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 8~13일

[가정예배]8월 8~13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08월 03일(수) 16:22

월-폭풍속에서
본문 : 행 27:18~32
찬송 : 543장

절망 속에서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 된다. 절망 때문에 희망을 지운다. 폭풍이 계속되자 사공들은 짐, 곧 곡물을 바다에 버린다. 곡물은 백성의 식량이자, 사공들이 로마로 가야 하는 목적이다. 곡물은 사공들의 보수이자, 사공들의 미래다. 그런데 고작 폭풍 이튿날 곡물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사흘 때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를 버렸다. 기구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희망을 버린 것이다. 절망 때문에 희망을 지워버리니 모든 것이 짐스럽다. 그것 때문에 자기가 죽을 것만 같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너'도 버릴 수 있다. 절망적인 인간에겐 '너', '우리'가 없다.
 
폭풍이 조금 잦아들어 살만해졌다고 느낀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몰래 거룻배를 내렸다. 군인들은 죄수들을 죽이려 했다. 죄수들이 도망치면 자신들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자 남을 죽이려 한다.
 
구원의 여망마저 포기한 이들은 먹기를 거절한다. 절망을 의지하면 살 길이 막힌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인간이요, 죄수일지라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믿으면 죽음의 길도 사는 길이 된다. 희망을 믿는 사람들은 혼자 살 궁리를 하지 않는다. 함께 지혜를 힘을 모으면 위기를 극복하고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의 희망, 지혜, 능력입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해준다면 우리는 이 폭풍우를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폭풍 속에 있는 사도 바울의 호소이다. '폭풍 속에선 혼자 살 수 없다. 위기 탈출을 위해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배신해선 안된다. 서로 믿고 협동하자'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살려주신다.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다. 그러니 이제 안심하라"고 한다. 바울은 이들의 과거의 잘못을 지적한다. 아직 풍랑 속에 있고, 아직 폭풍 속에 있기 때문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그 사람 때문에 모두가 죽게 된다.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야 한다. 절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희망이다. 14일 동안 유라굴로 광풍에 시달리다 육지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때가 한밤중이었다. 아직은 배에 의지해서 육지로 가는 편이 더 좋다. 배를 의지하자니 두 번째 문제에 부딪친다. 배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큰 배가 암초에 부딪치면 어떻게 될까? 작은 거룻배를 타고 육지로 가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세 번째 문제가 있다. 거룻배에는 276명이 다 탈 수 없다. 뱃머리에 닻이 있다. 닻을 내리고 새벽을 기다려야 한다. 새벽이 오면 다 살 수 있다. 그런데 사공들이 도망가고자 닻을 내리는 척하며 거룻배를 내린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절망 속에서 나오자. 희망을 갖고 손을 내밀자. 설령 사람이 배신할 지라도 예수님은 변함없이 우리가 믿음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신다.
 
오늘의 기도
 
절망 속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손을 내밀어주는 크리스찬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국 목사
수원온누리비전교회

화-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본문 : 행 1:12~26
찬송 : 365장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이 무엇을 했을까?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이면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열 한 제자, 여자들, 예수님의 어머니와 아우들을 포함해 약 120명이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바로 그 때 성령강림과 역사를 체험했다. 성령의 역사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보낼 때 일어난다.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무슨 기도를 했을까?


첫째,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기도했다. "성령이여, 임하셔서 우리에게 성령 세례를 베푸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 인생을 살아갈 힘, 고난을 이길 힘, 맡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힘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모여서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도록 간구하시기 바란다.
 
둘째, 성령의 능력을 간구했다.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고 했다. 즉 기도(prayer)와 간구(supplication)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간절히 구한 것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어느 소년이 점심도시락으로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시고 그것을 하늘을 향해 들고 축복 기도를 했다. 그 때 기적이 나타나 어른 남자만 5000명을 먹일 수 있었다. 우리의 능력은 오병이어다. 우리의 지식도, 우리가 가진 돈도 보잘 것 없는 오병이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기도할 때 성령께서 나타나 능력을 주신다. 그리하여 5000명을 먹이는 위대한 역사가 기도를 통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이면 기도해야 한다. 그 속에서 위대한 역사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임한 자들은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서 살든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주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기도가 있다는 것은 희망과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하며 산다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야 할 꿈과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 희망과 목표가 이루어질 줄 믿는 것이다. 기도는 대단한 축복이다. 내 자원은 부족할지라도,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지혜를 얻고 목표들을 이루며 살 수 있다. 기도와 간구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며 사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매일 기도함으로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형미 목사
예수비전교회

수-말투

본문 : 마 26:73
찬송 : 289장

세 번씩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했던 사람이 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가 그 주인공이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과 자신이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베드로가 반복해서 강조한 말의 내용 보다 오히려 그의 말씨(말투)를 더 주목했다.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마 26:73). 사람들은 베드로의 말소리 즉, 말씨를 가지고 베드로가 한 말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강조했던 말의 내용 보다는, 베드로의 말씨(말투)를 가지고 베드로가 한 말의 진정성을 평가했다. 대단히 흥미로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말인데도 말투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만큼 사람의 말투가 그 사람이 하는 말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권총을 겨누면서 일을 시킨다면 사람들은 꼼짝없이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불과하다. 리더십이란, 다른 말로 영향력이다. 그리고 그 리더십은 따르지 않을 자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경우에만, 리더십이 생성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자기 직속상관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한 젊은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그 상관은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위를 가지고 권력을 휘두른 것에 불과하다. 그 상관이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말투와 일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온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아들은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가 나온다.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강제로 아들을 끌고 오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의 스타일 즉, 기독교의 스타일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를 흔히 말씀의 종교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우리 기독교를 평가할 때 말씀의 내용 못지않게 그 말씀을 표현하는 방식. 즉, 말투를 대단히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분명히 좋은 일인데 열매가 없을 때가 있다. 명분을 가지고 추진했지만, 사람들의 협조가 생각보다 부족할 때가 있다. 혹시 우리의 말씨와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메시지만큼 중요한 것이 그 메시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제 크리스찬인 우리자신의 말투와 스타일을 다시 한 번 깊이 되돌아보자.
 
오늘의 기도
 
소중한 복음이 우리의 삶과 스타일을 통하여 더욱 더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재현 목사
충광교회

목-구원 받은 자의 사명은?
본문 : 고전 10:31~33
찬송 : 304장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우리는 정죄에 대하여 자유를 얻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생의 기회,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의 기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첫째는 삶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시켜야 한다.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다. '먹든지 마시든지'라는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겪는 삶의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린도 시장에서 사온 음식물은 우상의 제단에 드려졌던 것들이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시장에서 사온 음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으라고 먼저 말한 후에, 누가 이것이 제단에 드려졌던 음식이라고 말하면 먹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말한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할 때에 중요한 것은 연약한 믿음의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먹고 마심의 사소한 문제에서도 내 약한 이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삼지 말아야 한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32)…" 바울은 타인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거치는 자'의 거침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의 기회를 자기 우월감을 위해 사용할 때 나타내는 열매이다. 자기 주장, 자기 자존심, 자기 교만, 시기가 있을 때에 사람들에게 '거침'이 된다. 자기의 욕심과 자기의 정욕과 자기의 영광을 구할 때에 이런 것들이 열매 맺게 된다. 이런 열매를 맺는 삶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다.


셋째는 삶의 모든 기회를 사랑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33)." 바울은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 환심을 사라는 의미가 아니다. 타인을 기쁘게 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 유익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 필요하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고백했다. 종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주인의 유익을 위하여 존재한다. 이렇게 사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다. 이는 다른 사람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종의 정신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 할 때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기쁨이 생길 것이다. 이 기쁨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 모든 삶이 하나님께는 영광, 우리에게는 은혜의 기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명환 목사
찬동교회

금-너무합니다
본문 : 왕상 17:8~16
찬송 : 370장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시돈으로 사르밧 과부를 찾아갔다. 지치고 굶주린 엘리야는 처음 보는 여인에게 "내가 마실 물과 내가 먹을 빵 한 조각을 가져다 주시오"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인은 힘없이 대답했다. "나는 당신에게 드릴 것이 없다. 내게 지금 남은 것이라고는 밀가루 조금과 기름 조금뿐이다. 저는 남은 밀가루로 빵 한 개를 만들어서 아들과 한 조각씩 떼어먹고는 그 다음에는 죽음을 기다릴 참이다. 당신에게 빵을 줄 여유가 없으니 용서해 주시오"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엘리야는 기가 막혔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의 과부에게 가면 너에게 먹을 것을 줄 것이다"라고 하셨다. 엘리야는 순종하여 그릿시내에서 사르밧까지 먼 길을 걸어 왔다. 와서 보니 찢어지게 가난했다. 형편이 굶어 죽게 생겼다. 먹을 것을 줄만한 처지가 아니다. 아들과 함께 먹고 죽을 한끼 양식 밖에 없다. 먹지 못해서 뼈만 앙상하다.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자식이 죽을 것 같다. 사르밧 과부는 통곡하고 싶었다. 이제 이 여인은 결단을 해야 했다. 선지자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떡을 만들어서 엘리야에게 줄 것이냐? 아니면 그냥 돌아가서 떡을 만들어 마지막으로 먹고 죽을 것이냐?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결단이다.
 
이 여인은 가져다 줄 수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순종한다. 죽음의 순간에도 순종하는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셨다. 하나님이 그녀의 마음에 믿음을 주셨다. 가난 때문에 울고 있는 그 여인을 살리시고 복 주시기 위해 주의 종을 보내신 것이다. 믿음은 내 생각과 내 환경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일어난다. 죽음의 위기의 순간에도 순종한 사르밧 과부가 받은 축복은 무엇인가?
 
첫째, 먹을 것이 넘치는 축복을 받았다. 기근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 둘째,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르밧 과부의 가정에 어려움이 찾아왔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그만 죽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아들을 살려주셨다. 사르밧 과부는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보았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사르밧 과부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에도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한 것처럼 우리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의 사람이라 해도 어려운 환경을 만나면 순종하기 힘들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고난중에 있는데도 또 고난을 겪게 하실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순종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축복하신다. 책임져 주신다. 양식의 축복, 생명의 축복을 주신다. 순종하면 우리의 영혼만 잘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오늘의 기도
 
순종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문섭 목사
좋은교회

토-미련함을 따라 가지 말라
본문 : 잠 26:4
찬송 : 200장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학창시절 시험을 치를 때면 컨닝을 하다가 선생님께 발각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 급우들을 폭소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옆 사람의 시험지를 베끼다가 오답도 그대로 옮겨 적은 경우이다. 만약 옆 친구가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으면 졸지에 우등생이 되는 것인데 그 아이도 사실 자신과 별 다를 바 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런 웃지 못할 추억 속의 촌극이 지금 우리 생활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 오답을 적는 것을 보고 따라서 그 오답을 베껴 적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고 따라 가는 것은 결국 오답을 옮겨 적는 것이나 다름없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물질만능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자식을 사랑보다는 돈으로 키우려고 하고, 지혜를 얻기 보다는 힘을 얻으려고 하고, 내면이 충만한 삶 보다는 외형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삶을 선호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스스로 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내세가 필요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승리자처럼 보여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따라 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연예인과 프로게이머가 되어 버렸다. 그들의 직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중에 갑작스레 부자가 되고 명성을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막연하게 그 길을 동경하는 아이들이 늘어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극소수의 성공한 사람을 제외하면 매우 불행한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고려하지 않고 부와 명성만을 쫓아간다면 어리석은 결말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어리석은 길이 아닌 주님의 길을 따라 가야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이목을 끄는 모든 것들 중에서 좋은 모습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 자녀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지혜로운 길을 따라가야 한다.
 
어리석은 방향을 바라보지 말고, 어리석은 자의 말에 현혹되지 말며, 그들의 말을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가르침을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 실천하면서 점점 더 지혜로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세상의 어리석음에 현혹되지 않게 하소서. 오직 예수님을 닮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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