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소그룹

응답하라 소그룹

[ 교회, 다시 희망으로 ] 작은공동체에 희망있다

정성진 목사
2016년 01월 12일(화) 15:25

몇 년 전, 교회 개척 성공률이 10%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개척한 교회를 보니 약 10%가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성공이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생존률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요즘은 개척 생존률이 2%라는 이야기를 한다. 개척교회가 100개면 약 2개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필자가 섬기는 교회 주변에 자립하지 못한 채 쓰러지는 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 만가고 있다. 이게 우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의 문제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일수록 '아드폰테스', 즉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교회의 성공신화는 이미 막을 내린지 오래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교회에는 교회론이 아닌 교회성장론만을 가르친다는 청어람 양희송 대표의 말은 우리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우리가 본질이자 모델로 여기는 초대교회는 유무상통하는 나눔의 공동체였다. 건물이 아닌 가정 중심의 소그룹예배공동체였다. 교인들이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는 친교공동체였다. 소외된 이웃을 품는 가족애적인 사랑공동체였다. 그래서 각 개인이 소외되는 일이 없었다.

한국교회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물량주의이다. 물량주의는 소수보다 다수를 인정한다. 숫자가 많으면 진리가 된다. 물량주의의 결과는 비인간화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도들을 숫자로 파악하는 비인간화를 극복하고 초대교회와 같이 사랑을 나누며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교제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은 대표적인 한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간곡한 심정을 담은 장이다.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곤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예수님의 관심은 한 영혼이 회개하고 천국 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의식은 '몇 명이 모였느냐'에 대한 관심이요, 이 질문이 부흥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이는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하는 입장이다. 교회마저 세속화의 흐름에 편중되어 나아간다면, 더 이상 한국교회를 향한 기대와 희망의 불씨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현대 사회는 가족이 해체되고 개인주의의 경향으로 인간관계가 단절되면서 소외 심리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갈증이 가득하고, 영적인 충족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게 된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들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종교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교회는 이들의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가 한국교회에게 요청하는 것은 한 영혼을 향해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소그룹이지 군중들이 모인 대그룹이 아니다. 건강한 세포(cell)가 모여야 건강한 생명체를 이루듯, 건강한 소그룹이 넘쳐나야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다. 결국 성도 한 사람도 소홀함 없이 세밀하게 돌아 볼 수 있는 작은 공동체, 작은 교회는 내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환경과 가능성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여, 작은 공동체여 다시 일어나자!

예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어주신 것처럼,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서 사회에서 낙심하여 상처받고 외로워하는 이들을 향해 안아주자. 울어주자. 교회의 눈물을 통해 다시 생명의 싹이 피어오를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