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 28일~12월 3일

[가정예배]11월 28일~12월 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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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4일(목) 14:14

월-사무엘의 고별사
본문 : 삼상 12:1~5
찬송 : 582장

왜 사무엘은 백성들 앞에서 나를 샅샅이 뒤지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가? '나의 잘 잘 못에 대하여 말하라! 흔들어 보고 샅샅이 뒤지고 잘못을 털어보아라! 내가 누구의 소나 나귀를 막론하고 빼앗을 일이 있느냐? 누구를 속이는 일이 있었느냐? 압제한 것이 있느냐? 빼앗을 것이 있느냐? 눈을 흐리게 해 왜곡시킨 일이 있느냐? 뇌물을 받은 일이 있느냐?'고 왜 사무엘은 하나님 앞과 새 왕과 백성들 앞에서 솔직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속내까지 보이고 있는가? 그리고 왜 백성들은 사무엘 사사의 잘 못을 찾아보라고 하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사무엘 사사 당신은 깨끗한 사람입니다. 누구의 것도 빼앗은 일도, 속인 일도, 왜곡도 뇌물을 받은 일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깨끗합니다"라고 합창으로 화답하며 그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존경을 드리고 있을까?


사무엘이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사무엘도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지도자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앞에 겸손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을 순수하게 지켰다. 셋째, 거룩한 사명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켰으며, 넷째,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고 사랑했기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진실해야 한다. 겸손하고 깨끗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VIP 지도자가 하나님 두려운 것을 모른다. 원자경 무당에 홀려 비선실세들만 사랑한다. 시민과 기업을 봉으로 여기고, 빼앗고, 속이고, 겁박해 뇌물을 받았다. 교만의 극치다. 온 나라가 4ㆍ19 이상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창피하다. 나라가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나라가 안정이 될 수 있을까?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시민들을 사랑해야 한다. 우상과 무당을 걷어 내고 하나님 앞에서 시민과 기업들을 들을 가슴으로 품고 사랑해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와 군대와 기업과 예술 학교와 시장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깨끗하고 진실해야 한다. 특히 검찰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 때 대한민국이 헬 조선을 벗어나 아이들이 꿈을 꾸고, 청년들이 희망을 노래하며, 장년들이 보람을 가지며, 노인들이 기쁨을 얻고 살 수 있으며, 나아가 통일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이 천국이다. 이 천국이 꼭 우리에게 오기를 기도하자! 이런 천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 성도들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 지난날에 성도들이 거짓과 교만하게 살았기 때문에 지도자들도 거짓으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우리 성도들의 거짓과 교만을 회개하자! 성도의 깨끗한 삶을 나라와 민족과 세상 앞에 비추자!
 
사무엘은 '내가 누구에게 거짓을 했느냐?'라는 퇴임사를 마치고 사사, 군대장관의 자리를 내려와 야인으로 떠났다. 그의 떠나는 발걸음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거룩하기까지 하다.
 
오늘의 기도
 
대한민국이 거짓의 헬 조선을 벗어나 아름답고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개혁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명갑 목사
부여교회

화-초보자와 성숙한 자
본문 : 히 6:1~3
찬송 : 430장

신구약 성경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다. 첫째, 잃어버린 자이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은 말씀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둘째, 참된 예배자이다. 요한복음 4장 23절은 말씀한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셋째, 완전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은 수미(首尾)에서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을 보며 가장 안타까운 일 중에 하나는 열심히 믿기는 믿는데 삶이 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이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말씀도 열심히 듣고 찬양과 전도도 열심히 하는데 삶은 그만큼 변하지 않는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은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초보자 수준의 그리스도인에게 날마다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이 있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기도나 전도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5장 11~14절은 유대인 성도들의 초보적인 신앙상태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6장은 적극적인 자세로 신앙의 성숙을 이루라고 권면한다. 오늘 이 시대에도 주님이 찾으시고 쓰시는 자는 완전한 자 곧 성숙한 자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완전함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텔레이오테스'이다. 텔레이오테스는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른스러운, 성숙한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은 1절과 3절에서 두 번이나 '성숙한'이란 단어를 사용해 본문을 번역한다.
 
지금까지 히브리서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회개, 신앙, 세례, 안수, 부활, 심판 등 초보적 신앙의 수준을 벗어나라고 항변한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모든 성도가 완전한 자 곧 성숙한 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워져 가야 한다. 이 땅의 교회와 이 땅의 성도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며 참된 예배자를 양육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세워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체질을 잘 아시는 하나님!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성숙한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는 축복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윤근 목사
창원우리교회

수-복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만이 얻는다
본문 : 계 1:3
찬송 : 200장


성경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요한계시록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말씀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앞으로 전개될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읽고, 듣고, 기록된 것을 지킨다면 분명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는 이 성경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무디 목사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라는 구절을 읽다가 믿음이 자라났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오지 않던 믿음이 말씀을 읽다가 자라난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굳건하게 해준다.
 
그 다음은 성경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신다. 말씀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꾸 들어야 깨달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 2, 3장을 보면 일곱 교회가 나오는데, 엄중한 교훈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한다. 말씀을 단순히 읽으라는 것인가? 말씀을 단순히 들으라는 것인가? 아니다. 읽고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곧 말씀을 지키라는 명령이다.


요한계시록 21장 7절을 보면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말씀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읽고, 그 의미를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말씀을 지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조건에 우리가 순종할 때에 성경은 우리에게 복을 주는 통로가 된다. 성경을 일주일 내내 고이 모셔 두었다가 주일 아침에 먼지를 털고 교회에 들고 나온다면 무슨 생명력이 있을까? 소설책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서 복을 찾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주셨던 세 가지 삶의 원칙 곧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는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며 지킬 때 우리는 성경에 있는 보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성경은 그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기 위해 쓰여 진 책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의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그리고이제부터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가슴과 심장과 온몸으로 성경을 읽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변할 때, 내가 변하고 주변이 변하고 교회가 변화고 세상이 변화될 줄 확신한다. 그 날을 기대하며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기를 소망해 보자.
 
오늘의 기도
 
성경은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기 위해 쓰여 졌습니다. 모든 자들이 이 사실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영희 목사
함해노회

목-절망적인 언어를 들을 때
본문 : 막 5:35~43
찬송 : 354장

믿음의 언어는 말씀을 믿는 훈련 속에 뿌려지는 씨앗과 같다. 운동선수가 훈련을 거듭할수록 갑작스런 상황에 반복된 훈련이 행위로 나오듯 믿음의 언어도 그렇다. 시각과 촉각으로 들려지는 소리는 절망의 언어를 주저 없이 사용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세상 속에다 살아간다. 하나님의 소리도 듣지만 세상의 소리도 듣는다. 그 중에 절망의 언어를 듣는 장면이 오늘 본문이다.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딸이 죽음 직전에 있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 치유를 부탁하고 함께 가다가 열두해 혈루증 여인을 만나 발걸음이 멈춘 상황에 회당장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딸이 죽었다는 절망의 소리를 듣는다. 이 절망의 소리는 사실이었고 현실이었다. 말한 사람들은 맞는 소리였고 체념하는 것이 너를 위한 뜻이라는 마음으로 말했지만 듣는 야이로에게는 절망의 소리였다. 믿음의 사람도 야이로처럼 상황의 어려움이 올 때가 있으며 절망의 언어를 듣고 방황하고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반전이 일어난다. 세상의 언어는 절망의 소리였는데 예수님의 언어인 희망의 소리였다. 야이로 집안 사람들의 절망의 소리를 야이로도 예수님도 같이 들었다. 절망의 소리에 야이로의 표정과 마음은 어떠했을까? 본문의 상황을 통해서 오는 느낌은 끝났다. 예수님이 오셔도 안 된다. '소망도 이제 끝이다'라는 본능의 생각이 야이로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환경이 절망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선포가 절망과 본능의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 주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하시고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신다.
 
절망의 언어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야이로의 절망 앞에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신다. 그 말씀 속에서 믿음을 가지면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하신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신다. '믿기만 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논피스튜에'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 '처음 내게 가졌던 믿음을 지금 그대로 굳게 간직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면 야이로가 주님께 가졌던 처음 믿음은 무엇일까?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라고 고백했던 믿음이다. 어떤 절망의 상황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소망이 있다는 첫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첫 믿음을 가질 때 야이로 가정에 '달리다굼'의 선포로 주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셨다. 절망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어떤 말씀도 비웃음으로 들린다. 주님은 이런 자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사랑의 구원자로 오셨다. 절망의 소리를 듣고 아파하는 야이로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왜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첫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 자신이 사랑의 구원자임을 보여주시고 있다.
 
오늘의 기도
 
절망적인 언어를 듣고 아파했습니다. 때론 주님을 의심했고 멀리했음을 회개합니다. 야이로의 첫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기를 원하오니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종주 목사
광주대인교회

 

금-감사함으로

본문 : 시 100:4
찬송 : 66장

인생에는 두 가지 반응이 있다. '불평하며 살 것이냐? 감사하며 살 것이냐?'의 반응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성지순례 중 광야체험을 한 적이 있다. 광야는 잠시 머무는 것조차 힘든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백성을 약속의 땅이 아닌 광야로 먼저 보내셨다. 광야는 사람의 힘으로 살 수 없는 곳이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살 수 없는 곳이 광야다. 하나님은 광야의 백성을 먹이시고 인도하셨다.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광야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이 광야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어떻게 반응했는가? 오로지 불평했다. 불평으로 반응하면 모든 것이 원망의 대상이 된다. 불평이 마음을 사로잡자 하나님과 모세는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자유의 신분을 원망하며 애굽의 노예생활을 그리워했다. 결국 이들은 광야를 40년간 방황하게 되었다.
 
인생을 불평으로 반응하면 방황하게 된다. 감사를 잃으면 인생을 헤맨다. 불평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불평의 마음이 싹트자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하찮게 여기며 싫어했다. 새번역에서는 "진저리가 난다"(민 21:5)고 반응했다.
 
감사가 없는 곳이 광야다. 감사가 사라지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의 은혜도 불평거리가 된다. 감사가 사라지면 감사할 것조차 불평으로 바뀐다. 감사를 잃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도 저주처럼 여기게 된다. 광야가 삶을 척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감사를 잃으면 삶이 척박해진다. 불평의 위력이다.
 
가장 불쌍한 인생은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불평하고 있는 상황이 바뀌어지기를 기다리지 말라. 지금 감사하기로 결단하라. 이것이 불평을 멈추는 비결이다. 지금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감사할 수 없다. 삶의 순간마다 감사를 선택하라. 감사를 결단하라. 감사를 입술로 선포하라.
 
불평은 하나님께서 복주신 삶을 해치는 원흉이다. 불평은 사탄이 내 삶을 삼키도록 빗장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 불평은 자신과 공동체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인생은 수 많은 문제의 연속이다. 불평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불평거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감사는 좋은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믿음에서 나오는 신앙고백이다.
 
본문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라고 말씀한다. 감사 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고, 감사 없이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없다. 감사 없이 드리는 기도에 응답이 없고, 감사 없는 삶에 은혜는 메말라버린다. 불평으로 굳어진 마음밭을 감사로 갈아엎자. 감사의 입술이 믿음의 증거다.
 
오늘의 기도 
 
감사함으로 하나님 주신 모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상진 목사
영암교회

토-어떤 인생을 살기 원하는가?
본문 : 갈 6:7
찬송 : 490장

286, 386, 486, 펜티엄2, 펜티엄3, 펜티엄4, 80~90년대 인텔에서 만든 CPU의 이름들이다. 그때 당시 누가 컴퓨터를 샀다고 하면 물어보던 질문은 "486?" "펜티엄?" 하드웨어 중심의 질문이었다. 요즘의 질문은 "모니터는 몇 인치?" "무게는?" "OS는 윈도우 10?" 등 휴대성과 더불어 소프트웨어가 중요시 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드웨어 기업인 LG전자의 기업 가치는 15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애플의 기업 가치는 무려 410조원으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애플의 기업 가치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시점이 2003년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시작하고부터이다. 즉 소프트웨어에 눈뜨면서인 것이다. 사람은 어떨까?
 
2015년도 의ㆍ치대 입학 정원은 2965명, 수능 응시자수는 64만 619명으로 단순 계산 시 의대 진학률은 0.46%정도이다. 문과를 제외할 경우 대략 1.2%에 해당된다. 수능 최상위 이과 학생들이 가장 먼저 지원하는 곳이 전국의 의과대학이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의사란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진 최상위 계층을 말한다. 그럼 여기서 이들 중 비슷한 연배의 두 사람 인생을 살펴보자.
 
우선,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故 이태석 신부(62년생)는 인제대학교 의대,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한 의사이자 신부이다. 그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인 수단의 남부 톤즈에서 원주민들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로 살다 2010년 1월,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또 다른 이는 성남시 A산부인과 이모 의사(61년생)이다. 그는 보험설계사와 공모한 뒤 보험 가입자들에게 수술 기록 등을 위조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진 의사들도 그들의 두뇌에 어떤 소프트웨어, 즉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느냐에 따라 그들이 걸어가는 인생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타고난 하드웨어는 지금 부모님을 원망해봐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마음속 소프트웨어, 즉 생각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마음속에 부정, 비판, 화, 질투, 탐욕, 거짓, 이기심으로 가득한가? 아니면 긍정, 사랑, 희락, 인내, 충성, 온유와 겸손, 절제로 가득한가? 어떤 인생을 살기 원하는가? 지금 나의 선택에 따라 남은 내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낮은 자리에서 온유와 겸손으로 섬기셨던 섬김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사랑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따르지를 못합니다. 바라보아야 할 주님은 보이지 않고 세상만 보입니다.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사람의 소리만 들립니다. 불쌍하고 연약한 우리를 긍휼이 여겨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형곤 목사
다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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