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8월 24~29일

[가정예배] 8월 24~29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8월 19일(수) 17:43

월-주변과 핵심
본문 : 삼상 17:20~30
찬송 : 490장

하루는 이새가 아들 다윗에게 전장에 있는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낸다. 다윗이 형들을 찾아가 보니 골리앗이라는 적장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위협을 가하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었다. 다윗은 치밀어 오르는 의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큰 형 엘리압은 다윗에게 화를 낸다. "네가 어찌하여 전쟁터에 왔느냐? 어린 것이 교만하게 전쟁터에 기웃거리느냐…" 하지만 다윗은 양치는 일보다, 아버지 심부름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골리앗을 처단하는 것임을 알았다. 형의 꾸중과 책망을 들었지만 형에게 이유를 설명하거나 논쟁하지도 않는다. 주변 일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핵심을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라며 아주 짤막한 대답만 하고 핵심에 집중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면 주변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성도들은 덜 중요한 일에 시간과 관심과 돈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하지 못할 때가 많다. 다윗은 주변의 말보다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깨닫고 살았다. 형들도 사울왕도 어림없다고 반대한다. 만일 다윗이 주변의 이야기와 여론을 따라갔다면 '다윗과 골리앗'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말과 상황 보다, 우리는 핵심을 파악하고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다윗처럼 승리하게 된다.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침 받기위해 많은 선물을 가지고 엘리사 집 앞에 섰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달려 나와 놀라고 굽신거리며 최대의 존경과 예우를 표시하고 상처위에 손을 얹어 기도하면서 고쳐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엘리사는 종을 통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는 것이 전부였다. 나아만은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해 돌아가자고 성질을 부린다. 주변에 사로잡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말이다. 그 때 지혜로운 참모들이 "장군이여, 병 고치러 왔지 존경받고 절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라며 핵심을 끄집어내어 보여준다.


누가복음 5장은 반대의 경우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잠깐 빌려 말씀을 전하시고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한 결과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잡혔다. 베드로는 많은 고기 앞에서 기뻐하기는 커녕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많은 고기 즉, 주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핵심인 예수님을 주목하고 있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삶에 있어서 핵심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그래야 주변과 변두리에 맘 뺏기지 않고 주어진 삶을 효과적으로 살며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이제부터 변두리에 끌려다니지 않고 핵심을 찾아 우리의 사명과 소명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광열 목사
무안교회

화-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라

본문 : 롬 12:14~21
찬송 : 468장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상대가 잘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를 설명하고 있다. 여러 은사가 있으나 그중에 제일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약육강식이 지배한다. 그래서 저마다 힘을 키우려고 경쟁하다 보니 사랑도 눈물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세상 속에서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첫째,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야 한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8~39) 예수님은 너희가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그것에 무슨 상이 있을 것이냐며 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이 말씀을 '동거동락'하는 자세로 '서로 마음을 같이하라'고 말하는데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며,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함께 할 일인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함께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함께 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이 있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셋째, 마음에 장벽이 없어야 함께 할 수 있다. 최초의 살인사건인 가인은 아벨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동생에 대한 시기심으로 함께 기뻐하지 못했다. 동생을 시기하게 되었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안에부터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내 마음을 먼저 열어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하고 그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도 받아주어야 한다.
 
넷째, 우리와 함께 하는 이웃은 사랑과 섬김의 대상이다. 3D 업종에 종사하는 타 민족에 대한 편견, 인종차별은 사라져야 한다. 우리와 다른 그들은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사람들이다. 야곱이 아들 요셉을 축복하는 내용에 "무성한 가지가 되어 남의 담을 넘어라"라고 축복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의 담, 이웃의 담을 넘지 못 할 때가 많다. 인간의 막힌 모든 담을 하나님이 허신 것처럼 사랑의 실천이 우리의 교회를 넘어 이웃과 타 민족에게까지 전해지는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어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재학 목사
울산온유교회

수-영원한 청년 인생

본문 : 수 14:6~15
찬송 : 546장

유대 격언에 '젊은이가 죽으면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신다'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이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청년의 존재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신다. 청년은 가정, 교회, 국가의 미래이며 힘이다.
 
교회사를 살펴볼 때 위대한 인물들은 청년시절에 큰 역사를 일으켰다. 루터는 33살에 종교개혁을, 칼빈은 27세에 기독교강요집을 집필하였고, 스펄전은 17세에 복음 전파를 시작하였고, 리빙스턴은 27세에 아프리카 선교를 시작하였고, 프란체스코는 25세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께 붙들린 청년 한 사람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성경에서 말하는 청년은 누구일까? 성경은 청년을 나이로 말하지 않는다. 민수기 13장에서는 정탐꾼 10명이 보고를 한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다.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다. 아낙자손 곧 거인들을 보았다. 절대 이길 수 없다. 이 보고를 듣고 백성들은 흥분하여 원망, 불평, 분노가 가득하게 되었다. 갈렙이 나서서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생명을 걸고 믿음의 말을 선포한다. 그러나 10명은 다시 부정적인 보고를 한다.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한 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충동질한다. 모세와 아론이 어떻게 했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민 14:5)."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하나님께 완전히 의뢰한다는 행동이었다. 이런 생명의 위협 상황에서도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한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더욱 분노심이 충만하여 그들을 돌로 치려 했다. 이때 갈렙은 40세 중년이었지만 마음은 청년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있는 상황에서도 믿음의 말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갈렙이 85세인데 아직 점령하지 못한 헤브론을 점령하겠다고 나선다. 85세이지만 여전히 청년이었다. 이러한 열정과 패기의 근원이 무엇일까?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수 14:14)." 곧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은 항상 싱싱함과 패기와 열정이 있다. 긍정적인 생각,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려 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갖고, 주님이 주신 꿈에 도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재운 목사
인동동부교회

목-이렇게 기도하라
본문 : 마 6:5~13
찬송 : 337장

토끼와 거북이가 처음 경주를 할 때 토끼가 먼저 제안했다. 그런데 승리 후 교만해진 거북이가 토끼에게 제안했다. 누가 오래 사나 시합하자고. 순진한 토끼는 시합을 승낙해버렸다. 그러나 결과는 토끼의 승리였다. 너무 신이 난 거북이가 혼자 펄쩍펄쩍 뛰다가 뒤집어진 것이다. 뒤집어진 거북이는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서 굶어 죽고 말았다.


인생의 길이보다 내용이,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릎을 꿇으면서 속도를 조절한다. 방향을 점검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자. 무릎을 꿇으면 내가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 비천한 존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곤 한다.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 사셨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대야에 물을 담아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하나님에게 기도하기 위해 끓는 무릎, 이웃을 섬기기 위해 끓는 무릎은 아름답다.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은 다 기도의 사람이었다. 기도는 응답을 전제로 한다. 수돗물이 수도관에 꽉 차있어도 꼭지를 틀어야 물이 나오듯 하나님의 응답이 와 있어도 우리가 구해야 한다. 어떻게 구해야 할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위를 향한 기도
 
먼저 예수님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함을 가르쳐 주셨다. 다짜고짜 기도의 제목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첫 단추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통을 통해 다른 기도를 이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거룩하신 성품에 관심을 쏟자. 충분히 경배드림을 배우면 삶이 변화된다. 안을 향한 기도.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고백과 회개를 가르치셨다. 용서받은 마음에서 바른 기도가 세워진다. 용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죗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는 발을 물로 닦는 의식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죄의 먼지, 더러운 때를 제거해야 한다.
 
밖을 향한 기도
 
예수님은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며, 자신과 다른 사람, 필요를 위해 간구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어려움에 처할 때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지혜 얻기 위해, 병든 사람을 위해,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유대교는 하루에 3번 기도 하고, 이슬람교는 5번 기도한다. 기독교는 얼마나 기도해야 할까? 성경은 '무시로', '항상'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매일 기도로 승리하시기를 기원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위를 향한, 안을 향한, 밖을 향한 기도로 승리케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도숙 목사
동산교회

금-담에 뒷 구멍
본문 : 겔 8:5~18
찬송 : 284장

에스겔이 기도하면서 왜 예루살렘이 파괴되는가를 하나님께 질문하는데, 성령께서 환상 중에 에스겔 선지자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 하더라." 12지파에 2명씩의 제사장과 대제사장 1명인 약 스물 다섯명이 성전을 등지고 앉아서 낯을 동쪽으로 향하고 동방 태양신에게 경배하는 모습인 것이다.
 
성전 안뜰에 현관과 제단사이에 성전 깊은 곳 제단 앞자리 지성소 깊이 들어가 성전을 등지고 태양을 향해 앉아서 경배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의 제사장 모두가 한명도 예외 없이 이 더러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하늘에 속한 삶을 살지 못하고 세속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어 7절에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에스겔이 이러한 담의 구멍이 난 벽을 넘어뜨리고 그 안에 있는 한 문으로 들어갔을 때, 그 방 사면에는 각양 곤충과 짐승, 이스라엘이 섬겨왔던 모든 우상의 형상이 벽에 그려져 있고, 그 곳에서 이스라엘 족속 장로 칠십 명이 은밀히 분향하고 우상숭배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경건한 믿음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도 뒷구멍에서 이 세상 물질의 풍요만을 바라는 전혀 생명이 없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은밀하게 행해지는 우상숭배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아신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시느라"(잠 20:27, 수 7:13).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몰래 판 뒷구멍이 없는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담에 구멍과 뒷구멍을 몰래 판 사람들은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첫 멸망의 모습은 장차 임할 종말의 그림자이다. 그 종말에는 타락의 책임을 무섭게 져야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우리는 더 이상 세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들 가운데 오셔서 놀라운 하늘의 평화와 영광을 채우고자 하신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악으로 저주받은 사람들, 생명을 잃고 고통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기고 사단을 이기는 자의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받게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를 봅니다! 우리로 하여금 참 진리이신 예수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본문 : 사 43:1~2
찬송 : 450장

고난과 아픔이 없는 인생은 없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환난과 시련과 시험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을 따를 때에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있고 내가 감당할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두려움이 떠날 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 1절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유된 우리를 항해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말씀하신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삶 가운데 그만큼 두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본문 2절 말씀은 왜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말씀해준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있을 때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말씀인가?
 
첫째, 물가운데 지날 때 우리를 지키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홍해 앞에서 애굽의 군사들이 추격하여 오고 있을 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물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 그 물이 그들을 침몰하지 못하도록 좌우에 물 벽을 만들어주셔서 그들을 보호하셨다.
 
둘째, 불 가운데서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 불에 던짐을 받았지만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서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바벨론의 포로 생활이 물과 불속에 있는 것과 같을지라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하므로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 인생 가운데도 불같은 시련과 물 같은 시련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가운데서 물 같은 시련과 불같은 시련을 없애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물과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함께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련과 고난을 없애 주신분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련 가운데로 지나갈 때 함께 하심으로 그 시련을 잘 감당케 하시고 이겨내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풍랑이 있고 맹렬히 타는 불꽃이 우리를 삼키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란다.


하늘과 땅과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넉넉히 물과 불같은 시련을 이겨낼 줄 믿는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가운데서 어떤 시련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만호 목사
이루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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