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무식했던 목사가

성경에 무식했던 목사가

[ 목양칼럼 ] 목양칼럼

박은호 목사
2013년 10월 31일(목) 14:11

오랜 신학친구 목사, 그 친구가 잊어버린 얘기를 해 준 것이 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고시를 할 때, 나는 그때 결혼한 후였는데 아내에게는 말도 못했던 일, 전형료 5만원이 없어 그 친구에게 빌렸던 잊어버린 옛 얘기를 한 일이 있다. 나는 까마득히 잊어버린 얘긴데, 친구는 그 얘기를 두 번은 한 것 같다. "박 목사가 목사고시 칠 때, 전형료 5만원이 없어서 나한테 빌렸었지…." 아내는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난 두 번째 듣고서야 기억해 내었다. "그렇지, 고맙다 야! 그 돈 갚긴 갚았니?" 그렇게 어렵게 친 목사고시다. 대전에서 목사고시를 했는데, 목사고시를 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나는 두 가지 마음에 무척 힘이 들었다. 하나는 너무 성의 없이 목사고시에 응했던 점이고, 또 하나는 목사고시의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낮아서였다. 물론 전적인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요지는 그렇게 목사고시를 치르고 목사가 되어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지만 진솔하게 나를 돌아다보면 나는 성경에 너무 무식했던 목사였다. 물론 그 이후에도 신학을, 성경을 공부했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지만,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목사인 내가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너무 무식하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쓸데없는 이 시대 온갖 지식과 정보와 사상,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너무 많이 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하나님께서 숨을 쉬어 내뱉으신, 데오프뉴스토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경홀히 여긴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현대사회는 실용주의사회이다. 금방 배워서 써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금방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보이는 일, 10년 20년 그 뒤에나 효과가 나타날 일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눈앞에 것에만 집착하는 시대이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10년 뒤를 걱정하며 연구개발(R&D)에 투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미래투자도 역시 어느 한 시대 한 때가 지나면 옛 것이 되어 쓸모없게 될 것을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투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어디 그런 것인가? 10년 20년 30년 100년 뒤의 일에 국한 된 일인가? 영원한 세계의 것이 아닌가? 알파와 오메가시고 처음과 마지막이신 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구하는 자들이 오늘의 교회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돌이켜보면 그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너무 무식한 채 대충 목회해 온 것 같은 자괴감이 드는 것이 내 솔직한 고백이다. 남은 목회가 이미 지나가버린 목회 세월보다 짧지만 나는 이제 와서 다시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 꿇는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오늘의 말씀 부재 현상 앞에서 다시 고뇌하고 있다. 주전 8세기, 패망으로 내리닫던 북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한 선지자 호세아는, 그들의 패망의 원인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핍(없음)"이라 하지 않았던가? 영적무지, 영적문맹 말이다. 혼합주의 신앙 말이다. 그 영적문맹의 가장 큰 요인은 하나님 아는 지식이 결핍되어 있던 북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의 영적무지에 있었다.
 
얼마 전 우리교회 목회자들과 형제교회 목회자들이 함께 모인 적이 있다. 다들 형편이 넉넉지 못한 어려운 개척교회 농촌교회 목회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야 했던 '말씀공동체였던 바벨론 포로 귀환자들'의 심정으로,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기 위해 성경원어해석대사전 바이블렉스를 들고, 각자의 목회지로 나아갔다.

박은호 목사 / 정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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