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초기부터 선교에 관심 … 총회와 적극 협력

창간 초기부터 선교에 관심 … 총회와 적극 협력

[ 교단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5년 06월 15일(월) 17:38

본교단은 독노회 설립을 한 후 5년 후인 1912년 총회 설립과 함께 중국 산동성 선교를 시작으로 세계선교를 시작했다. 본보가 창간하기 전이라 이에 대한 보도는 찾을 수 없지만 1953년 최초의 중국선교사 중 한 명인 방효원 목사(고 방지일 목사의 부친)가 별세하자 본보도 1953년 1월 12일자 200호에서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중국 대륙선교 20여 년, 십자가의 사도로 업적 찬연'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싣고, 그의 선교사역을 요약해 게재하기도 했다. 그의 별세를 계기로 총회는 중국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했던 것 같다. 다음 호인 201호 1면 톱기사도 방 목사의 일사각오 신앙을 소개하며 '중국선교의 사명' 완수를 위해 '복음전선에 선교비를 보내자'라는 기사로 선교 후원을 독려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의 아들인 방지일 목사가 중국선교 20여 년만에 중국 공산화로 인해 귀국했을 때도 1957년 9월 2일자 429호 신문 1면에 사진과 함께 '방지일 선교사 중순 귀국 - 20년 수고에 어떻게 위로할 것이냐'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1952년 빌리 그래함 박사가 12월 15일 내한 했을 때는 12월 22일 1면 톱기사에 '충무광장에 전교파 운집 - 하나님의 사신으로 내한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며 2면에는 그의 설교 전문을 싣기도 했으며, 이어 1956년 2월 26일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연합전도대회를 가졌을 때도 1956년 3월 5일자 1면 전면에서 비중있게 다루기도 했다.
 
본보는 초창기부터 에큐메니칼적 선교에 관한 본교단의 선교신학을 지면에 반영했지만 이후 전통적 선교와 에큐메니칼 선교 사이에서 다소 갈피를 잡지 못했던 교단의 상황 역시 지면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총회가 제67회 총회(1982)에서 '총회의 선교신학'과 '총회 선교정책'이라는 문건을 통해 총회의 선교신학이 세계교회의 선교운동과 흐름을 함께 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73회 총회에서 세계 교회와의 협력 관계를 담당한 '세계선교위원회'와 해외선교의 제반업무를 담당한 전도부의 '국제선교위원회'를 하나로 묶어 세계선교부를 만들기로 결의하며 선교사들에게 현지교단과의 협력선교를 강조하자 본보도 총회의 움직임과 보조를 같이했다.
 
1990년대 들어서 본보는 에큐메니칼 선교는 물론, 이전 서구의 제국주의적 선교를 답습하려 하는 한국교회 선교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올바른 선교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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