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 19~24일

[가정예배]10월 19~2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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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6일(금) 10:03

월-하나님의 테스트
본문 : 요 6:5~7
찬송 : 211장

오늘 본문은 유명한 '오병이어' 기적에 관한 말씀이다. 그런데 본문 6절 말씀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자신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지 다 아시면서 빌립에게 물어보신다. "빌립아,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어떻게 밥을 먹이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인단 말이냐?"
 
빌립은 냉철한 이성을 가진 차가운 머리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빌립에게서 어떤 답이 나올지 다 아시면서 물어보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답한다. 빌립은 순식간에 치밀한 계산을 해낸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빌립의 성품과 성향을 다 아시면서 왜 빌립에게 질문을 하신 것일까? 6절에 답이 나온다.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오병이어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유일한 기적이지만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독특한 내용이 있다. 바로 기적의 재료가 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름도 없고, 나이도 모르고, 심지어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도 잘 모르는 '한 아이'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소박하고 초라한 음식이 담긴 도시락을 아이는 기꺼이 주님께 드린다. 감동한 주님이 소박한 음식을 축사하시니 장정만 오천 명이 실컷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다.
 
빌립과 한 아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상황은 똑같은데 두 사람은 믿음에서 차이를 보인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가끔 시험하신다. "네가 믿음이 있나 없나 보자"고 하신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나오나 보자"하고 테스트 하신다. 처음에는 작은 것으로 우리를 테스트 해보신 후에 그 믿음 테스트에 우리가 통과하면 아주 큰 것을 맡기신다. 이 원리를 아는 성도는 그래서 힘들어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나 누가복음 19장 '므나 비유'도 이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돈 테스트'에 통과하니 종에게는 큰 상급이 주어진다.
 
천지가 다 하나님의 것이고 세상 모든 재물이 그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태드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헌금을 원하실까? 테스트 해보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믿음 테스트'에 합격하면 우리에게 놀라운 복과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십일조는 우리 믿음에 대한 테스트다. 우리의 물질에 대한 테스트다. 우리의 충성과 헌신도 다 하나님의 테스트 대상이다.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주님께 드리고 충성 헌신해 보라. 그리고 지켜보라. 하나님이 어떻게 나오시는지 말이다.
 
오늘의 기도
 
물질, 시간, 충성 테스트 이 모든 하나님의 테스트에 합격하여 더 큰 복과 귀한 사명 받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하준 목사
효자교회

화-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본문 : 마 4:18~22
찬송 : 312장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인정해 주시는지 보여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자를 삼는 장면이다.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파트너로 부름받은 소중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으로 오셔서 사역을 감당하는데 혼자하지 않고 제자를 삼아 함께 일을 하셨다. 그 첫 번째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몬 베드로를 위시하여 12명의 제자들이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를 위시하여 12명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예수님을 찾아가 '저희들을 제자로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스승이 되어 주시옵소서!'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승인 예수님이 먼저 제자들을 찾아와 "너희는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12명의 제자들을 인생의 파트너, 사역의 파트너로 인정하시고 불러주셨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사 43:1)
 
둘째, 내가 선택한 소중한 길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제자들은 이렇게 응답을 했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대단한 결단이다. 왜 이들은 예수님을 따랐을까? 성경은 그것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지만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교회에 발을 들여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응답하고,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고, 내가 구원받는 길이 여기에 있고, 또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내가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셋째, 내게는 소중한 사명이 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소중한 목적이 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바랬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는 일, 곧 사명이 있는 사람들이다. 사명이 있는 한 우리들의 삶은 가치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자존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파트너로써 선택한 길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찬규 목사
장동교회

수-큰 용사여!
본문 : 삿 6:11~16
찬송 : 357장

이스라엘은 죄로 인하여 미디안 손에 7년간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멸망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자의 등장에 대한 염원은 더욱 강렬해진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를 찾아 나섰는데, 그 사람이 기드온이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두운 곳간,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 밀 타작은 바람이 적당히 부는 다소 넓은 장소에서 해야 한다.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운 것이다. 이런 기드온의 모습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대변한다.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와서 말한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말은 지금 기드온의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은 말이다. 15절에서 기드온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라고 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을 대적하기에는 자신이 역부족임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런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용사여"라고 말하신다.
 
큰 용사가 무엇인가? '능력 있는 용맹스러운 사람'이다. 지금 기드온은 겁도 많고 나약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 있는 용맹스러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말이 가능할까? 하나님이 기드온을 잘못 보신 걸까? 그렇지 않다.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르신 것은 하나님이 그를 큰 용사로 쓰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잠재력을 알고 계셨고, 그것이 발휘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진로와 취업의 문제로 막막할 때가 있고, 답답할 때가 있다. 물질의 문제로 곤고하고 건강의 문제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할 때도 있다. 가정의 문제로 인해서 지치고 피곤할 때가 있다. 사업을 진행하고 직장 생활을 하지만, 생각만큼 잘 안 풀리고, 실적과 승진이라는 문제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난 할 수 없어, 난 나약해, 나의 능력은 너무 작아"라고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잠재력을 보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들을 크게 사용하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일이든, 세상의 일이든, 가정의 일이든,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은 나를 크게 사용하시기 원하신다.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가? "큰 용사여! 큰 용사여! 나의 능력 있는 용맹스러운 사람이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도 큰 용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많은 일들을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덕 목사
화정교회

목-어떤 습관이 있습니까?
본문 : 눅 22:39~46
찬송 : 487장

좋은 습관은 인생을 성공적인 방향으로 바꾸지만 반대로 나쁜 습관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 영국 속담에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할 정도로 습관은 중요하다. 파스칼은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이면 오히려 그 습관에 갇히는 경우가 있다. 심리학 용어 중에 고착상태라는 말이 있는데 과거의 일시적인 습관, 부정적인 습관을 계속 유지함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음을 통해서 느끼는 일시적인 안정감이 계속되면 오히려 잘못된 자세가 몸에 익숙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신앙에도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여 영적인 고착상태에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신앙이 계속 성숙하지 못하고 과거의 믿음과 삶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적인 거룩한 습관이 길들여지지 않은 탓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습관이 있었을까? 본문 39절에는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산에 가서 쉬셨다. 그러면 낮에는 열심히 사역하고 밤에 쉬러 산으로 가야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쉬다'의 원어는 '에윌리제토'인데 이것은 '옥외에서 밤을 지새다'라는 뜻이다.
 
무엇을 하면서 밤을 지새우셨는가? 습관을 따라 기도하면서 밤을 지새우곤 하셨다. 날이 저물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쉬고 싶은 마음, 정리하고 빨리 잠지리에 들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고 아무도 방해받지 않은 감람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가 몰려오는 상황에서도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고 새벽, 밝기 전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다. 또한 식사할 겨를조차 없이 바쁘셨지만 기도의 시간은 따로 가지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바쁜 상황 가운데서 기도하셨고 특히 몸이 피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쉬지 말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강한 어조로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 차분히 기도의 자리를 찾으신 것은 기도의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움직이시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뛰어다녀야 하고,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리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땅의 생각을 짜내야 한다.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인생의 위기가 찾아올 때도 예수님처럼 넉넉히 이겨 나갈 수 있다. 영적 습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가족이 되자.
 
오늘의 기도
 
예수님처럼 우리 삶에도 영적인 기도의 습관이 자리 잡혀 세상을 넉넉히 이기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정우 목사
시온교회

금-기본이 든든한 가정
본문 : 벧전 3:1~7
찬송 : 380장

기본이 든든하게 서 있을 때 가정이 흔들리지 않고,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임한다. 기본이 강할 때 무엇이든지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다. 오늘 말씀에서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택함받은 성도의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행하여야 할 기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남자에게 여자에게 각각 다르게 권면을 하고 있다.
 
첫째로, 여자가 취해야 할 자세는 순복하라는 것이다. 순복이란 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 가정에서의 순복은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다. 순복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순복의 결과는 구원을 이루게 한다(벧전 3:1). 순복은 감동을 일으킨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도 잘 들어준다. 힘들어도 참고 용납해 준다. 이런 모습들이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동이 필요하다. 감동은 삶을 통해서 우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절 말씀에서 보면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라고 했다. 수다스러운 말, 잔소리, 떠들썩한 소리, 인간의 소리가 결코 남편을 구원시키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는 본문에서 남자가 해야 할 일을 말해주고 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동고동락 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귀히 여기라는 것이다. 귀히 여기라는 것은 최고로 존중해 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고, 은혜를 유업을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함께 누릴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정생활이 건실하면 직장생활도 건실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남편이 잘 되고, 형통하고, 소원을 이루기 바란다면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된다는 것이다. 본문 2절에서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고 말씀한다. 정결한 것은 구별된 것을 말한다. 여자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남자 여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행위,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 구별된 행위를 바라볼 때 누구든지 감동을 받게 되고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를 향해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다. 우리의 정결한 행위는 세상 사람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편지가 된다.
 
오늘의 기도
 
가정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영철 목사
명성제일교회

토-모든 것이 은혜
본문 : 고전 15:1~10
찬송 : 301장

사람들은 바울을 가리켜 은혜의 사람이라고 한다.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곳곳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배어 나온다. 특히 본문 10절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말은 최고의 고백이다. 바울 사도만 은혜를 받은 사람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왔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은혜를 삶속에 나타내야 한다.
 
첫째, 감사하며 산다. 사람은 평생 은혜를 받으며 산다.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친구의 은혜, 농부의 은혜, 주변 사람들의 은혜, 자연을 통한 은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여기에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은혜도 많다.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온 것은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죄로 인해서 영원히 죽어야 할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죽을 사람이 새 생명을 얻은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해서는 감사가 따라야 한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은 감사하며 산다.
 
둘째, 겸손하게 산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은혜로 되었기에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분들에게 공을 돌린다. 바울은 이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화려하다. 세상적으로 지식적으로 또한 신앙적으로 엘리트 중에 엘리트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해서 난 자',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다. 바울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게 되니까 더욱 자신을 낮추었고 겸손하게 교회와 성도들을 섬겼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들도 예수님을 닮아 겸손하게 살자.
 
셋째, 은혜를 나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은혜를 나누어 주변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은혜를 받아본 사람이 은혜를 나눌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말씀하신 십자가에는 '사랑과 은혜'가 있다.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은혜를 나누어 십자가의 능력을 나타내자.
 
오늘의 기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깨닫고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국환 목사
대구효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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