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월 28일~4월 2일

[가정예배] 3월 28일~4월 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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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23일(수) 15:30

월-부활의 신앙
본문 : 고전 15:1~8
찬송 : 171장

성경에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 기록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구약에선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사건이며, 신약에선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활하신 사건이다.
 
천지창조와 부활의 기적을 믿기만 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을 믿을 수 있다. 기적은 자연의 반대 개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적을 초자연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기적은 인간의 이성, 상식,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부활은 인간이 영원히 안고 가야 하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린 하나님의 승리사건이다. 이런 부활의 축복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있다. 바울이다. 바울은 당대 지성을 대표하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부활 신앙은 학문이나 철학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한 엄청난 사건이라고 했다. 고전 15장 3~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다.
 
이 부활의 믿음은 이론이 아니다. 믿음은 죄로 인해 죽어가는 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만나는 체험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예수님의 교훈이나 그분의 생애, 기적 또는 그분의 죽음에만 초점이 있지 않다. 기독교 신앙은 이 모든 것 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절정을 이룬 부활 사건에 기초하고 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 부활은 하나님의 승리이자 동시에 시탄의 완전한 패배이다. 부활은 죽음의 패배이고, 생명의 승리이다. 신앙인은 부활할 것을 믿기에 어떤 슬픔과 위기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부활신앙이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 승리하게 함을 믿으시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를 미리 예견하셨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보여주신다. 왜 못 자국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 주셨을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인간은 부활자체를 거부한다. 인간 안에는 부활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아무나 이해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영인 성령 받은 사람만이 이해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부활하신 영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이고, 이해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 살아계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부활이 믿어지고, 확신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망의 과정을 통해서 부활의 존재가 된다는 이 기쁜 소식을 온 종일 찬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승호 목사
고성교회

화-뜨거운 신앙생활
본문 : 벧전 4:7~11
찬송 : 498장 



본문은 베드로를 통해 우리에게 뜨거운 믿음 생활을 격려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겨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다가올 로마의 대환란과 믿음의 핍박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믿는 자들에게 네로황제의 불시험을 잘 이겨냄으로써 진정한 영적 성숙과 믿음의 진보를 가져올 것을 알기에 믿음의 준비, 각오, 변함없이 주님의 일에 정성을 다할 것을 간곡히 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첫째, 정신을 차리고 성령 안에서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한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초대교회 당시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이 불의 혀같이 임하여 강하고 담대한 성도들이 되게 했다. 그들은 순교의 길도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충성한다. 기도는 믿음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게 하며 능력있는 성도로 든든히 세워 주시기에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둘째, 주안에서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해 주심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랑을 이웃에 전하는 것이 일평생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사명이다. 요한계시록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말씀을 버리고, 기도를 버리고 믿음의 열정과 하나님의 은혜를 버렸기 때문에 책망받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모습이다. 주님의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신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이 친히 보여 주신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고 대접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울법이요 선지자니라"고 가르치시고 또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드리며 너희도 이같이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주안에서 아름다운 섬김의 삶을 영위하자.
 
넷째,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된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쫓지말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의 소욕은 생명이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게 하시며 육체적 죄악의 길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능력이 있다. 썩어져가는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며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여 항상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는 성도, 주님의 거룩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 봉사와 구제를 아끼지 아니하는 성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항상 주안에서 기뻐하며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조현 목사
세광교회

수-부활의 첫 증인
본문 : 요 20:11~18
찬송 : 161장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목격담은 복음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세 명의 여인이 무덤가에서 흰옷 입은 젊은이를 보았고 나사렛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는 명령을 전하게 하셨다. 누가복음에서는 사도들이 여자들의 전하는 말을 들었지만 허탄한 말로 여겨 믿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체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처음부터 믿었다고 한다면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부활 사건은 사람들의 상식에서 볼 때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부활은 현실이라는 인식의 차원을 뛰어넘은 사건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의 세계와 영적인 세계 어느 것이 본질인가? 영적인 영역인 완전한 하나님의 세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현실은 지극히 작다. 그 무한하신 하나님의 신비를 예수님을 통해 예표와 증거로 또, 첫 열매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자신의 인식과 경험의 틀 안에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현실적 한계 너머를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부활의 증인이 될 준비를 갖춘 이들이 있었다.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을 찾아 갔던 여인들이다. 사실 이들도 그저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보기 원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정성을 보이기 위해 간 것이다. 그러나 곧 이 여인들의 인식을 뛰어넘는 사건이 벌어진다.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사람들에게 가서 이 소식을 전하라"고 말한 것이다.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만나주셨다. 예수님은 왜 하필 부활하신 거룩한 몸을 일곱 귀신 들렸던 한 여인에게 보이셨을까?


그것은 이 여인이 부활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그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좇으며 그 자리를 지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찌 보면 미련할 정도로 자리를 지켰다. 자기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믿음의 자리를 지킨 이 여인을 가장 먼저 만나주신다. 사람들이 멸시하고 외면하던 천한 여인을 주님께서는 첫 번째 증인으로 삼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부활의 능력을 믿으며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성도들에게 오늘도 주님께서는 찾아오시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감격을 누리게 하신다.
 
오늘의 기도
 
때로 믿기 힘들어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신뢰하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리를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광서 목사
영화교회

목-성령이여, 열매 맺게 하소서
본문 : 갈 5:22~26
찬송 : 436장

예수님께서는 "좋은(나쁜) 나무에서 좋은(나쁜) 열매를 맺듯이, 좋은(나쁜) 사람에게서 좋은(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신다. 농부가 포도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얻기를 기대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좋은 열매가 맺길 원하신다.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그럼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
 
첫째, 입(말)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말은 믿음의 표현이며, 인생의 예언이다. 말은 창조력과 성취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말한 대로 살아가고, 자신이 한 말의 열매를 따먹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말이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창조적이어야 인생에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둘째,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도마는 주님을 3년간 좇아 다녔지만, 믿음이 없었기에, 불순종의 열매만 맺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믿음을 갖게 된 후로,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을 순교의 열매로 드렸다.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위대한 일에 헌신할 수 있다. 셋째,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다. 성령의 열매는 9개가 아니라 한 가지, 사랑이다. 그 사랑의 열매에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8가지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이다. 미움을 버리고 사랑으로 살았다면, 가장 위대한 인생을 산 것이다. 넷째, 생명 살림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러기에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생명 살리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다섯째, 사람 키움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사사기 시대의 불행과 비극은 가나안 정복세대(기성 세대)가 가나안 정착세대(다음 세대)를 영적으로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길러내지 못하면, 미래의 나무에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럼 이런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빛과 거름과 물이 필요하듯이 우리도 열매 맺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말씀의 빛이 필요하다. 말씀을 빛을 계속 받아야 시든 영혼이 소생케 되고, 자라고, 건강해진다. 둘째, 기도의 거름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온전한 순종으로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계속적인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인생의 열매를 맺으려면 기도를 통해 영적 에너지와 능력을 계속 공급받아야 한다. 셋째, 성령의 물이 필요하다. 낙타는 더운 사막에 보름씩 있어도 목마르지 않다. 낙타 몸 안의 물주머니에 물이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생수의 강이 되시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세상의 갈증은 사라진다.
 
오늘의 기도
 
성령님! 우리로 하여금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금-항상 기도해야 한다
본문 : 눅 18:1~8
찬송 : 365장

이제 사순절을 지내고 부활의 감격을 누리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쉬어선 안된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기도는 신앙인의 생명이요, 영혼의 호흡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대화의 중요한 통로이다. 성도들의 기도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기도와 차원이 다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기도의 생활화를 위한 자세가 무엇일까? 어떻게 하는 기도가 옳은 기도일까?
 
기도는 믿음으로 해야 한다. '항상 기도하고'라고 했다. 이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믿음이 없이는 항상 기도할 수가 없다. 기도의 대상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믿을 때에 더욱 기도는 유효하다. 시편 저자는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대상자이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기도하는 태도는 믿음의 능력과 비례한다.
 
기도는 인내이다. 본문은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했다. 기도는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바를 믿고 인내로 응답받는 것이다.
 기
도는 응답 받은 줄로 믿는 것이다. 본문 8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과부가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처럼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는 결코 외면하시지 않고 들어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하는 자들의 취할 태도는 믿고 구하라는 것이다. 반드시 응답하신다.
 
기도는 신앙의 생활화이다. 기도하는 것은 매우 쉽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고 인내로서 응답을 받는다는 신앙의 생활화이다. 신앙의 생활화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내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세상의 근본적인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보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되면 그것은 기도의 생활화가 아니다. 집단의 이익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와 '땅의 것'은 양립할 수 없다. 세상에 속한 육체로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육체가 완전히 썩어서 없어지고 새 몸을 입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항상 기도함으로 기도가 생활화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석윤 목사
광주상록교회

토-믿음으로 반응하라
본문 : 사 43:14~21
찬송 : 357장

심각한 영적 위기는 하나님을 추상적인 개념이나 비인격적 존재로 여기는 데 있다. 이사야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의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를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전하면서 구원의 능력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본문은 그의 백성을 찾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 예기치 못한 험난한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은 모든 과정을 통해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신뢰하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인생을 주관하시고 모든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위기 가운데 있는 그의 백성을 위해 기적을 베푸신다. 본문에 기록된 '바다 가운데 길', '병거와 말', '군대의 용사' 등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고 두려움 속에 빠지게 만드는 요소들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했던 정치 현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과 포로귀환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암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셋째, 이전 것에 머물러 있지 말고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이사야서 43장 18절은 새로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기억하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주어졌다. 과거의 향수에 깊게 젖어 있지 말라는 도전이다. 새로운 일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새로운 일을 나타내 보여주실 하나님을 기대하길 바란다.
 
넷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 내가 택한 자'라고 칭하셨다. 이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 비로소 인생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 함',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자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시고, 찬송이시며, 구원이심을 믿고 담대하게 선포하라.
 
오늘의 기도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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