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5월 30일~6월 4일

[가정예배]5월 30일~6월 4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05월 25일(수) 10:46

월-찬양의 영성
본문 : 삼상 18:10~16
찬송 : 288장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은 손에 수금이 들려져 있고 사울의 손에는 창이 들려 있다. 손에 항상 칼을 들고 있던 사울은 자신이 들고 있던 칼로 다윗을 죽이려다가 결국 자신의 생명을 찔렀다. 반면 수금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았던 다윗은 사울이 악령이 충만할 때에도 찬양하며 그 악령을 막았다.
 
악기와 칼, 줄 중에 어느 것이 더 강할까? 여러분이라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오늘 다윗을 악기를 들고 칼을 든 자를 이겼다. 찬양하기 위해 악기를 들고 있던 다윗, 그가 많은 시편을 기록하고 찬양으로 늘 주님을 높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찬양해야 한다. 위기에 처해 찬송할 수 없을 때 더욱 더 하나님을 높이며 그 능력을 찬송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찬송을 받으실 때 권능의 손을 펴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신다. 우리 인생의 목적 자체가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를 절망과 탄식으로부터 건져낸다. 위기의 환경,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는 능력은 은혜를 소멸하지 않고 신뢰와 감사의 마음으로 찬양하며 기뻐하는 삶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은 사울이 자신을 수레 밑으로 겸손히 숨길 때는 그를 높이 세우셨다. 자신의 나약함을 생각하며 겸손히 엎드렸을 때에 제비를 뽑힐 때 사울이 뽑히게 하셨고,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렇지만 자신을 높이기 위해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기념비를 세울 때 그를 버리셨다. 찬양은 곧 예배이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선포하는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찬양할 수 없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에 고난과 광야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고, 사울은 자신을 사랑하였기에 왕궁 안에 있으면서도 칼을 의지하는 자가 되었다. 다윗은 고난을 받아도 광야의 길을 가도, 원수가 자신을 죽이려고 덤벼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사울은 자신의 왕됨을 사랑했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을 떠났다. 그리고 그 왕권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그 칼을 의지했다.
 
하나님은 다윗을 높이고 사울을 폐하신다. 지혜롭게 행하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 지혜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전능자로 알고,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자신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고, 그 하나님을 높이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다. 그런 다윗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은 그의 평생동안 함께 하셨다.
 
오늘의 기도
 
입술에서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하시고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시열 목사
참사랑교회

화-사람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규례
본문 : 창 2:16~25
찬송 : 202장

천지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켜야 할 세 가지 규례를 주셨는데 안식일, 결혼, 노동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분의 명령에 복종하며 지킬 때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다.
 
첫째, 안식일을 지켜라. '안식'은 '정지, 멈춤, 휴식'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까지 천지만물과 사람 창조를 모두 마치셨다. 일곱째 날에는 그 날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하시고, 만물을 안식하게 하셨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식은 재도약을 위한 충전과정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의 완전성을 의미한다. 안식일이 지나 다시 일 할 필요가 없는 창조를 행하신 것이다. 사람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의 완전성을 인정해 드리며, 선물로 주시는 영원한 안식에 동참하게 된다.
 
둘째,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세우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유대인의 격언에 "하나님을 대신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 땅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말이 있다. 또 "남자의 집은 여자다"라는 말도 있다. 하나님은 여자를 짓되 배필로 지으셨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요, 돕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어 사랑으로 연합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세워가야 한다. 또한 자녀들에게 항상 말씀을 강론하여 주님의 명령을 잘 지키게 해야 한다.
 
셋째, 사람은 일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고 만다. 이후로 남자는 평생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과 수고를 통해 자식을 낳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현대 시대는 창조질서가 많이 무너져 가고 있다. 안식일도 지키지 않고, 결혼을 포기하는 자가 많고, 노동은 쉬운 일만 찾으려 한다. 자신만 사랑하고, 돈을 좋아하며,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할 줄 모른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세상을 거스르며 사는 존재다. 주일을 통해 예배의 안식을 누리고, 결혼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통해 이 땅에 천국을 가꾸며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통해 노동의 의무를 신실하게 감당해 감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순보 목사
구래중앙교회

수-행복한 가정
본문 : 시 1:1~6
찬송 : 402장

우리가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시편 1편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첫째로 행복한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자'이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않는다는 것은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악인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과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가? 구체적으로 교회의 권위(치리)에 순종하지 않고, 주의 종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자이다. 부모를 경멸하는 자이다. 복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다.
 
둘째로 행복한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자'이다. 배짱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을 하지만 죄도 배짱으로 짓는 수가 있다. 빤히 나쁜 것을 알면서 밀고 나가는 것이 바로 죄인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셋째, 행복한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오만한 자란 교만한 자이다. 교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다. 행동이나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비웃고 있는 태도로서 타락의 극치를 표현한 것이 '오만한 자'이다. 교만 가운데 가장 무서운 교만은 무신론이다. 시편 10편 4절에 보면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라고 했다.
 
넷째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시편 1편 2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다.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주님과 늘 동행하는 것이다.
 
결국 의인이란 그 일상생활이 하나님과 밀착된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그 마음과 삶의 근거를 하나님께 둔 사람,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본문 말씀은 가르치고 있다.
 
그들이 얻게 될 행복은 무엇인가? 시편 1편 3, 6절이 그 해답이다. 모든 일이 형통하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삶이 풍성해지는 복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이 된다. 가장 행복한 삶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다. 가장 행복한 가정을 온 식구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가정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식구들이 늘 하나님을 인정하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행복한 가정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표 목사
범물제일교회

목-가정을 세우시는 하나님

본문 : 시 127:1~5
찬송 : 408장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시지 않으면 세우려는 이의 수고가 무용지물일 뿐이라고. 가정을 세운다고 할 때, 이 말씀은 이미 이루어진 어떤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가정은 어떤 고정된, 또는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 늘 '되어 가는'하나의 과정이다.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가정의 구성원을 뜻하는 가족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더 더욱 그렇다. 가족은 더 이상 가족 구성원이 생기지 않는, 다시 말하면 가족 생산의 기능이 끝났다고 하여 완성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자녀라고 하는 입장이 어느 한 순간에 완성, 또는 완결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아버지를 예로 들면, '아버지가 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슬하에 자녀가 생기는 순간 아버지가 '된 것'이 아니다. 아들이나 딸이 생기고, 그 자녀가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고 사랑하며 아버지가 된다. 그 자녀들이 무르익은 인격을 갖춰 건강하고 균형잡힌 제 삶을 꾸려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 인격체가 살아있는 동안 어느 한 순간도 완결의 자리가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언제나 미완인 인격이다. 그리하여 늘 갖추어야 한다. 이루어야 할 것이 끊임이 없다. 우리는 '되어 가는' 존재이다.
 
그 되어 가는 과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고백은 우리를 겸손하고 신중하게 한다. 모든 것의 주인되시는 분 앞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에 우리가 얻는 유익이 있다. 가정이 세워지는 은혜를 얻는다.
 
집이 완성되었다고 하여 가정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자녀를 낳았다고 부모가 된 것도 아니다. 가족들이 있다고 가정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설계하셨다. 집이나, 자녀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우리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우리의 진정한 평안과 보장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낮아지지 않으면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가정의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가정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가정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그러면 가정이 든든히 서가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고정되거나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가야 하는 것이라는 고백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자. 그렇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뜻을 따르면 거기에 사랑의 샘이 솟는다. 믿음이 든든한 줄기를 이룬다. 기쁨의 꽃을 피운다. 보람의 열매가 맺힌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가정을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보배로운 선물이요, 기업이요, 상급인 가족들 모두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기해 목사
광천교회

금-왕을 세우신 이유
본문 : 삼상 8:1~22
찬송 : 290장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서 왕정이 시작된 기원에 대해 알려준다. 고대사회로부터 대부분의 나라의 종교는 왕정을 정당화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성경은 왕정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며 인간의 통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자유를 제약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이 온전한 것임을 강조한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사무엘은 스스로 뜻하지 않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정을 요구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다. 사무엘은 탁월한 지도자지만 그에게도 연약한 모습이 있어서 나이가 들어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에 자기의 미숙한 아들들을 사사로 임명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뇌물을 받고 부당한 재판을 하며 불의한 짓을 서슴지 않음으로 백성들을 괴롭게 하고 원성을 자아냈다. 백성들의 대표들은 사무엘을 찾아와서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한다. 그들의 불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다. 사사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제도이고 이들은 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를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신다. 이 장면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해 매우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행했던 어리석은 결정, 잘못된 선택들에 대해 후회하고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그런 일을 저지르도록 내버려 두셨는지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신앙이란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만 돌리고 무책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른 신앙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책임있고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인격과 신앙의 성숙은 성경적인 가치관과 분별력을 갖추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그러한 성숙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자신이 결정한 것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변화하고 성장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정을 선택하므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불의한 왕들을 통해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기를 소망하며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아를 기대하는 신앙을 갖게 된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기대와 소망의 결과들을 경험하게 하시면서 더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분별하는 과정이다. 기도와 삶이 서로 연결이 되어 기도로 응답받은 것을 삶으로 실천하고 삶 속에서 깨달은 것을 기도로 올려드리며 더 성숙한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오늘의 기도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도록 깨우쳐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명윤 목사
현대교회

수-세 가지 수
본문 : 행 1:15, 17, 2:37~41
찬송 : 586장

첫째, 무리의 수(數)다. 사도행전 1장 15절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여자들, 예수님의 형제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다락방에 모인 무리의 수가 약 120명이나 되었다고 전한다. 오늘  120명밖에 모이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인 120명의 수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데 있다. 또한 숫자 120은 '인내의 수'를 의미한다. 이것 또한 위의 사실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는 탄생되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회복되고 재현되기를 간구한다.
 
둘째, 우리의 수(數)다. 사도행전 1장 17절은 베드로의 설교 가운데 가룟 유다를 가리켜 본래 우리 수(數)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건대 예수님의 제자로, 베드로의 동료로 최소한 3년을 동고동락한 사이치고는 '우리의 수'라는 표현이 왠지 냉정한 느낌이다. 가룟 유다가 한 때 예수님의 제자였을 망정 단지 우리의 수(數)가운데 한명이었다는 한 마디로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연 나는 어떤가? 하나님께서 나를 단지, 목사의 수,장로의 수, 집사의 수, 권사의 수, 교인의 수로만 평가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할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겸손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어 봐야 할 것이다.
 
셋째, 신도의 수(數)다. 사도행전 2장 41절은 다락방에 임한 성령강림 후 세계도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신도의 수(數)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전한다. 모인 무리의 수도 아니고 더군다나 우리의 수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도의 수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3000명의 숫자, 그 자체보다 3000명이 넘는 신도의 수를 베드로 설교 한 번에 가능케 하신 성령의 역사이다. 1000은 가족이나 군대의 단위를 의미하는데 1000 곱하기 3이야말로 십자가 군대 같은 성령 충만한 교회가 성령의 역사로 시작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3000명을 기록한 하나님의 의도다. 바로 지금,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신도의 수(數)야말로 우리가 진정 갈망하는 부흥의 수(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수는 꿈도 꾸지 못하게 하시고 무리의 수를 넘어 신도의 수로 넘쳐나는 한국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양록 목사
성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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