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간지 最古 지령, 한국교회의 산 역사 '한국기독공보'

한국 주간지 最古 지령, 한국교회의 산 역사 '한국기독공보'

[ 3000호 특집 ] 복음과 민족 위해 헌신한 문서선교의 역사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5년 06월 15일(월) 17:29
   

지령이 쌓일 때마다 한국교회의 새역사를 쓰게 되는 기독공보. 1946년 1월 17일 창간하여 제1호를 발행한 이래 1959년 6월 29일 서울 YMCA 강당에서 지령 500호 기념예배, 1961년 9. 5. 종로 CLS(기독교서회) 회의실에서 600호 기념예식, 1963년 10월 7일 지령 700호 기념 자축회, 1973년 9월 23일 지령 1000호 기념예배, 1984년 3월 26일 지령 1500호 기념예배, 1997년 9월 5일 지령 2000호 기념예배, 2005년 3월 8일 지령 2500호 기념예배에 이어 2015년 6월 20일 지령 3000호를 기록하게 됐다. 현존하는 주간 신문 사상 최초, 최고(最古)의 위업이다.
 
기독교공보란 제호로 시작된 창간호의 면모를 보면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국한문 혼용 내려쓰기를 채용했으며 창간사 및 김관식목사의 '하나이 되게 하소서' 제하의 논설 등이 게재됐으며 1948년 토마스선교사 순교기념선교회에서 인수, 제호를 기독공보로 변경했으며 본보는 당시 5월에 있던 총선거를 주일에 실시한다는 발표가 있자 주일 선거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반대 운동을 주도, 결국 헌정 사상 최초의 선거를 연기시켰다. 1954년 4월 제39회 안동 총회에서 본보를 총회 기관지로 인수했으며 이 시기는 기장과 합동 등 교단 분열의 회오리가 몰아치던 무렵이었는데 본보는 대통합의 입장을 주창하며 에큐메니칼 노선을 견지했다.
 
또한 당시 사회 물의를 빚던 전도관과 통일교 등에 대한 이단 사이비성을 폭로하며 사교 집단에 대한 경각심을 계도했다. 1966년 9월엔 군사정권에 의해 정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는데 당시 지령은 848호였으며 표면적인 정간 이유는 시설 미비였다. 이후 3년 10개월 만인 1970년 7월 31일 한국기독공보란 제호로 복간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보는 복간 이후 지난 30년간 민주화ㆍ인권 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군부대, 병원, 교도소 등지에 신문을 발송, 활발한 문서선교 활동을 펼쳤으며 이단 사이비 세력에 제재를 가하다가 피소를 당하는 등 교회 주권 침탈자에 맞서며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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