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을 써 가야할 목사가

참회록을 써 가야할 목사가

[ 목양칼럼 ] 목양칼럼

박은호 목사
2013년 10월 23일(수) 13:40

목회자의 소명(召命)을, 목사안수 받던 날에야 확정했던 '늦깎이 소명목사'인 나는 나름대로 '목사 의(義)'가 남 못지않았었다. 목사안수 받던 즈음, 하나님 앞에서 일대일로 목사서약기도 같이 기도드린 일이 있다. "하나님, 이제 평생 목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목사의 도를 잃지 않는 목사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배우고 닮는 목사 되게 해 주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이렇게 계속되는 서약기도 중, 하나님께서 초보 목사인 나의 목회철학과 내 안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목사 의'를 꺾어버리신 1차 경고적인 사건을 일으키게 된 기도가 있다. "하나님, 저는 목사로서 결혼하기 전에 이미 동거생활 한 사람, 아이 낳고 살다 뒤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의 결혼주례는 하지 않겠습니다"며, 당당하게 자신의 '목사 의'를 자랑하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바른 목사의 도(道)인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하나님은 목사로서 첫 결혼주례를 제가 하지 않겠다던 바로 그런 부부의 주례를 하게 하셨다. 양가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아이까지 낳고 살던 부부가 뒤늦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교회에 결혼주례와 예식장소 허락을 청원한 것이다.
 
경건회 후, 교역자 모임에서 행정담당목사가 이 가정의 결혼주례와 장소허락 청원 건을 내어 놓으면서, 먼저 두 가지 제한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건덕상 담임목사님은 이런 가정의 결혼주례는 못한다는 것과 둘째는 이런 부부의 결혼식은 본당에서는 할 수 없고, 당시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교육관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불과 그 시간이 1, 2분밖에 안 되었지만 분위기상 매우 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 긴 침묵이 흐를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얘, 박 목사야 네가 그 부부 결혼주례해 주면 안 되겠니?" 나는 속으로 강하게 저항했다. "하나님, 제가 이럴 줄 알고 목사서약기도 드린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 보고 이 결혼주례를 하라, 하십니까? 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의 그 못된 '목사 의'를 초장에 꺾어놓으시려 작정하신 것 같았다. (긴 침묵을 깨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 결혼주례, 제가 하겠습니다. 결혼식은 교육관에서 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하자, 더 이상의 논의 없이 조용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때 내 나이 31살, 신랑은 33살이었다. 그것이 나의 첫 결혼주례였다. 그 결혼주례과정에서 하나님은 목사인 나에게 "얘, 박 목사야! 그런 가정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게 살 특권이 있다"며, '목회ABC'를 가르쳐주셨다. '목회ABC'도 모르는 철부지, 어쭙잖은 '목사 의'로 가득했던 나를 초장부터 만지기 시작하신 것이다. 나는 다시 고쳐 서약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제부터는 배부른 사람도 결혼주례 해 주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의 목을 붙잡고 다루시는 '목사 도(道)'가 있는데 그것은 내 안에 버리지 못한 '목사 의'를 꺾으시는 일이다. 나는 그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돌아보니, 걸어 온 목회 길 흔적에 나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목사 의'는 단 한 가지도 없다. 도무지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런데 때때로 교만하기 그지없었던 목사 철부지였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겸허하게 목회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목사보다 나은 교인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목사로 구별하여 세워주셨으니, 사명자로 살아가야 하기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총을 구할 따름이다. 지금 와서 보니, 나는 처음부터 목사로서 참회할 것밖에 없는 목사였다. 내가 자랑할 '의'는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박은호 목사 / 정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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