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을 때만 하나님은 하나님 되어주신다"

"내가 작을 때만 하나님은 하나님 되어주신다"

[ 교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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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0일(월) 09:25

1월 특집 - 2014년 키워드 ①작음(小)

외형 갖추기가 세상 이치, 교회도 이에 편승
성경, 부자ㆍ높은자리 아닌 낮아짐이 핵심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 요즘 많이 듣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특성화 되었다? 전문화 되었다? 그런 건 큰 교회가 더 잘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큰 교회는 아름답지 않고 희망이 없는가? 왜 작아야만 하는가?

작은 게 좋다?
 
이런 외형적 접근은 시작부터 영적진리와는 상관이 없다. 무조건 작아지라고 희생을 강요해서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어느 누가 약하고 가난하기를 원하는가? 겸손과 섬김을 강조하다가도 홀대 받으면 미칠 듯 화를 내는 게 인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이지만 세상을 지배한다. 외형적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 건물이나 교인수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목회자라면 크기에 목숨을 건다. 물질적 번영이 목회성공이라 생각한다.

목회의 계획도 설교도 다 물질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니 신앙의 신비함과 풍성함이 나올 수가 없다. 복음적 신앙적 의식을 가져야 목회가 되는데 전혀 방법을 모른다. 바울은 빈손으로 유럽을 향해 갔어도 천국의 모든 권세를 사용했다.

그러나 세상은 모두 외형적 크기만 말한다. 미국 중국 일본 모두 크다. 돈도 사람도 많다. 회사도 삼성이나 현대 모두가 크다. 돈도 인재도 많다. 교회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수만 명 모이면 신앙가족이 아니라 군중일 뿐이다.

설교도 모두 커지는 이야기다. 부자 되고 높은 사람 되기요 자기 자랑이다. 방법은 물질 숭배이다. 무조건 헌금과 봉사 많이 하면 많이 받는다. 십자가와 보혈 천당 지옥의 영적 진리는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물질적 종교가 되고 말았다.

물론 성경에 보면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다 잘되었다. 높은 사람도 부자도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부자 되라 높은 사람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헌금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하라" 하지도 않는다.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작아지라"고 한다. "낮아지라", "섬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까지도 육신적으로 이해한다. 억지로 내 힘으로 겸손 떨라는 것인가? 작아지고 낮아짐의 영적 비밀을 모른다면 천국의 그 풍성함과 강함을 삶에서 절대로 맛볼 수 없다.

크고자 하는 죄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핵심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바울 식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됨"이다. 인생성공의 길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할 줄 알아야만 하나님 영화롭게 할 힘도 얻는다. 내 힘만으로는 하나님 기쁘시게 못한다.

하지만 신자들은 하나님 대신 돈과 대접과 사랑을 즐거워한다. 하나님 아닌 자신을 영화롭게 한다. 목회하면서도 어느새 내가 제일 높여야할 존재가 된다. 보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나님 이름을 위해서들 그렇게 죽도록 싸우는가?

바울이 탄식한다.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나의 평생 목회가 이럴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내 자신도 그런 경험을 했다. 교회가 커질수록 하나님이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된다. 개척시에는 하나님밖에 의지할 데가 없었다. 자신 없고 두려워서 늘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그러나 교인이 몇 백 명만 되어도 달라진다.

거기 일꾼도 많고 헌금도 많이 나온다. 하나님 없어도 잘 굴러간다. 돈이 돈을 벌듯, 교인 수 건물 크기가 교인을 번다. 큰 교회는 저절로 굴러간다. 모든 게 담임목사 마음대로이다. 하지만 커질수록 하나님보다 돈과 사람의 힘으로 움직인다.

외형이 외형을 크게 하는 게 세상 법칙이다. 이스라엘도 작을 때는 복을 받았다. 그러나 점점 커지고 잘사니까 하나님과 멀어진다. 세상 방법을 따라간다. 선지자들이 아무리 외쳐도 그 체제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세속적 목적만 추구한다.

결국은 하나님과 아주 멀어지고 망하고 만다. 안 그러려고 해도 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스스로 무섭도록 절제해야 한다. 교회가 커질수록 두려워해야 한다. 권세와 부를 혼자 갖지 말고 나누어야 한다. 초대교회는 모두 그렇게 했다.

작아야 산다
 
예수 대신 나를 크게 하려는 게 무서운 죄인 줄 모르는가? 세상은 무조건 커야 한다. 회사도 나라도 꿈도 커야 이긴다. 크려면 세상 것이 많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면서 내 자신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평생을 그런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무서운 선언이다. 아이처럼 되는 게 무엇인가? 천국에 들어가는 근거가 무엇인가? 전적 무능이다. 아이에게 배울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지이다.

바울은 평생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다. 약하니까 예수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능력과 영적 인도는 나의 무능과 예수의 전능을 믿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실력과 돈과 건물을 믿고 나서는 즉시 육적 목회가 된다. 계속 약하라. 작아져라.

바울이 평생 어떤 달음박질을 했던가? "나는 작아지고 예수는 커져야 한다." 예수로 충만해진다면 부족함이 없다. 먹고 사는 문제는 물론 이름도 높아지고 대접도 염치없이 많아진다. 그러나 그러다 예수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예수가 커질수록 삶도 커지고 부도 명예도 따라온다. 물론 고생도 오고 좀 오래 힘들 수도 있다. 그러면 그게 더 큰 감사거리다. 이 썩어질 육신이 주를 위해 고생하는 것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으며 더 큰 보상이 어디 있으랴.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나서 이름부터 작은 자로 바꾸었다. 자신의 약함과 부끄러움을 자랑했다. 또한 예수 안에서의 자신, 예수만 의지하는 자신을 자랑했다. 이렇게 하기를 본받으라고 한다. 바울처럼 하라. 살고 잘되는 길이다.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라. 무능과 어리석음에 절망하지 말라. 그 작음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한다. 내가 크면 하나님은 안 보인다. 내 힘으로 산 것, 헛 것이다. 나의 작음을 감사하고 크신 하나님만 의지하라. 목회는 하나님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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