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 17~22일

[가정예배]10월 17~22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10월 13일(목) 09:50

월-우물가에서 만난 여인
본문 : 요 4:5~10
찬송 : 526장

세계적인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2011년 3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리즈 테일러'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헐리우드 영화계의 전설적인 여배우이다. 그녀의 삶은 화려한 영광의 삶이었고, 두 번의 여우주연상, 여러 번의 인도주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면에 그녀는 뇌종양 제거 수술, 심장판막수술, 심부전증, 유대교로의 개종, 여덟 번의 결혼과 이혼 등 끝없는 인생의 방황과 고통,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녀의 삶은 화려했으나 동시에 굴곡도 많았다. 사람은 겉으로 보아서는 모른다. 괜찮아 보이는 겉모습 뒤에는 각자가 감추어 둔 삶의 고독과 아픔, 목마름이 있다. 여기에 인간의 실존이 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숨겨 놓은 상처로 영적 목마름 가운데 살아가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여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있다. 첫째는 고독이다. 현대인에겐 깊은 고독이 있다. 그것은 공유할 수 없는 고독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으나 사람들에게서 위로받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을 피해 고독의 시간, 고독의 장소로 들어간다. 여기에 현대인의 내면의 아픔이 있다.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이 드문 한 낮에 우물가에 물을 뜨러 나온다. 한 낮의 정오는 사람을 피하는 시간이요 고립의 시간이다. 그녀는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 물을 뜨러 나온다. 공유할 수 없는 고독 가운데 있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둘째는 내면의 상처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에 날카롭게 반응한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상처받은 사람은 별것 아닌 것에도 날카롭게 반응한다고 한다. 내면의 상처가 자극되므로 그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삶에 여유가 업고 자꾸 사람들과 부딪 마음에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달라고 한다. 이 목마름, 이것은 물 한잔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원한 목마름이다. 현대인에겐 이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 목마른 인생의 특징은 자꾸 새로운 것을 찾아 방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없다. 이것은 영원에 관한 문제요 진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고독과 상처, 목마름 가운데 있던 여인이 고립의 끈을 끊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자신의 상처를 넘어 이웃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는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생의 반전과 복음의 능력이 있다.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오늘도 이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고독과 상처, 목마름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된 생수되시는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상현 목사
염광교회

화-진정한 안식
본문 : 마 11:28~30
찬송 : 375장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들은 누구나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안식의 즐거움이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 안식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누리기를 소망한다.
 
첫째, 예수님 없는 인생에는 긍정적인 안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에덴에서 타락한 인생은 안식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려보았지만 진정한 안식을 얻지 못했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고백했다. 해 아래서 수고하여 얻은 그 어떤 것들도 자신에게 진정한 안식을 가져다주거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음을 겸허히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타락한 인생에게 이 세상은 끊임없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서 그 삶을 수고롭게 한다. 죄와 결과로 나타난 고통으로부터 인간은 결코 자유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둘째, 이런 수고로운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수고로운 인생들을 당신 앞으로 오라고 초대하신다. 수고로운 인생길에서 주님을 만나면 안식을 누리게 된다. 주님 안에는 쉼이 있다. 우리는 이 쉼을 누리도록 부르심을 입은 자들임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지금 나는 과연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주님에게 오면 주님이 그들에게 안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누리는 방법을 모르거나 그 방법을 실제로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식을 누리기 원한다면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 배워야 한다. 주님의 멍에는 무엇인가? 십자가이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기 죽음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늘 일해야 할 존재이다. 죽음으로서만 인간은 진정한 안식에 들어간다. 안식이 무엇인가? 그것은 평안히 모든 것을 받아 누리는 상태이다. 에덴은 안식의 동산이었다. 그 동산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었고 인간은 그저 그것을 받으면 되는 곳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안식이다. 그러므로 안식은 은혜이다. 우리는 은혜를 바로 앎으로 안식을 알게 된다. 나 자신의 사망을 선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직 나는 모든 것을 주로부터 받아 행하는 자임을 깨닫고 항상 주를 의지하고 주께 맡기고, 주께서 주시는 모든 것으로 만족하기로 작정하는 그곳에 진정한 안식의 삶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사망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진정한 안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이 시간 나 자신의 사망을 선언합니다. 주님안에서 진정한 안식의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대훈 목사
창성교회

수-은혜는 깨달음이다
본문 : 사 6:5~8
찬송 : 368장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임재속에 일생일대 가장 은혜로운 체험한다. 이 은혜가 이사야를 죽기까지 선지자로 헌신하게 했는데 과연 그 은혜가 무엇이었을까?
 
첫째, 자신이 죄 가운데 있음을 깨닫는 은혜이다.
 
5절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는 탄식이 터졌다. 왜 일까? 이사야는 그동안 피상적으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할 뿐 화로 망할 만큼 가득한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을 몰랐다. 그런데 하나님 임재앞에서 비춰진 자신은 영영히 망하게 할 죄들, 안보였던 죄들, 몰랐던 죄들, 죄로 여기지 조차 않았던 죄 속에 빠진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이 깨달음에서 탄식이 될 때 하나님은 영원한 화를 면하고 멸망지옥을 벗어나 구원받는 길을 알게 하신다. 용서받는 십자가의 길을 알게 하신다. 죄를 피하고 죄를 이기며 사는 믿음의 지혜를 더해 주신다. 얼마나 큰 은혜인가?
 
둘째, 죄 사함을 깨닫는 은혜이다.
 
이사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선처만을 바라며 엎드렸을 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제단에서 핀 숯을 가져다 입술에 지져버림으로 7절에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선언하셨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말로 드러난다는 사실에서 입술의 죄는 그 사람의 모든 죄를 의미한다. 오늘날 영적의미는 십자가 제단에서 하나님이 불같은 말씀을 피워 주의 종들을 통해 날라주실 때 입술로 아멘하는 순간 모든 죄가 사해지는 신비가 있다. 성도가 누리는 자유와 기쁨과 평강은 죄 사함에 대한 은혜의 결과이다.
 
셋째,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은혜이다.
 
죄 사함을 받은 이사야는 더 이상 망해야 할 죄인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이 정결케 하신 의인으로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에 동역할 사명자임을 깨달았다. 8절을 보면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한다. 이렇게 구원의 통로가 되는 하나님의 사역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사명자로 굳게 섰다. 모든 은혜에는 사명이 있다. 사명을 깨달을 때 은혜가 은혜된다. 주님은 오늘도 '은혜받은 사람들아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물으신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사용하소서!' 자발적인 응답있는 성도들로 서게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셔서 깨달음의 지경이 더해가게 하소서. 은혜 안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사명 앞에 자원하는 믿음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주태 목사
성지교회

목-네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 출 20:12
찬송 : 331장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될수록 형제끼리, 부모와 자식끼리 대적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세상의 모습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더욱 형제가 우애하며, 더욱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신다. 부모공경은 구원받은 자의 당연한 태도이다. 공경이란,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여 받들어 모시는 것, 남을 대할 때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고 받듦'이란 뜻이다. 부모공경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첫째, 부모공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같다. 공경이란 단어는 '카바드'이다. '무겁다, 견고하다, 영예롭다'는 뜻으로 구약에 12번 기록되었다. 기록을 살펴보면, 카바드가 하나님과 부모에게만 사용됨을 알게 된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동일한 무게를 지니는 무거운 일이라는 말이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녀에 대한 형벌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와 같이 죽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악이 이스라엘에 가득 참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부모공경은 개인의 생사뿐만 아니라, 민족의 장래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계명이다.
 
둘째, 부모를 공경함으로 복을 받는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음의 결국 저주와 죽음과 심판이라면 공경하는 자에겐 복이 약속되어 있다. 부모공경의 계명은 복의 약속이 있는 첫계명이다. 어떻게 공경해야 하나? 첫번째는 재정으로 섬겨야 한다. 하나님에게 처음 익은 열매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복을 받는 비결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을 재정으로 섬겨야 한다. 예수님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드리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두번째는 마음을 즐겁게 해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쓴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자녀가 부모를 즐겁게 하며 어미를 기쁘게 하라 말씀하신다. 부모가 기뻐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 기쁘시게 해야 한다.
 
셋째,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라. 부모공경이 사라지는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다. 죄로 말미암아 깨지는 가정들이 많다. 그러나 깨짐을 회복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다. 부모와 자녀관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회복되어진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기억한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 그 자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경험한다.
 
구약시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까다롭고 불편하고 무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생명을 다해 정성을 다해 섬겼다. 하나님이 생명과 구원의 주이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부모로 말미암아 내 생명이, 믿음이 선물로 주어졌음을 기억하라. 육신의 부모를 공경함 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할 수 없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경외하듯 부모를 공경함으로 첫 계명의 복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성인 목사
영산포중앙교회

금-말이 우리의 삶을 만든다
본문 : 히 4:12~16
찬송 : 364장

 본문의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허공에 메아리만 치고 사라지거나 수증기처럼 사라지거나 증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 심령가운데 활동하신다. 활력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서 무엇인가를 움직이는 동력을 말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5장 10절과 1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곳으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시고 소출이 나게 하며 또한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고,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주는 것과 같이 이사야 선지자가 한 말이 헛되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고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보낸 일이 형통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말씀으로 일하고 계신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3절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증거하고 있다.
 오늘 우리들 가정에게도 동일한 말의 권세, 언어의 권세를 주셨다. 각 가정, 각 가족들이 믿음대로 하는 말과 믿음대로 간구하는 기도대로 이루어지는 말의 권세를 주신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2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했다.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해주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을 축복해 보았는가? 자신의 삶을 축복하면 우리의 삶이 복된 삶이 된다.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언어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불행하게도 불신과 의심과 어두움과 적개심으로 가득 차게 한다. 그러나 믿음의 말이나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은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소망의 닻을 달게 된다. 소망적인 말은 우리의 마음의 뜻과 생각에 믿음을 심어주게 되니 새로운 삶으로 활력이 가득 차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우리의 말에 있다. 말은 살아 있고 믿음으로 하는 말은 믿음을 만들고, 믿음의 생각과 계획을 세우게 되니 결국에는 믿음의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 마가복음 11장 14절에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때도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이유는 저주를 하신 게 아니다. 라 마가복음 11장 22절과 23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믿음의 말이 그 말대로 살아 움직임을 보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믿음의 말은 불신을 멈추게 하고 확신과 신뢰로 새로운 미래를 열게 된다. 곧 믿음의 말은 오늘과 내일의 우리 가정의 평안을 지켜준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말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외면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가정으로 함께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미형 목사
생명비전교회

토-바알이냐 하나님이냐
본문 : 대상 14:8~17
찬송 : 96장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블레셋이 침략해왔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두 번에 걸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블레셋 군사들이 그들이 섬기던 신상을 내팽개치고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블레셋 군사들이 왜 신상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왔을까? 그 이유와 목적은 분명하다. 그 신상이 그들의 싸움에 승리를 가져다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신상은 전쟁터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버림받은 신상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12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군사들이 버리고 간 신상들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그러나 신상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우상이다. 그러면 다윗이 믿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첫째로, 부를 때에 응답하시고 찾을 때에 만나주시는 분이셨다. 블레셋 군사들의 신상은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다윗이 믿고 의지했던 하나님은 다윗이 부를 때에 다윗에게 대답하셨고, 다윗이 찾을 때에 다윗을 만나주셨다. 죽은 신은 불러도 절대로 응답할 수 없다. 아무리 찾아도 절대로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분명 살아 계신 분이요 그래서 우리가 부를 때에 언제든지 응답하시고 찾을 때에 어디서든지 만나주신다.
 
둘째로,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도와주시는 분이셨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비해 전술적으로나 숫자적으로나 열세였지만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을 위해 직접 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행하셨다. 하나님은 뜻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시고 고치시는 분이시다. 멍든 가슴과 상처 입은 심령을 싸매시는 분이시다. 실패로 인하여 좌절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용기를 주시며 다시 일어나게 붙들어 주시는 분이시다.
 
셋째로, 하나님은 명성을 얻게 하시는 분이셨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의 군대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온 세상에 퍼졌고 주변의 모든 민족들이 다윗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은 블레셋과의 싸움을 통해 다윗의 이름이 나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 주셨던 것이다. 애굽의 종이었던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를 도우셨기에 요셉은 그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물론이요 주인도, 그리고 애굽의 왕까지도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인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의지했던 우상은 불러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윗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응답하시며 만나주신다. 비록 우리들이 힘들고 어려운 때를 살아가지만 살아계셔서 언제나 어디서나 대답하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 연약한 우리들을 도우시며 확실하게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꼭 붙들고 살아가자.
 
오늘의 기도
 
우리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로 늘 당당함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삼균 목사
대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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