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를 애도하면서

세월호 침몰 참사를 애도하면서

[ 기고 ] 독자투고

강흔성 목사 amoskang@hanmail.net
2014년 04월 25일(금) 09:57

어렸을 적에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50줄이 넘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어른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것이 이렇게 부끄럽고 죄스럽기는 처음입니다.

경주에서 체육관이 붕괴되어 대학생들이 죽어나갈 때만해도 혀만 찼습니다. 가난에 찌들려 어린 두 자녀를 아파트에서 내던지고 자기도 떨어진 비정한 엄마를 보면서 가슴만 아파했습니다. 어린 자녀를 폭행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 부모를 보면서 못된 부모를 욕만 했습니다. 그런데 진도 앞바다에 여객선이 침몰하는 소식을 듣고는 어른이 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 보기가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어른이라는 것을 반납하고 싶습니다. 어른이 자격증이라면 박탈 당해야 마땅하고 직위라면 해제 당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어렸을 적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것조차도 후회스럽습니다. 배가 침몰된 지 9일이 되었는데 생존자 구조의 소식은 없고 싸늘한 시신만 더해갑니다. TV 화면자막에 실종자에서 구조자를 빼면 다 사망자가 되어가는 최악의 계산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에어포켓을 기대했지만 우왕좌왕하는 동안에 시간은 흘렀고 그 사이에 세월호는 바다 속으로 침몰했습니다.

GNP 3만불이라는 선진국 구호도 침몰했습니다. 최첨단 과학기술도 맥을 못추고 침몰했습니다.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어른의 권위도 침몰했습니다.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사람이라는 가르침도 침몰했습니다. 법과 안전규칙, 선원윤리, 책임감, 양심 모든 것이 침몰되었습니다.

 

학창시절의 꽃인 고등학교 2학년, 꽃 중의 꽃인 수학여행길이 이렇게 눈물범벅이 되었구나. 잠시나마 무거운 학업을 내려놓고 친구와 선생님과 평생 기억될 추억을 만들기 위해 떠난 길이 마지막 길이 되었구나. 어른들 말만 잘 들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죽음의 길이었구나.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있다가 차오르는 물 앞에서 얼마나 무서웠겠니. 살기 위해 손가락이 부러질만큼 기어오르면서 얼마나 부르짖었겠니. 차가운 물, 어두운 방, 울부짖는 비명소리 속에서 얼마나 공포에 떨었니. 죽음의 공포 속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는 어른들의 가슴을 또 한 번 미어지게 합니다.

‘사랑해’ ‘걱정하지 마’ ‘잘못한 거 있으면 용서해줘’ ‘살아서 만나요’는 이 시대에 못난 어른들에게 보낸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사랑으로 보듬을 때입니다. 금쪽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비통함에 있을 가족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어루만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를 차디 찬 물속에 묻고 홀로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평생 아파할 선생님의 마음을 사랑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그래도 이 땅에 희망이 있는 것은 자기의 구명조끼까지 벗어주며 친구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을 놓치 않는 것은 위기 속에서 남을 먼저 구조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구조에 힘썼던 젊은 대학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땅에서 희망을 보는 것은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걸고 물속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아파하는 사람과 같이 아파하기 위해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불의에 분노하고, 함께 있어주는 선한 이웃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원상일교회/강흔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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