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12~17일

[가정예배]12월 12~1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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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8일(목) 14:28

월-은혜를 받은 자
본문 : 눅 1:26~38
찬송 : 98장

본문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가브리엘 천사가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는 순박한 시골 처녀 마리아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구약에서 천사의 존재는 보냄을 받은 자(말라킴), 거룩한 자들(케도심), 신들의 아들들(베네엘림), 사역자들(메사레팀) 등으로 불리운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천상의 영적 존재들로 계시를 전달하거나 성도들을 돕기 위해 세상에 오기도 하며 하늘의 군대를 형성한다. 환상이나 계시에 있어서 이들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왜냐하면 천사는 환상을 보는 이를 인도하고 해석해 주기 때문이다.


이날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들어가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하고 인사를 하는데 이런 샬롬의 인사를 받은 마리아는 오히려 왜 이런 인사를 하는가? 하고 놀랐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마리아가 놀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천사가 다시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니라"고 말하면서 더욱 놀라운 소식을 전해준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말은 순박한 시골 처녀가 아닐지라도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그 아기의 존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그런데 천사는 구체적인 아기 이름까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혼란에 빠져 있는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설명해주면서 순종의 결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마도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유도했던 내용은 가브리엘이 전해준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친족 엘리사벳이 이미 늙어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잉태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리라는 믿음을 확고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복의 여인이 되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택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요한복음 15장 16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요 15:16)"고 말씀한다. 오늘 말씀에서도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30절 말씀에서도 역시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하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죄 없으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에 인간의 수태과정을 거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대로 성령의 잉태를 하는 은혜를 입은 여인이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은혜를 입어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택하셔서 은혜 입은 자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하신 목적대로 사명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미숙 목사
여교역자 안식관 원장

화-네 이름이 무엇이냐?
본문 : 창 32:24~28
찬송 : 312장

사람마다 불려지는 자기의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인격이며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인격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 생각나게 된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야곱도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한서 자신의 이름으로 고백한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아버지를 속여서 빼앗은 후에 형의 분노가 무서워서 외삼촌 집이 있는 밧단 아람으로 도망을 하여 머문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의 일이다.
 
야곱이 거부가 되어 돌아가지만 형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신을 맞으러 온다는 말에 두려웠다. 재산을 두 떼, 세 떼로 나누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 보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결국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씨름하는 장면이 본문 말씀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야곱을 향하여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니다. 야곱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물음이었다. 야곱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야드'라고 하는 단어에서 나왔다. '야드'란 단어는 '손'이란 뜻이다. 그런데 '야드'란 단어에는 '재물', '능력', '속이다', '사기 치다', '끈질긴', '발뒤꿈치', '간사한', '교활한'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사실 야곱은 그 이름의 뜻대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첫째로 '너는 누구냐?'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그 물음에 "나는 '야곱'입니다"라고 하는 말은 "나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는 고백이다. 둘째는 '너의 살아온 삶의 모습이 어떠했느냐?'는 것이다. 삶의 과정에 대한 질문이다. 내 삶은 야곱으로 "나의 욕망대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산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진실하게 고백한 답이었다. 셋째는 "네가 왜 이 자리에 있느냐?"는 물음이다. 인생의 좌표에 대한 물음이다. 야곱의 답은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살아가다 보니 이런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회개의 고백이다. 야곱 자신이 육신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살아왔다고 진실한 고백을 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다. 그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다'는 의미도 있으나 왕권을 이을 '황태자'란 뜻이 담겨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자신에 대한 질문을 듣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진솔한 고백을 해야 한다. 그때 바른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야곱처럼 하나님에게 진실하게 고백함으로 새롭게 되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환국 목사
예본교회

수-기다리는 자의 결단
본문 : 룻 2:1~3
찬송 : 434장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일의 안전성, 성공확률, 유익성을 보면서 결정하려고 한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왔을 때 어느 것 하나 자신에게 보장된 것이 없다. 다만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집으로 왔으며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준 나오미와 함께 살려고 베들레헴에 왔으나 대책이 없다. 베들레헴에서 룻은 이삭을 줍겠다고 하므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고,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당신은 성경을 왜 공부하느냐 라고 질문하면 배운 대로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진정한 복의 사람은 말씀을 배운 대로 사는 사람이다. 룻을 현숙한 여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상적인 여자라는 말이다. 그리고 1절은 베들레헴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에게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친족이란 친척이란 말이며, 유력하다는 말은 이상적인 남자라는 말이다. 그는 누구일까? 첫째,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 둘째,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사람, 셋째, 상황에 흔들림이 없이 신뢰하는 것을 믿고 믿은 대로 사는 사람이다.
 
1절은 룻이 앞으로 베들레헴에서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의 앞길에 유력자를 준비하여 놓으셨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축복의 길을 준비하여 놓으신 것이다. 그리고 상황을 전개하고 있는데 장본인인 룻은 알지 못하고 있다. 알지 못하지만 2절에서 이삭을 주우러 간다. 이는 룻은 첫째,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둘째, 완전하게 개종한 사람이요. 셋째, 어머니에게 효를 실천하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룻에게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다. 함께 나오미와 살아가는 것만도 칭찬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 할 때에 그것이 토라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3절에서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우연히 도착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우연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섭리요 은혜이다. 룻의 삶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우연으로 보이지만 보아스 앞으로 인도하시고 있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룻의 결단에 하나님은 보아스를 만나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도록 하신다. 어려운 때에 말씀을 따라 살기로 결단한 신앙인의 가야할 깃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계심이 감사한 일이다.
 
오늘의기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기로 결단한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형진 목사
포근한교회

목-은혜를 기다리는 사람들
본문: 눅 1:47~55
찬송: 438장

유진 피터슨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기다림을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을 품는 것이다. 소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을 반드시 이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다리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믿음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기대하며 지켜보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고 하시는 약속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 믿음이 그 아들 이삭에게 이어진다. 또 야곱에게 이어진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차이는 단지 혈통의 차이가 아니다. 에서와 야곱의 차이는 단지 정통성의 차이가 아니다. 저들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이다.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보고 은혜를 받는다. 그런데 그 은혜를 지키고 키워서 성숙한 신앙인이 된 사람도 있는 반면에 어느 틈엔가 잊어버리고 은혜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 역시 믿음의 차이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 줄 믿고 진실하게 약속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정체는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마리아가 환상중에 천사 가브리엘을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마리아를 통하여 행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상의 일들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말씀의 기억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이 사실인가 하여 확인하면서 그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보았다.
 
지금도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항상 있다. 그런데 약속이 축복이 되는 사람이 있고 약속이 '개꿈'이 되는 사람이 있다. 약속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문제이다. 항상 주시는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야 한다. 나를 향한 약속으로 여겨야 한다. 그래서 그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은혜를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그 은혜를 지켜가기를 원한다. 성도가 은혜를 유지하는 법은 겸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면서 곧바로 찬양을 시작한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이 자세는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이들이 명심하고 따라야 할 자세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축복을 받고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복을 지켜가는 비결이다. 그리스도인이기에 우리는 복을 받는 방법을 안다.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 말씀이 내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시면 우리는 변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신실한 마음으로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의 복을 누릴 때에 더욱 겸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덕신 목사
영도교회

금-구속사를 위해 산 여인들-라합
본문 : 마 1:1~16
찬송 : 455장

마태복음의 족보 가운데 두 번째로 등장하는 여인은 라합이다. 성경은 그녀의 이름을 '기생 라합'이라고 가감없이 표현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기생 라합은 가나안 정복 때 가장 먼저 이스라엘에 의해 멸망당한 첫 번째 성에 거주했던 여인이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녀가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찾아볼 수 없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의 이름은 존귀한 계보의 한 대를 잇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더 나아가 그를 살몬의 아내라고 성경은 덧붙인다. 살몬은 여호수아에 의해 여리고를 정탐했던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으로 보낼 때 어떤 사람을 보냈을까? 아마도 살몬의 가문이나 사람됨, 그리고 그의 위치는 상당한 수준에 해당했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기생 라합에 대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정보는 다윗왕의 조상인 보아스, 이방 여인 롯의 기업을 물려주었던 당시대의 유력한 가문이 된 보아스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런 이야기는 절대로 우리의 생활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같은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기생 라합의 신분과 그녀의 불행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멸망한 여리고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고 살몬의 아내가 되어 유력한 가문을 이루고 보아스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고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여리고성을 정탐온 두 명의 정탐꾼을 숨겨주었기 때문이다. 다말이 한 생명을 낳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을 통해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다. 기생 라합은 자신의 집으로 숨어들어온 두 명의 정탐꾼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 것을 통해 영광을 얻은 것이다. 그것은 계산된 행동도 아니었고 미리 누군가가 귀띔을 해주어서 된 일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에게 생명을 구할 기회가 왔을 때 그녀는 기꺼이 그들을 지켜주고자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한 것이고 그것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속사를 이어가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기생 라합의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은 내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은 곧 구속사를 이어가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지켜야 할 생명, 내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 내가 품어야 할 이웃을 품는 것! 그것은 곧 구속사를 향한 거룩한 몸부림이며 그런 우리의 결단과 삶은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새롭게 쓰여지는 거룩한 믿음의 계보가 될 것이다.
 
2016년 대림절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 생명을 품을 줄 아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붙여주신 생명에 대한 성실함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성욱 목사
꿈이있는교회

토-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본문 : 슥 4:6~10
찬송 : 445장

고레스 칙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격적인 귀향을 하여 성전을 지으려고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의식주를 해결해야겠다고 주장하면서 점점 내분이 생겨난다. 또한 혼합 족속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함으로 말미암아 15년 동안 성전건축을 진행하지 못한다.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인생은 산 너머 산이다. 삶의 큰 산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첫째로 "오직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한다. 사람이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울지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고민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지상명령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서 예수님이 분명하게 대답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힘으로 능력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님만을 의지하여 큰 산을 뛰어 넘자.
 
둘째로 믿음으로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고 끝마치게 해 주리라고 말씀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시작만 하면 끝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룹바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친다. "내가 믿음으로 첫 돌을 놓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함께 하실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성전 재건 역사가 불꽃처럼 뜨겁게 일어나자, 사탄은 서편 총독 닷드네와 그 일당들을 동원하여 간교한 방해공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오히려 다리오 왕은 이 상소를 확인하던 중 성전재건은 선왕의 뜻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모든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도록 지시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큰 산이 밥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니 방해가 축복이 되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장애물이 변하여 디딤돌이 되었다.
 
셋째로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스룹바벨이 성전을 짓기 위해 돌 하나를 갖다 놓았을 때 그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을 생각하면 그 일은 너무나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시작하시고, 보고 계신 분이 누구이신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그분의 일곱 눈이 모든 역사를 보고 계신다. 그렇기에 미미한 작은 시작은 위대한 시작인 것이다. 기적은 작은 것으로 시작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놓여있는 많은 큰 산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힘을 내려놓고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의 결단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잘 마무리 되며, 그리고 작은 시작이 큰 기적을 일으키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병문 목사
울산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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