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선교 130주년, 알렌 선교사 입국 130년

한국교회 선교 130주년, 알렌 선교사 입국 130년

[ 교계 ]

안교성 교수
2013년 12월 27일(금) 10:42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I. 나중 된 자!
 
2014년은 한국교회에 선교사가 입국한지 130년이 되는 해이다. 1884년 알렌(H. N. Allen) 선교사의 입국 이전까지 소급되는 한국교회의 역사는 파란만장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성공의 이야기였다. 대표적인 것이 '교회 성공', '선교 성공'이다. 따라서 자칫하면,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역사 및 선교역사에 있어서 막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한국교회는, 가톨릭교회를 포함하여, 세계선교운동의 최종단계에서 복음을 접하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왜 한국교회는 막내가 되었는가? 근대개신교선교운동은 제국주의와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양자의 확산과정은 중첩되어 일어났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적은 소국이었고, 더구나 쇄국정책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우선적인 선교지가 아니었다. 
 
둘째, 왜 그리고 어떻게 한국교회에도 복음이 전파되었는가? 먼저 하나님께서 중국 및 일본 등 인근 국가에 있던 선교사들과 쇄국정책 가운데서도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 한국인들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복음전파를 시작하셨다. '쇄국정책'이란 악조건도 선교를 막지 못했고, 인근 국가의 선교사들도 한국에 대한 선교적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께서 개국이란 역사적 변혁을 통하여, 한국사회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지만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던 미국 등 서구교회를 선교에 동참시키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결코 한국을 잊지 않으셨다. 
 
II. 나중 된 자에서 먼저 된 자로
 
그렇다면, 이런 복음전파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한 마디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마 20:16)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의 막내 교회인 한국교회는 독보적 성장을 이뤘다.
 
첫째, 한국교회는 일치와 협력의 교회로 탄생하였다.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한국인과 선교사의 협력으로 성경이 번역되었고, 한국인들은 신앙과 사역의 경험을 쌓아 개국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런 일치와 협력은 선교사와 토착기독교인의 협조를 넘어서, 교회일치의 꿈으로 이어졌다. 비록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교단명들에 흔적이 남아 있다. 가령, 본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의미는, 한국에 예수'교'라는 교회가 하나밖에 없고, 장로'회'는 일부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에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도 유치하였다. 
 
둘째,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제11시'에 부름 받은 교회로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복음에 대한 부채의식이 컸다. 한국교회는 대다수 다른 나라의 교회와 달리, 선교 받는 교회로 머물거나 민족교회 설립에 만족하지 않고 선교 의식을 분명히 지닌 선교하는 교회로 발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연약한 교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하였고, 1세기만에 세계적인 선교국가가 되었다.
 
셋째, 한국교회는 민족의 문제에 앞장선 민족교회였다. 한국교회는 국가적 위기 가운데 탄생하였고,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식민치하에서,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희생을 무릅쓰고 선도적 지도력을 보였다. 또한 한국교회는 해방 후에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있어서 민족의 발전과 개혁을 위하여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교회가 지난 백여 년 동안 보여 왔던 교회 성장, 선교 성장, 민족적 지도력은 그 자체가 괄목할만한 업적이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선배교회들을 부끄럽게 하는 도전이었다. 즉 한국교회의 역사는 막내도 첫째가 될 수 있다는 복음의 역설을 몸소 보여주었다.
 
III. 다시 나중 된 자로?
 
이런 역사를 지닌 한국교회의 오늘날의 위상은 어떠한가? 교회 분야는 짧은 역사 속에 급성장했다가 급쇠퇴하는 위기 앞에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선교 분야는 서구선교의 문제를 답습할 뿐 아니라, 막내교회로서의 겸손을 상실한 교만과 일방적인 선교관행이라는 문제에 봉착해있다. 사회 분야는 이기주의, 소통부재, 후진성이라는 장벽에 부닥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한국교회는 성장보다 진정성을, 과시적 선교보다 겸손한 선교를, 지배자보다 섬기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의 회복을 새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즉, 한국교회는 먼저 된 자로서 그에 걸 맞는 정체성을 지녔고 소임을 다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교회는 이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는 복음의 준엄한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교 130주년이 한국교회에게 던지는 역사적 질문이다.

안교성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