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9월 28일~10월 3일

[가정예배] 9월 28일~10월 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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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2일(화) 17:24

월-나로 인해 감사하는 가정
본문 : 몬 1:4~7
찬송 : 368장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처럼 열심히 일하는 부모들도 없고, 열심히 공부하는 자녀들도 없다. 집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바뀌었고, 가족은 각자의 삶의 공간이 분리된 채 대화 없이 살아간다. 심지어 식당에 와서도 부모, 자녀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뿐 대화를 하지 않는다. 대화가 사라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의 눈길이 사라진 가정, 그곳은 서로를 원망할 뿐 감사가 사라진 가정이다. 감사가 사라지면 당연히 사랑도 사라지게 된다.
 
감사와 사랑의 회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짧은 편지이다. 빌레몬이라는 사람은 당시의 예수님을 잘 믿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4절을 통해서 빌레몬으로 인해서 자신이 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빌레몬으로부터 도망한 종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고 다시 받아들여주기를 요구한다.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이다. 당연히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생각하면 그런 상처가 살아났을테고 분노가 일어서 당시의 법대로 사형에 처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빌레몬서가 있는 것은, 빌레몬은 그렇게 하지 않고 바울의 용서에 대한 권유를 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용서하기 힘든 순간들이 늘 있다. 사랑하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은 가장 먼저 잘 견뎌내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화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참고 어려운 순간, 힘든 일들을 잘 견뎌내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자녀는 부모들을,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잘 견뎌내 주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견뎌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번째 사랑의 방법이 있다. 잘 견뎌내는 사랑은 나의 방법이 아닌 상대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열번 중에 한 번은 '내 자녀가 이 말을 들을 때 어떨까? 내 아내가, 내 남편이 어떨까?'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번째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다. 사랑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완성되어 가는 미완성품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노력으로 완성되는 인생의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의 원동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십자가의 사랑이 가득하면 나도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위로를 받는 가정'이 되도록 기도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 가정이 나로 말미암아 기쁨과 위로가 가득한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복용 목사
호산나교회

화-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본문 : 창 32:13~32
찬송 : 327장

주변을 돌아보면 이혼 가정, 재혼 가정, 가족 간 상처가 깊은 가정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갈수록 가정의 아픔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지금의 심각한 가정의 위기를 미리 아셨을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부터 가정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시고 있다. 야곱의 가정도 갈등과 아픔이 많은 가정이었다. 야곱은 부모가 있는 고향 집을 20년 동안 가보지도 못했다.
 
왜 그랬을까? 형 에서와의 관계가 마치 원수지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형 에서가 군대 400명을 거느리고 앞에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이 취한 행동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야곱이 취한 행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형 에서에게 화해의 예물을 보낸 것과 얍복 나루에서 한 사람과 밤새워 씨름한 것이다.
 
13절 말씀을 보면 야곱은 형 에서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화해의 예물을 준비한다. 그가 예물을 보낸 목적은 어떻게든 형의 감정을 누그러뜨려 화해하려는 데 있었다. 야곱은 이 기도를 드리기 전에는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생각도 했지만, 기도를 마친 후에는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것은 형 에서와 어떻게든 화해하겠다는 생각이다. 단지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야곱의 두 번째 행동은 얍복나루에서 어떤 사람과 밤 새워 씨름했다는 것이다. 씨름은 야곱의 육체와 영혼이 함께 계시 받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호 12:3~4)"를 참고해 오늘 본문과 비교해 보면, 야곱이 씨름한 대상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밤새워 씨름을 하고 이겨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이는 그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께서 내신 시험과 싸워 이겼을 뿐만 아니라, 400인이나 이끌고 온 에서와 화해할 수 있어서 그들도 이겼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인해 야곱은 마음 속의 모든 의심이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야곱이 깨달은 것은 인간 삶의 원천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것이다. 야곱은 이제 인간중심적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근거한 삶을 살기로 결단한다. 야곱을 브니엘로 인도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의 브니엘과 다메섹은 어디일까? 우리의 가장 가까운 브니엘과 다메섹은 가정과 교회이다. 우리의 믿음의 가정에서 하나님과 나를, 가족을 다시 만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가정에서 나를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기용 목사
동대전교회

수-예수님과 삭개오(4)
본문 : 눅 19:1~10
찬송 : 212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가운데 회심했다. 그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했다. 이에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셨다.
 
과연 삭개오는 그의 공언을 실천했을까 궁금해진다. 주석가들은 '주겠다(divdwmi)', '갚겠나이다(ajpodivdwmi)'가 헬라어로 모두 직설법, 능동태, 현재형으로 기록된 것은 삭개오가 실천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또한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삭개오의 행위 이후에 기록한 글이기 때문에 삭개오가 이미 회개한 것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주석가들은 말한다.
 
삭개오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을 네 갑절로 갚았다. 그에게 남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설교가들은 삭개오의 재산이 거덜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고 말한다. 삭개오는 회개를 철저히 계산하여 갚아도 부족함 없이 더 갚았을 것이다.
 
회개의 실행 현장은 어땠을까? 그동안 삭개오로 인해 억울했던 사람들이 면박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거친 말을 퍼붓는 사람들에게 삭개오는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두 손을 내밀었을 것 같다. 회개의 대가가 좋은 소리보다는 수모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회개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성령하나님의 내주하심이다. 삭개오는 회개를 하며 사람들에게 겪었을 수모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성령하나님의 격려와 용기와 도우심이 강권적으로 큰 은혜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삭개오의 삶은 이후 어땠을까? 누가가 "주겠다, 갚겠나이다"를 현재형으로 기록한 것은 글을 기록할 당시에도 회개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는 주석가들의 견해가 있다. 누가가 사도행전의 저자인 것을 감안하여 행 4:32~37을 보자. 바나바가 앞장서서 구제하는 것과 더불어 등제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구제에 동참했다. 아마도 삭개오도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나라가 침울한 상황에서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이 이를 능히 이기게 하여 한 마음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을 만큼 큰 은혜 속에 빠져 살게 하셨다.
 
오늘의 기도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으로 예수님께 응답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영실 목사
명성교회

목-경건의 이익
본문 : 딤전 6:3~10
찬송 : 285장

가장 경건하다고 여기는 영역에서 가장 세속적인 야망이 드러나는 경우를 본다. 그 자체로 경건한 것이 없지만,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경건할 때 무엇이든 경건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특히 종교적인 영역, 영적인 영역으로 일컬어지는 것들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야망과 욕망이 감춰지고 또 잉태되고, 표출되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한다. 에베소교회는 교리적인 공격을 많이 받았다. 그릇된 가르침이 영향을 미쳐, 그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과 받은 자들이 공동체를 어지럽게 했다. 그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길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바른 교훈과 그릇된 교훈을 알 수 있는 척도는 그들의 인격과 삶이다.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는 자
 
다른 교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했다. 참 복음은 사랑을 전한다. 사랑을 실천한다. 화목과 화평을 추구한다. 반면에 거짓 복음은 다툼을 일으킨다. 교만하고 시기하고 비방하며 악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지만, 다른 교훈을 좇는 자들은 자신을 높이고 경건한 신앙의 표현마저도 자기를 치장하고 대접받는 데 이용한다.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교훈이 그 교훈의 거짓됨을 자증하는 것이다.
 
경건에 큰 이익을 주는 것
 
경건을 세속적 이익을 얻는 도구로 삼는 자들은 실제 아무 이익을 얻지 못한다. 반면에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들은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며, 그 경건이 주는 진정한 영적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결국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다 두고 가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크고 영광스러운 것이 예비되었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먹고 입는 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 자체도누려야 할 선물이지만 그것을 누리는 것만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경건을 해롭게 하는 것
 
거짓 진리가 우리를 유혹하는 영역은 참 많다. 명예도 있고 권력도 있다. 그러나 우리를 우상숭배로 이끄는 욕심은 돈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소유욕이다. 돈은 우리에게 해로운 욕심을 자극하고, 끝도 없는 욕망의 노예로 살다가 파멸과 멸망에 이르게 한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갖 죄악은 시작된다. 관계가 파괴되고, 사람이 물적인 기준으로 평가되고, 심지어 사역자와 교회마저도 돈의 가치로 평가된다.
 
탄탄한 진리를 통해 건강한 신앙, 즉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는가? 경건의 모양뿐 아니라 경건의 능력도 있는가?
 
오늘의 기도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성근 목사
대연제일교회

금-2만 여 킬로미터를 다니면서
본문 : 롬 14:8
찬송 : 305장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로 시작하는 복음성가는 많은 은혜와 감동을 준다. 이 복음송가는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 중에 로마서 14장 8절 말씀으로 가사를 만들었다. 바울 사도는 교회 공동체 안에 믿음이 약한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이들을 향해 이 말을 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을 주님을 위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해 죽는 사람도 없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고,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셨다. 바울 사도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았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었다. 바울의 이런 고백 속에는 과거의 그는 죄인 중의 괴수였고, 하나님의 원수였는데 하나님이 그런 그를 살리셨고, 구원해 주셨다는 감사가 있었기에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바울 사도의 선교지를 다녀왔다. 바울은 무려 2만 여 km를 걸어 다니거나 배를 타고 복음을 전했다. 2만km는 한국에서 미국까지의 왕복거리다. 그 먼 거리를 가는 곳마다 핍박과 고난이 있었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끝까지 복음을 전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한 곳에 가보니 그가 흘렸던 핏방울을 보는 듯 했다. 성경을 통해 바울이 당한 고난을 어느 정도 알고 갔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바울이 당했던 고난에 대해 들으니 그가 얼마나 큰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선교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바울인들 우리처럼 쉽고, 편하게 예수님을 믿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편히 살 수 없었다. 그래서 평생 복음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만을 위해 살았다.


바울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진리를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믿으면서도 또 우리는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하다. 주님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오늘의 기도
 
우리는 주님의 것이 되었으니 사나 죽으나 주님만을 위해 살게 하시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경종 목사
늘푸른교회

토-3중 포기, 3중 축복
본문 : 창 12:1~9
찬송 : 440장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다. '복의 근원'이란 '복의 통로자' 즉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복 있는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말씀이다. 어떻게 하면 복 있는 사람이 될까?
 
첫째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3중 포기(抛棄)를 명하셨다. "너는 너의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에게 3가지를 포기하면 복의 통로자로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고향을 떠나라"는 말씀은 자기중심적인 생활, 자기 본 바탕에서 떠나라는 뜻이다. 복의 통로자로 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자기중심적인 틀, 사고, 철학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적 사고를 바꿔야 한다.
 
"친척을 떠나라."
 
이 말씀은 형제간의 정을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의존하는 것을 떠나라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기에 조카 롯을 자식처럼 의존하고 살았지만 롯도 떠나보내게 된다.
 
"아버지 집을 떠나라."
 
이 말씀은 부모와 의리를 끊고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신앙면에 있어서 홀로서기를 하라는 말씀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아브라함을 갈데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가 60세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브람은 아버지를 떠나지 못해 하란에서 15년 머물게 된다. 내게 있어서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내어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3중 축복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먼저 버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는 일이다. 이는 살아왔던 삶의 방식, 내가 익숙해 있고, 의존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세 가지를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친척을 떠나면 자녀를 축복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은 롯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셨다. 또 영적후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게 하셨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이는 아브람(존경받는 아버지)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으로 창대하게 세우셨다. 아브라함의 속사람, 그의 인격을 변화시켜 주셨다.
 
"복이 되게 하겠다."
 
나를 통해서 복이 열방까지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즉, 영권을 말한다. 내가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이 흘러들어가는 축복이다.
 
오늘의 기도
 
아브라함처럼 3중 포기, 3중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철수 목사
풍성한벧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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