 참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나타나는 복된 삶으로 바꾸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천국같은 삶을 살다가 천국가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 안에 나타나는 능력이다. 
 
복음이 전해지면서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가 곳곳에 세워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수없이 많은 변화의 역사를 보아 왔다. 가난과 질병과 정신적 고통가운 데에서 절망하던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았던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 사람들은 점점 더 교회를 멀리하고 살아간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먹고 살기 좋아지고, 걱정근심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걱정 근심이 없어서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오늘날에도 구원이 필요한가? 물론이다. 하나님 경험이 없이 사람이 바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나야 사람은 변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가정이 변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시대가 변한다. 물질적인 여유와 민주적으로 바뀐 세상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독재시대에 살아서 불행한 것이 아니고 민주시대가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시대를 살아서 불행하고 부유한 시대를 살아서 행복하고 가치있는 것이 아니다. 중심이 행복한 사람은 어떤 시대를 살아도 행복하다.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다. 결국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중심의 문제인데 문제는 그 중심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얻으려면 누군가가 우리 중심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죄의 결박을 풀어주셔야만 한다.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시고 자유케 하시는데 있다(사 58:6).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으로 들어오시는 분이시다.


변화하는 삶이란 예수님이 중심에 들어오시는 삶이다(계 3:20). 들어오셔서 우리의 얽매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부수시고 참 자유를 누리게 하신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접하고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누려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받아들이고 그래서 예수님이 지배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 중심에 오셔서 우리의 중심을 바꾸시고 가정과 교회가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덕신 목사
영도교회

토-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섭리
본문 : 룻 2:3
찬송 : 95장

생각지 않은 일이 있을 때에 '우연히' 라는 말을 쓴다. 3절에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가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갔다"고 말씀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룻이 계획하고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과 같이 선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손이 이루어 놓으셨음을 말하는 것으로 룻이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간 것은 우연히 되어진 것인데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면 외적으로 보면 우연인 것 같으나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본문은 룻이 보아스에게 속한 밭으로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이미 룻을 그곳으로 인도하려고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게 만드는 말씀이고 그 안에 룻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를 할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님이 '우연히'처럼 보이나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믿음으로 '아멘'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배운 대로 살려고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배운 대로 사는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갈 때에 기회를 주신다. 그러기에 3절은 하나님이 이미 룻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신 모습이나 그의 앞에는 계속하여 결단에 따른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적인 일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지금 나를 하나님이 인도하여 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3)"라고 말씀하고 있다. 추수를 하는 사람의 뒤에 뒤에서 겸손하게 묵묵하게 이삭을 줍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그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에게 속한 그 밭의 일부에서 그녀의 운명이 맡겨졌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기업 무를 자의 자격을 가진 자이다. 룻이 알지 못하고 갔는데 엘리멜렉, 즉 기업을 무를 자의 밭으로 간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가운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시고 이끌어 가시는데 마치 룻을 보아스에게 이끄시듯 우리를 예수님께 이끄신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오늘 주어진 자리에서 우리의 내일을 맡겨 주신 것을 믿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이다. 그 사람이 은혜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복을 준비해 놓으셨다.
 
오늘의 기도
 
주어진 일을 묵묵히 이루어가면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자리로 나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형진 목사
포근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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