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여, 정치선전에 현혹되지 말라

유권자여, 정치선전에 현혹되지 말라

[ 특집 ] 5월 특집 금권선거 근절, 교회로부터

김선욱 교수
2015년 05월 20일(수) 16:37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도리이고, 기독교인들도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다 안다. 그런데 실제 투표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제대로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인물이나 정당에 대해 확신을 갖고 투표에 임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해 보이는데, 한 편으로는 정말로 제대로 알고 그러는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실상을 보면 우리는 예배 설교를 통해 들은 힌트나 혹은 목사님의 노골적인 발언에 따라 선택을 하고 투표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마땅히 해야 할 바른 선택의 부담을 그런 방식으로 쉽게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의 선택을 생각 없이 따르면서 말이다. 그게 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자율적으로 제대로 된 신앙적 판단을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어려움의 원인은 정치 자체의 어려움에 있기도 하고 또 한국 정치의 특수한 문제점에 있기도 하다. 일단 우리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게 되면 곧바로 정치적 낙인이 찍혀버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 바른 선택을 위해 제안된 정책을 잘 살펴보려고 해도 전문가가 아니라 좋은 정책인지 아닌지를 따져서 판단하기가 어렵다.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판단하려고 해도 일반인의 눈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결국 잘 생긴 기준으로 뽑든지, 나와 동향이나 같은 학교 출신을 뽑게 된다.
 
선택의 어려움을 만드는 첫 번째 장애 요인은 선거 때마다 집요하게 이루어지는 정치선전이다. 포스터의 사진이나 현수막의 문구 하나하나가 그냥 쉽게 나오는 경우가 없다. 엄청난 돈이 투입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 광고의 TV 영상이나 문장을 그냥 대충 만들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참신한 아이디어나 영상의 질, 등장인물은 대부분 돈으로 결정이 된다. 정치선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유권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론조사를 통해 파악하고, 유권자들에게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은 두뇌집단에서 만들어 낸다. 그 내용을 가장 쉽고 확실하게 대중적으로 먹혀들 간단한 문구로 만들어 내는 것은 광고회사의 몫이다. 정당은 자신의 노선을 반영하여 정치적 색깔을 입힌다. 멋진 자동차는 광고가 아무리 멋져도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내 한 표는 멋진 광고에 쉽게 던져줄 수 있다.
 
정치선전과 정치홍보는 기본적으로 거짓과 기만의 요소를 갖고 있다. 장점과 약점 모두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점만이 어필할 수 있도록 조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사실을 거짓으로 왜곡하기는 어렵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거짓약속을 통해 기만할 수 있다. 어차피 미래의 일은 현재로써는 아무도 모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수많은 변수들이 발생할 것이므로, 약속을 번복할 명분은 언제나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를 수없이 봐 왔다. 심지어 어떤 대통령은 "어차피 선거 때 하는 공약이란 게 그런 것 아닙니까?"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두 번째의 장애 요인은 한국의 정치에 깃든 '죽임'의 문화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해서, 어쨌든 살아서 무엇을 도모해야 한다는 문화적 기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최근세사에서 일제침략과 한국전쟁,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겪으면서 내가 살기위해 남을 죽이는 문화를 덧입혔다. 부정과 부패, 부정의와 타락한 정신이 제도와 체제 속으로 녹아들어 가면서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죽여야 자신의 영구적 안정이 기약된 것이다. 여기서 죽인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신체적 생명까지 뺏는 경우를 포함한다.
 
죽임의 정치문화는 사회가 민주적으로 될수록 사라져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면 곧 당파적으로 낙인찍혀 '종북 좌빨'이 되던지 '수구 꼴통'이 되고, 사안에 따라 다른 정당의 편을 드는 일은 더 위험하게 된다. 그러니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자신의 선택을 공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된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민상토크'라는 코너는 이런 상황을 코믹하지만 정확하게 보여준다. 게스트로 나온 두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 표명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사회자는 온갖 꼬투리를 잡아 정치적 낙인을 찍고, 참관자들은 무서운 눈으로 게스트를 쳐다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의사 표명은 물론이고 건전한 의사의 형성조차도 어렵게 된다.
 
세 번째 장애 요인은 정당간의 극단적 대립이다. 정당이란 정강정책을 달리하는 집단이므로 정책마다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공무원연금과 관련된 논란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생각의 틀 자체가 다르다.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유도하고 그 산물인 재산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세금을 최소화하며 기업과 부자를 보호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을 기조로 하는 입장과, 여러 사회제도를 복지 중심으로 기조를 맞추고 세금을 통해 개인이 가진 것을 나누어 공동체 전체가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는 입장은 생각의 틀부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두 입장이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현실에 입각한 타협인데, 우리에게는 타협을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아야 한다. 판단을 할 때 우리는 듣기 좋은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듣고 있는 말은 멋진 차를 사라고 권하는 TV광고와 같다고 생각하자. 비싼 차는 선전을 많이 하고 경제적인 중소형 차는 광고를 많이 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은 통장 잔고를 따져 해야 한다. 내게 들려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 방법은 선택해야 하는 정당이나 인물의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양하게 들어야 한다. 정치적 판단을 위해 방송이나 인터넷 기사를 찾게 되는데, 그걸 만들어 내는 언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모든 언론 기사는 정치적 입장을 반영한다. 따라서 우리는 상반되는 평론을 모두 읽어야 한다. 조중동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겨레와 경향도 보아야 하고, TV조선을 보는 사람이라면 JTBC도 보아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 기사도 출처를 따져서 읽어야 한다.
 
좋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선거에 임해 기독교인이 행해야 할 바른 판단은 출석 교회의 설교에 나타나는 암시나 지시를 따르는 게 아니다. 정책 전문가를 초청하고, 적용할 기독교적 가치를 설명할 사람이 함께하여, 정당의 전략과 선전에서 한 발 벗어나 정치적 고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여야 한다. 공동체인 교회는 이런 자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좋은 기독교 단체에서 만든 정치 토론의 자리에 참석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신앙인이 사회선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첫째는 그것이 시민의 의무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기독교적 가치를 사회에 구현하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향한 기독교적 가치는 흔히 '인애, 공평, 정직'으로 정리된다. 이것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려면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니 우리는 바른 선거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을 위해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세금을 낼 의무나 군대에 갈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큰 벌을 받는다. 사회선거에 제대로 임해야 할 기독교인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우리는 큰 벌을 받는다. 그 벌이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모습의 사회에서 매일 한숨 쉬며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김선욱 교수/숭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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