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공보 70년사

한국기독공보 70년사

[ 창간70주년특집호 ]

이경남 기자 knlee@pckworld.com
2016년 01월 13일(수) 17:48

일제치하 36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8ㆍ15 민족 해방을 맞은 우리 역사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아픔과 혼란의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선구적 역할을 감당하고, 한국 교회가 민족을 향해 통일된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탄생한 신문이 한국기독공보의 전신인 '기독교공보'이다. 조선기독교남부대회의 기관지로 창간되어 1946년 1월 17일 발간된 기독교공보 첫호는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국한문 혼용 내려쓰기를 채용했으면 편집 겸 발행인에 김춘배 목사를 필두로 거의 남부대회 기관 소식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남부대회의 성격규정을 둘러싼 교회 내부의 갈등이 표면화 되면서 감리교와 분리되어 교파를 초월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던 기독교공보의 뜻은 좌절되었다. 그후 1947년 영락교회 김응락 장로가 신문을 인수하였고 또 다시 1948년 발행권이 토마스목사기념 선교회로 넘어가게 되면서 제호를 '기독공보'로 변경한다. 그러나 1950년 6ㆍ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신문은 139호를 마지막으로 휴간되고 만다.
 
중단되었던 신문은 1951년 12월 26일 피난지인 부산에서 140호로 복간되었다. 1953년 1월 20일 지령 200호를 발행하게 된 기독공보는 이후에도 잦은 편집인 변경 및 개인이 운영하는 신문사로서 경영의 어려움을 겪다가 장로교 기관지로 인수하자는 운동에 힘입어 1954년 개최된 예장 39회 총회에서 교단 기관지로 결의됐다. 이후에도 1966년 9월 열린 제51회 총회서 갑작스레 폐간을 결의하면서 펜을 꺾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복간을 위한 계획은 1970년 7월 31일에 이르러서야 실현된다. 같은 제호로 신문을 낼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에 기독공보는 '한국기독공보'로 변경되어 민족의 아픔과 시대의 부름에 부응하는 강경한 필치를 끌고 나갔다. 1973년 9월 23일 지령 1000호, 1984년 3월 26일 1500호, 1997년 9월 5일 2000호, 2005년 3월 8일 2500호, 그리고 2015년 6월 20일 지령 3000호를 기록하기까지 신문은 활발한 문서선교 활동을 펼치며, 이단 사이비 세력을 제재하는 등 한국교회와 함께 하며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왔다. 신문은 격주 발행에서 매주 발행, 2면, 4면, 8면, 12면, 16면, 24면, 28면까지 증면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기관지로서 '생명을 살리는 신문, 평화를 이루는 신문, 선교를 이끄는 신문'이란 사시처럼 교단을 넘어 시대에 걸맞는 교회의 역할과 방향을 제시해왔다. 그리고 이제 70년을 넘어 100년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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