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2월 15~20일

[가정예배]2월 15~20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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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1일(목) 09:42

월-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자
본문 : 엡 1:1~14
찬송 : 283장

성도가 받는 구원은 신령한 복이다. 구원받고 그 은혜를 누리고 사는 것은 성도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면서 그 혜택이 교회를 통해서 만물에까지 흘러가야 한다. 이 신령한 복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지는 축복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주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우리를 아들로 택하시고 예정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신 것이고, 십자가 부활 승천 안에 모든 복이 포함되어 있다. 이 복을 누리려면 육신의 소욕을 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 택하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신령한 복을 깨달은 바울은 찬송하면서 감사하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포함되었다는 것에 하나님의 영광스런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함이 마땅하다.
 
성자 예수님은 그의 피로 속량 곧 죄사함을 주셨다.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해방시킨다는 뜻이다. 속전을 지불하고 노예 문서를 파기하고 자유 시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는 죄사함의 은혜이다. 이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단번에 영원히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인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이 보혈의 능력과 도우심을 영원히 온전하게 받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깊은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성도들이 구원의 비밀을 알기를 원하고 죄 사함만이 아니라 만물에까지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우리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는 일을 위해 부름 받았다.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도록 복음을 전하자.
 
성령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게 하심으로 인치신다. 만약 복음을 듣지 않는다면 믿음이 생겨지지 않는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점점 자라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증하시는 인을 쳐주신다. 그리고 기업을 상속받을 때까지 보호하고 보증하신다. 성도는 구원의 확신을 위해 말씀의 근거를 가지고 확인하고, 더 깊은 성령과의 교통을 위해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복과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진리가 더 열리도록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계속 성장하자.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훈련받자. 날마다 하나님께 찬양하며 영광을 드리는 성도가 되자.
 
오늘의 기도
 
구원의 은혜를 깊이 알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승철 목사
성광교회

화-가정예배로 성숙된 아브라함
본문 : 창 18:16~21
찬송 : 425장

아브라함은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손님 셋을 맞이하게 된다. 아브라함과 그의 온 집안은 세 손님을 극진히 대접했다.


먼저 아브라함은 이들을 보자마자 '달려 나가' 영접했다. 그리고 아내 사라에게 급히 가서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떡을 만들 것을 주문하고는 하인에게로 '달려가서' 송아지를 손수 잡아 하인에게 주었다. 그 하인은 '급히' 요리하였으며, 아브라함은 이렇게 준비한 음식을 잘 차려서 세 나그네를 대접하였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과정은 가장인 아브라함에서부터 하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좋은 재료를 가지고 아주 신속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아브라함 집안의 가풍은 '환대'라 할 수 있다. 히브리서는 이 일을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했다(히 13:2)'고 기록하고 있다. 환대를 받은 나그네들은 떠나면서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말해준다. 하나는 아브라함 집안의 장래에 대한 것으로서,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도시 국가인 소돔과 고모라의 장래에 대한 일이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그의 집안은 나그네를 환대함으로 한 가족과 한 나라의 장래에 대한 비밀을 듣게 되었다.
 
아브라함 집안의 이러한 가풍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그 뿌리에는 아브라함 집안의 가정예배가 있었다. 이방인의 후손으로서 아브라함은 가는 곳곳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향해 제단을 쌓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이 예배는 아브라함의 가족은 물론이요, 하인들까지 포함된 온 가문이 함께하는 예배였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가정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눔으로 집안의 분위기, 즉 가풍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며, 그리고 그 결과 가정과 나라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하나님을 행하여 제단을 쌓을 줄 아는 자는 하나님 마음 가까이 있었기에 나그네가 누구인지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알아볼 수 있었고, 환대했고, 나라의 장래와 가문의 장래와 소돔 고모라의 장래를 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가문의 장래와 이 사회의 장래와 나라의 장래를 말씀하고 계실 것이다. 직분의 관계없이, 유무식의 관계없이 예배를 통하여 말씀하심은 예배자들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알아들어야 한다. 긴 예배 시간을 싫어하는 시대, 매일의 가정예배를 식상하게 여기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의 아브라함을 부러워하는 마음마저 사라질까 두려워 가정예배를 멈출 수가 없다.
 
오늘의 기도
 
시대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가문을 위하여 말씀 하옵소서. 우리가 듣겠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출 목사
위동교회

수-강건하여라
본문 : 고전 16:13
찬송 : 425장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해야'만 한다. '남자답게'라는 말은 일반적으로는 '힘을 바탕으로 해서 용감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을 뜻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남자답다'는 말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굳게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신앙의 강건한 모습'을 말한다.
 
강건한 신앙인은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유혹이 오고 시련이 닥친다 해도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다. 어디에서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서 일할 수 있는 사람, 나에게 힘든 일일지라도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기쁘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 나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성령충만한 사람이다.
 
반대로 강건하지 못한 사람은 힘든 세파에 시달려 쓰러질 것만 같아 보여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겨우 겨우 믿음의 걸음마를 떼는 정도의 사람이다. 자기 스스로 믿음의 길을 달려가지 못하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억지로 교회에 나오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겨우 봉사하는 사람,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자기 기분과 자기 감정과 자기 이익이 하나님보다 앞서며, 간신히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옆에서 지켜보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모든 믿음의 문제를 스스로 헤쳐 나가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자답게 강건하기 위하여 깨어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잠들어 있는 자는 식물 인간이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며 전혀 의식불명인 사람은 살아있기는 하나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분별도 할 수 없다. 영이 깨어 있지 않은 자는 은혜도 사랑도 인식하지 못함으로 언행의 의식 작용도 불가능하다. 깨어 있어야만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강건한 믿음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패배, 분쟁, 저주, 멸망의 자리에 있게 됨은 믿음의 자리에 확고부동하게 서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사는 사람이요, 축복의 울타리 안에 있는 자이며, 도피성 안으로 들어 온 사람이요, 인생 최고 최선의 자리에서 사는 자이다.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날마다 강건한 믿음의 용사들로 살아가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로 하여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함을 가지고 환란 많은 이 시대에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우 목사
왜관제일교회

목-준비시키시는 하나님
본문 : 출 2:1~25
찬송 : 312장

어려운 상황 중에도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듣고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진행시키시는 원칙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중요하고 특히 준비된 사람이 중요하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준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된다. 좋은 사람, 특히 하나님이 준비시키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다. 왜냐하면 준비된 사람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도 좋은 사람, 준비된 사람이 되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 지도자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준비되어져야 한다. 모세는 80년 동안 준비되는 과정을 통해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
 
준비된 사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의 교육이 필요하다.
 
첫째는 가정교육이다. 6세 이전에 우리의 정신세계가 거의 결정 되는데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세의 부모는 제사장 계열인 레위 족속 가운데서 배우자를 찾았다. 어려운 때라도 레위 여자를 찾아서 결혼을 했다는 것은 신앙을 생각한 것이다. 부모들에게는 이런 신앙 의식이 필요하다.
 
또한, 모세 뒤에는 믿음의 사람 요게벳이 있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궁궐까지 들어와서 신앙교육을 시켰다. 사무엘은 하나의 기도가, 세례요한에게는 엘리사벳의 기도가, 디모데에게는 유니게와 로이스의 신앙 배경이 있었다.
 
둘째는 왕자 수업이다. 그 시대를 알고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공교육, 현대교육, 일반화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궁궐에 집어넣으신 이유는 바로의 궁궐에서 정치, 경제, 사회, 외교, 군사, 행정 등 모든 분야의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셋째는 광야훈련이다. 모세는 광야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과의 관계 훈련이고 영성 훈련이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쓰지 않고, 모세를 광야에서 불러서 사용하신 이유는, 궁중교육과 광야교육을 통하여 큰 그릇으로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광야훈련은 신발을 벗는 행위 즉 네 주권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신발을 벗기려고 80년을 준비시켰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자기 왕국을 세워서는 안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한다. 광야 훈련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기 것만 챙겨버리면 광야는 계속 길어진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았다. 오늘도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위해 준비된 사람으로 살아가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의 대행자로 살기 위해 준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지형 목사
성덕교회

금-칭찬받은 믿음
본문 : 눅 7:1~10
찬송 : 96장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준다.


첫째, 자기 종을 사랑했다.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2절에서 백부장의 종을 '둘로스'라는 단어로 썼다. 둘로스는 종 또는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7절에 백부장은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할 때에 하인이란 단어로 '파이스'를 쓰고 있다. 이 단어는 아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둘째, 피정복민을 사랑했다. 정복자는 피정복민을 착취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백부장은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이들을 위한 회당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했다. 아무리 유대인들을 사랑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라면 다른 선행은 배풀지언정 회당을 지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며 산 결과가 무엇인가?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도움을 요청하자 유대인의 장로들이 앞장서서 예수님께 그의 선행을 말하며 백부장을 위해 간절히 구했다는 것이다. 이방인이요 식민지배자요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니라 종에 대한 부탁임에도 지역의 어른들이 나서서 도와줄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백부장처럼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주변사람을 사랑으로 섬길 때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백부장을 돕기 위해 가시게 된 것은 그 사람의 선행 때문이었지만 칭찬하신 것은 백부장의 믿음 때문이다.
 
백부장은 어떤 믿음을 보여주었는가?
 
첫째, 예수님을 거룩한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 믿었다. 백부장은 자신과 예수님의 관계를 부하와 상관의 관계로 비유하며 말하고 있다. 자신은 예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할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을 가진 식민지배자와 일개 전 목수 출신 선지자의 관계를 생각할 때 신성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고백이다.
 
둘째, 예수님을 말씀만으로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믿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나사로를 살리셨다. 말씀으로 풍랑을 잠잠케 하셨고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다. 말씀으로 중풍병자에게 명한 즉 일어나서 걸어가는 일이 일어났다. 얼마든지 종을 말씀만 하셔도 고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던 마가의 집에 있던 성도들처럼 우리도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둘 때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이나 생각보다 크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더욱 키워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형백 목사
오류동교회

토-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자
본문 : 행 11:26
찬송 : 436장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 본문 26절에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에서'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를 세우고, 1년 동안 열심히 목회하면서 교인들이 늘어났고, 이 안디옥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러주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헬라어는 '크리스티아노스'인데, 이 말은 '크리스토스'와 '아노스'의 합성어이며, '아노스'라는 접미어 의미는 '~당에 소속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당에 속한' 혹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의 것'이란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고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말은 황제나 왕들의 칙령 및 포고들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전 교회의 공적이고, 격식을 갖춘 결의 및 선언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그런데 '크리스티아노스'라는 말은 안디옥에 있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붙여 주었다. 왜 일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절반은 욕, 절반은 농담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경멸을 포함하는 별명이었다. 안디옥은 많은 인구와 부로 인해 타락하고 부패한 도시였다. 안디옥은 대프니이 여신 숭배를 빌미로 음란이 보편화되었고, 미친 듯이 날뛰는 스포츠, 사형, 도박 등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크리스티아노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당시 사람들과 달리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고,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므로 사람들이 두려워했으며 유무상통했고, 온 백성들에게 칭송받았다. 또 그들은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사렛인', '갈릴리인'이라 불리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방인의 땅, 그것도 유대인만이 아니라 헬라인들도 포함된 안디옥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이름은 또한 기독교가 유대교와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시대 풍조를 따르지 않고 참된 경건의 삶을 살아갔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본받아 그 삶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작은 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자.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홍준 목사
하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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