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14~19일

[가정예배]12월 14~19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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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9일(수) 11:21

월-여전히 손을 움켜쥘 것인가
본문 : 신 15:7~11
찬송 : 218장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손을 펴서 궁핍한 형제를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더욱이 이웃을 돕기 위해 나누어 주는 행위 앞에 '반드시'라는 부사를 사용하여 이일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의 물질에는 내 몫이 아닌 순수한 타인의 몫, 이웃의 몫이 있다는 것이다.
 
신명기 14장 28~29절에서는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게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주어 먹고 배부르게 하라"고 가르친다. 그렇다 성경은 우리 소득 안에는 배고픈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산상수훈을 통해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궁핍한 누군가를 도왔다면 그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나누는 것보다 움겨쥐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런 우리에게 7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으로 시작하여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명확히 한다.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누구를 주라는 거냐고 우리는 인색한 눈을 치켜뜨지만, 핏덩어리 맨몸으로 이 땅에 온 우리를 지금까지 먹이고 입히고 쉴 곳을 마련해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우린 그분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나누라는 명령에 불복하여 그 손을 움켜쥔 체 내 것이라고 패악 한다면 악한 종에게 내리는 책망과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본문 9절의 하반절은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 가난한 형제에게 아끼는 마음을 품지 않고 우리의 손을 펴서 나눠주면 "하나님께서는 이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고 약속한다. 주인의 것으로 주인이 원하는 일을 마땅히 한 것뿐인데도 축복의 상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젠 더 이상 내 이웃의 몫을 부여잡고 "이건 내거라고"라며 고집부리는 무지를 버리자.
 
독거노인, 취업의 문턱에서 흙수저로 인생의 등급을 매기며 좌절하는 청년,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 학교에서 혼혈아라고 친구들에게 왕따 당해 학업을 중단한 아이들을 찾아가 우리의 손을 활짝 펴고 그들과 함께 할 때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물질, 시간, 재능을 믿음에 담아 이웃을 향해 나누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일숙 목사
인천세광교회

화-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
본문 : 왕상 3:4~14
찬송 : 323장

주일 오후에 남선교회 회원들이 필자를 식사에 초대했다. 식사가 끝난 후 한 회원이 "목사님 피곤하신데 가서 쉬십시오"라고 말했다. 필자가 "한 일도 없이 밥만 먹고 가려니 죄송하네요"라고 답하니 한 분이 "목사님, 왜 하신 일이 없으세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잖아요"라고 답했다. 짧은 말 한 마디였지만 피곤함이 싹 사라지는 기쁨을 경험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복을 주시려고 꿈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에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한 솔로몬의 요청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더욱 마음에 기뻐하셨다. 일천번제를 드린 것도 기뻐하셔서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소원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니 더욱 기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요구를 왜 그렇게 기뻐하셨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이 되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리라는 뜻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직분을 잘 감당하고 싶으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혜를 요청한 것이다.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요청을 하자 하나님께서 즉시 그 요청을 받아주신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즉시 응답이 된다. 즉시 주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것으로 주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구한 것 외에도 많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예수님도 동일한 약속을 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다 채워주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성령의 인도하심속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삶 위에 하나님의 크신 복이 함께 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성령 안에서 충성하며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연영돈 목사
거성교회

수-사울이 바울 되다
본문 : 행 9:1~9
찬송 : 455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보면 어린 아들이 유괴를 당해 죽음을 당한다. 어머니는 살해범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의 전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결국 그를 용서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살해범을 용서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교도소에 면회를 간다. 그런데 살해범은 교도소 안에서 전도를 받아서 새 사람이 되었다면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친다. 이 모습을 바라본 어머니는 그 자리를 뛰쳐나오면서 하나님께 "저 놈을 용서할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게 있는데 하나님 당신께서 무슨 권리로 저놈을 용서해 주는 것입니까?"라고 항의한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러한 결과는 용서한 자의 고통을 용서받은 자가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서함 속에는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다. 진정한 용서란 용서하는 자의 고통과 용서 받은 자의 아픔이 어우러질 때 완성된다.


지금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만나 주신 주님! "사울아! 사울아!"하시면서 부르실 때는 용서하시는 자의 입장에서 부르신 것이다. 사울을 부르신 주님은 바울로서의 첫걸음마를 가르치려고 하신다. 이것은 용서받은 자로서의 삶의 첫걸음 즉 겸손이다. 겸손은 용서받은 자가 지녀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주님은 사울에게 제일 먼저 아나니아에게 배우는 겸손을 요구하신다. 네가 생각할 때 전혀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가서 배우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어린아이를 제자들에게 세우시고 그에게서 천국의 비밀을, 세리에게서 기도를, 고넬료에게서 하나님 말씀 앞에서의 자세를 배우라고 하신다. 이들은 당시 유대인들이 전혀 배울 것이 없다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자들이다.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 앞에 그는 금식을 통해 자아를 고백한다. 지금까지 잘 믿었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믿었고, 자신이 제일 의롭다 여겼는데 자신이 제일 큰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사울이라고 생각했음에 대해 괴로워 지금 울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용서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린다. 나 때문에 많이도 아프셨던 주님! 나로 인해 우셨던 눈물의 의미를 알아간다. 그때는 당연히 은혜받을 자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 이러한 나에게 은혜를 주십니까?"라고 묻는다. 우리는 지금 사울의 삶의 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나만의 공간에 주님을 가두어 놓고 내 욕망을 위해 그 분을 이용해서 무엇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안에 주님이 아니라, 주님 안에 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울의 삶이다.
 
오늘의 기도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주 안에서 온전히 합하라
본문 : 고전 1:4~10
찬송 : 104장

고린도교회에는 교만, 갈등, 분열이 존재했다. 바울이 하나됨의 유일한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온전히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첫째,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은 성도들에게 은혜를 모르는 세상에서 살도록 유혹한다.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를 행실이 부정한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시킨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여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공평도 공의도 아니라 은혜이다. 이스라엘은 은혜를 받았지만 배은망덕의 죄를 짓는다. 우상숭배와 속임과 불성실한 회개가 가득했다.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시지만 말씀하신다 "백성들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 다 무너져 내린다. 그것이 복음이요 은혜이다. 우리도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의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둘째, 은혜를 입은 성도는 말이 달라진다.
 
우리는 시험이 되고, 상처가 되는 말, 아무 유익이 없는 말을 하고 산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한 말을 다시 듣게 된다면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서 괴로웠던 것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사 6:5)
 
셋째, 은혜를 입은 성도는 생각이 달라진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가 젊은 시절 열심히 전도하고 다녔다. 하루는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중병에 걸려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는다. 부스는 처음에 두려웠지만 기도하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마음 먹었다. 죽음조차도 하나님께 맡기고, 계속 전도하였다. 그는 84세까지 살았고, 훗날 말한다 "그 때 의사가 나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의사를 버렸습니다. 대신 나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아들러는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가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살면서도 말과 생각에 있어서도 부족하다. 그래서 공동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의 취약성을 그리스도 앞에서 인정하자. 주님을 의지하자.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친밀한 상호관계의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가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오늘의 기도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주님과 교제할 뿐만 아니라, 은혜 안에서 온전히 합하라는 말씀을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용선 목사
온무리교회

금-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본문 : 신 26:7~11
찬송 : 429장

하나님께서 지난 1년 동안 우리에게 주신 복을 세워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 은혜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감사는 대체로 '얻음'과 '있음'으로 인해 감사하는 행위다. 내게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생겼을 때,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얻음과 있음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것은 조건적인 감사다. 또 다른 감사는 뜻밖의 고난이나 상실가운데서의 감사다. 이 감사의 대표적인 사람은 하바국선지자다. 삶의 열매가 없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자체로만으로도 감사하여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욥도 이런 감사에 해당되는데 주신 것도 거두신 것도 다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음을 인정하며 드리는 감사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설교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서 첫 소산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배하고 주신 복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받은 복이 무엇인가?
 
첫째, 고난가운데에서도 민족이 번성케 되는 축복이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과 그 아들들과 손자들 70명의 공동체가 요셉으로 말미암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애굽에 정착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 박해했지만, 그 속에서도 200만 명쯤 되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강한 손을 들어 이스라엘을 핍박하던 바로를 물리치시고 애굽에서 해방시켜주셨다. 한마디로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셋째, 광야 40년을 거쳐 약속하신 땅에서 추수하게 하시니 감사하라는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지만 척박한 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이 지나온 광야와 압제를 당하고 채찍에 맞으며 고역을 했던 애굽에서 고난을 생각하면 이 땅은 그들에게 축복의 땅이다. 그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이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려 추수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맏물감사를 드리고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눌 것을 권면하고 있다. 맏물은 그 해에 맨 처음 생산한 것이다. 황무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열매다.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지난 1년 동안 주신 복을 헤아려 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감내하기 힘든 고난도 축복으로 바꾸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며, 주신 열매를 감사하며 어려운 이웃과 기쁨을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기홍 목사
가재울중앙교회

토-왜 고통이 은혜일까?
본문 : 삼하 19:24~30
찬송 : 310장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고 지키신다고 말씀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현상에서 자기 영광을 바라보고, 신앙인은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 신앙인은 삶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자신의 죄악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만을 발견하는 것이 곧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타락과 비극 이사를 거치게 하시지만, 왕위를 견고케 하시겠다는 언약대로 회복의 장면으로 인도하신다.
 
본문을 보면 다윗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등 비극과 수난을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겪게 하신다. 이는 다윗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온몸으로 체휼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향한 충심이 절절했다. 왜냐하면 다윗으로부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게 되면 그 은혜를 베푼 사람을 위해서 살게 되어 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은혜 속에 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타락과 비극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 복음을 깨닫게 된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고통의 역사에 함께 동참하고 동고동락하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총을 깨달은 성도들은 불순종의 삶에서 순종의 삶으로 바뀌어져 간다.
 
므비보셋이 그렇게 고백한다. "내가 당신 앞에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이 말은 나는 당신 손에 나는 이미 죽은 자란 뜻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본질이다.  '우리의 죄와 허물로 뒤범벅된 인생에 찾아오시고 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백성들의 무한한 행복과 기쁨이다. 29~30절에 다윗이 시바의 말을 듣고 므비보셋에게 시바와 밭을 반으로 나누라고 한다. 므비보셋은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게 되었으니 시바로 전 재산을 차지하게 하옵소서. 내 주 왕께서 왕궁의 평안히 돌아오셨으니 내게는 중요한 것이 당신 왕입니다."


므비보셋은 왕이 내게는 최고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므비보셋이다. 고통 중에도 인내와 소망으로 달려, 마침내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가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여호와를 찬양케 하심이 최고의 은혜다.
 
오늘의 기도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찬양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덕호 목사
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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