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28일~1월 2일

[가정예배]12월 28일~1월 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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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2일(화) 17:16

월-크리스찬의 '리드십'
본문 : 마 20:28
찬송 : 276장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말하기를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는 반비례한다'고 했는데 영적인 문제는 더욱 그렇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원인은 물질의 문제도 아니요, 군사력의 문제도 아니며, 문명의 문제도 아닌, 의인 10명의 부재, 즉 영적비패의 결과이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한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자녀들을 왕의 좌, 우편에 앉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녀의 관심은 나눔 보다는 소유에, 섬김 보다는 지배에, 말석 보다는 상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의 사람이 되려면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당시 종의 신분이란 비천함 그 자체다. 자신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한 자가 종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주인이 수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려고 했을 때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주인을 위한 섬김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인다. 그러기에 그들은 항상 침묵 속에서 일을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찬의 침묵이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나를 위해서는 할 수 있지만 너와 공동체를 위해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너의 유익을 위해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덕을 위해서이다.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자유를 너와 모두의 유익을 위해서 제한시키는 것이다.
 
이 절제된 힘을 요셉에게서 본다.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안겨다 준 보디발과 그의 아내에 대한 태도이다. 그가 '을'이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갑'의 위치에 있다. 그는 강자(갑)가 되었다. 하지만 약자(을)인 보디발과 그의 아내에 대해서 일체 언급을 회피한다. 이것이 크리스찬의 리드십이며, 그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주님께 시선을 돌려보자. 주님은 당신 자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섬기기 위함'이라고 본문에서 말씀하신다. 오늘날 '교회의 일(밖)' 보다 '교회 일(안)'에 더 많은 영적 에너지를 쏟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고발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변화 산에서 베드로의 요구(안-지배)를 거절하시고 그의 손을 잡으시고 하산하신 주님의 모습(밖-섬김)을 회복해야 한다. 주님은 크리스찬의 리드십을 '섬김'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섬기기 위해서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12월이 저물어 간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달력의 이름을 마음의 움직임이나, 자연, 또는 풍경의 변화를 보고 짓는다고 한다. 그들은 12월을 이렇게 부른다. '무소유의 달, 침묵의 달'. 대림절에 침묵 속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 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직 주님만 본받아 조용히 섬기는 리드십을 발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두기 목사
울산수정교회

화-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본문 : 눅 2:25
찬송 : 524장

성탄절을 보내고 한 해를 마감하는 한 주간이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시몬이라는 사람은 기다림이 간절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다.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2장에는 시몬은 기다리던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감격스럽게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올려드린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기어코 만난 시므온은 어떤 사람인가?
 
첫째, 의롭게 사는 사람이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다는 뜻이다. 시몬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생활을 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위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의인에게 있다. 의롭게 살아온 시몬은 결국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받게 된다. 오늘 이 시대에 의로운 삶은 우리의 참된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다.
 
둘째,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다. 경건하게 사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믿음생활과 성품과 그리고 재물의 사용까지를 포함한 전인적인 삶의 성화를 도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디모데전서 4장 7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반복하고 반복해서 운동선수가 피나는 훈련을 하는 것과 같이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훈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이다. 시몬은 그리스도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 시므온은 복을 받았다. 그렇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2015년의 성탄절을 기쁘게 보내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진정한 삶은 우리의 참된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에 뜻에 맞는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며 다시 심판주로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세상은 어둡고 모두들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중에서도 인내하며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성탄절을 보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시몬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경건생활에 힘쓰며 기쁨과 감격으로 다시 만날 주님을 소망하여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기다림
본문 : 마 1:18~25
찬송 : 95장

누구를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나? 그 사람을 기다렸던 것만큼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나? 예수님과 나와의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기다림이 신앙이다. 내 중심이 주님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분이기 때문이다. 디베랴 바닷가로 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인인가? 손님인가? 내가 주인인 사람은 여전히 죄 안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마음에 자기가 주인된 사람은 자기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산다. 예수님이 멀리 계시도록 한다. 나의 삶에 예수님의 은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면서도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주님을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회개한다는 것은 길을 돌이키는 것이다. 자기가 주인되어 살던 것을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고, 재림의 주로 오시는 분을 기다리는 것이 바른 신앙의 모습이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다.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서 살아왔고,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면 염려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골리앗을 두려워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 있는 문제는 똑같았지만 문제를 대하는 자세는 전혀 달랐다. 다윗은 특별히 잘난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므로 내가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승리한 자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모두가 되자.
 
잘되고 편안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어려움이 닥치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확증되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내 삶의 환경이 좋아지는 것이 형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구세주 예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자.
 
오늘의 기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재림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용선 목사
온무리교회

목-주님 은혜의 폭포속으로
본문 : 스 9:7~15
찬송 : 314장

신앙인들에게 시간의 경과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새롭게 성별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다. 오늘 에스라서 9장은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구별해 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난다. 더러운 죄악들을 쳐내고 그분의 은혜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성화시킨다.
 
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경험하는 범죄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열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일각 밑에 있는 빙산전체를 폭로시키는 것이다.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그래서 얼굴을 못 들게 한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죄를 깨닫고 거저 주신 은혜임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영광만 찬양하면 된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8절에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이들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9)." 하나님이 돌아오게 하셔서, 성전을 세우고, 수리하고, 울타리를 주셨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10)"를 보면 하나님께 면목이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면목 없는 인생 되게 하려고 섭리하신게 아니라, 우리 인생으로 자기자랑 못하게 하고, 예수와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도의 교제를 할 때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린 때로 실수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 실수를 통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도록 섭리하십니다"라는 진지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성별이란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성화다. 속죄해 더러움에서 벗어난 백성은 성별의 삶을 산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으로 그 작업을 하신다.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이 땅의 평안이나 번영을 추구는 것이 세속주의다. 하나님 없이 평안을 취하고, 하나님 없이 번영해서 많은 돈을 저장해 놓으면 내 노후가 평안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세속주의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오늘 내 영혼을 걷어 가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지금까지 살려주셨으니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 것을 믿는 것이 평강이요 안식이다.
 
2016년에도 말씀을 들을 때, 하늘이 주는 '안식'을 경험해서 이웃에게 평강을 나누어 주는 일에 쓰임받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때로 실수하고 범죄 할 때 나를 성별해 주신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예수님의 은혜속에서 하나님만 찬양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덕호 목사
복음교회

금-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자
본문 : 막 3:20~35
찬송 : 460장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당시 기득권층을 형성했던 이들의 끊임없는 방해를 받았다. 바리새파 사람들인 서기관들은 죄사함의 권세에 대하여, 식탁교제에 관하여, 금식과 안식일에 대하여 논쟁을 하며 예수님을 막고자 했지만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가족들을 이용한다. 가족들은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바알세불이 지폈고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말에 예수님을 정신병자 취급하며 사역의 현장에서 끌어내려고 한다.
 
메시아의 사역이 가장 먼저 지지해주어야 할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친척들과 가족들의 이런 행동은 서기관들에게 밉보여 행여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내시는 분이 아니신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삶을 억압하는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죽음의 굴레에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신가?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셔서 지금 모든 이들에게 선물하고 계시며 그 수혜자가 될 주인공은 바로 자신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해악을 입히는 분으로 철저하게 오해하고 공격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제 기득권층에 의해 나사렛인이라고 천대받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 나라 운동을 방해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악된 탐욕과 무지함이 빚어낸 모든 방해 앞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일을 고의적으로 대적하는 서기관들을 향하여 "사람이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리라"고 하시며 엄준한 심판을, 가족을 향해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어떤 방해가 있어도 공생애를 사시는 본질을 붙잡으신다.
 
예수님의 친지와 가족들처럼 막강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현혹되어 우리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고통을 주진 않았나 생각해 보자. 민주화 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은 앞장 선 몇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사회의 공의 실현과 상생의 길을 위해 우리가 용기내지 못하여 방관하는 일에 앞장서 가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들 중에 불온한 사상을 주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가려내서 운동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공정한 분배와 기회와 진실에서 제외된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분들을 위해선 사랑의 지지를 보내야 한다.
 
우리 앞에 어떤 시험들이 밀려와도 예수님 손을 잡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펼치며 살자
 
오늘의 기도
 
우리의 삶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평화가 넘쳐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일숙 목사
인천세광교회

토-일어나 빛을 발하자
본문 : 마 5:14~16
찬송 : 502장

몇 년 전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 물리치료사와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전도할 목적으로 말을 건넸다. "제가 뭐하는 사람 같아요?" 물리치료사의 대답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조폭은 아니신 것 같고…" '내가 목사처럼 안 보이는구나,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나는 과연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의 사명은 무엇인가? 빛을 비추는 것이다. 빛을 비추며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에게 비추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비춘다는 것은 나의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누가 영광을 돌리는가? 내가 아닌 '그들로' 즉, 나의 착한 행실을 본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인정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분명히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기준이 훨씬 높다. 사람에게 인정받기가 훨씬 쉽다. 사람은 겉으로만 착한 척해도 속아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까지 보시기에 마음까지 다해야 인정을 받는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하신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착한 행실, 즉,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삶이 바로 빛을 비추는 삶이고 그렇게 빛을 비추는 삶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된다. 오늘 하루 세상에 빛을 비추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자.
 
오늘의 기도
 
착한 삶을 살며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연영돈 목사
거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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