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개혁의 산을 넘어서

한국교회 개혁의 산을 넘어서

[ 기고 ] 독자투고

정은성 목사
2013년 11월 07일(목) 14:09

한국교회는 개혁의 산을 넘어야 산다. 기독교 역사상 개혁이라는 말이 크게 나타난 때는 16세기 즉 1517년 루터가 개혁에 성공했을 때이다. 그 때 신교(Protestantism)가 탄생했고, 구교와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130년 정도로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갖고 있으나 세계 기독교사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급성장한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그 성장이 멈추었다고 한결 같이 염려하고 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50년대 60년대 당시 신학교 학생들은 금식하면서 기도와 성경연구를 했으며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6ㆍ25동난으로 성직자와 교인들이 순교하기까지 수난을 겪었다.  이북 공산치하에서 기독교가 수난을 당해 이북의 교회는 문을 닫고 북한의 목회자와 열심 있는 성도들이 월남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맨손으로 피난 온 이북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눈물로 교회를 개척하여 복음전도와 선교로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의 한국교회를 이룬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경제적으로는 GNP 2만불 선진국 문턱에 왔다고 자부하는데 왜 기독교의 성장은 멈추고 있는가? 그 이유 중 하나가 끝없이 개혁되어야 할 한국교회의 개혁이 멈췄기 때문이다.
 
그 단면으로 한국교회를 앞장서 이끌어야 할 영적지도자들이 안일주의로 뒷전에 서 있고 한편 물량주의와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래서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하나되어야 할 교회가 그룹별, 계층별 갈등으로 분열되어 마귀의 꼬임에 이용당한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최대 약점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빛과 소금의 맛을 잃은 지 오래고 전도와 선교의 열정이 식어졌다고 한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을 떠나 고립과 고뇌에 시달리고 있다. 목회자들 중에는 자기가 개척한 교회를 자신의 교회로 착각해 세습에 빠져 있으며, 신학교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수많은 졸업생을 양산하여 갈수록 문제가 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는 수평이동을 하므로 양적 성장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난제들을 안고 있는 오늘에 목회자들은 갈수록 목회 길은 태산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후배 목회자들이 이 산을 잘 넘도록 선배 목회자들이 먼저 기도해 주어야 한다.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개혁하는 길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한국교회 총체적인 위기를 잘 극복해 마침내 개혁의 산을 넘어가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정은성 목사 / 전국은퇴목사회 회장ㆍ성수동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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