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삶

노년의 삶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젊은이를위한팡세

전혜정 총장
2013년 10월 10일(목) 10:56
개나 고양이같은 동물들은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현재의 배고품이나 본능에 충실할 뿐, 미래의 꿈이나 목적을 갖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인간은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존재로, 어쩌면 근심 걱정을 사서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보다 행복한 삶을 꿈꾸며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기에 근심과 걱정을 뿌리치기 어렵다. 또 인간은 끊임 없이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면서 새로운 전략과 목표를 세우기 마련이다. 이처럼 목표가 분명한 사람에겐 아마도 노년의 공허감이나 무료함이 깃들 수 없을 것이다.   
 
혹자는 "과거는 시효가 지난 수표이며 미래는 약속 어음일 뿐이다. 그러나 현재는 당장 사용 가능한 현찰이다"라고 했지만, 인간의 꿈이나 목적이 현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청년 시절에는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으나 늙어지면 생명력이 시들해져 꿈도 목적도 사라져감을 쉽게 깨닫게 된다. 노년에 이르도록 젊은 시절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이들은 큰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은퇴하면 노년의 삶을 보내게 된다. 언뜻 생각하기에 은퇴 후의 삶은 무기력한 노구로 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일 그런 생활이 반복된다면 노년의 삶은 급속도로 어두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독일의 유명한 시인 헤르만 헤세가 "청년은 놀기를 원하고 노인은 일하기를 바란다"고 읊었던 것처럼, 노인들의 삶을 활력있게 만드는 비결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일과는 약간 성질이 다른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남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일, 나에겐 득이 되고 남에겐 손해되는 일, 이런 일로 인해 무한 경쟁이 야기되는 삶은 아무래도 노인네들에게 버거운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남지 않은 노인들이 더 많이 벌려고 하거나 경쟁적인 삶을 산다면 욕심이 지나치다는 말을 듣게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노년의 삶은 다른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젊었을 때는 보다 많이 벌기 위해, 남보다 앞서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왔다면, 노년의 삶은 더 많이 벌여 쓰고 먹고 마시는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인생, 무엇과도 비교가 불가한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노년의 삶은 자신을 돌아보는 삶, 진정한 자기가 무엇인지 성찰해보는 삶,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삶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헤르만 헤세가 "청춘은 이기주의로 끝나고 노년은 남을 위한 생활로 시작한다"라고 했을 때, 이는 위대한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남에게 손해가 가지 않은 일, 남을 위하는 일, 남과 이해관계가 있지 않은 일, 이를 확대하면 사회나 국가를 위한 일, 아니 전 인류를 위한 일에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 각자 이제껏 살아온 분야에서 찾아보면 얼마든지 사회에 봉사할 일들이 널려 있다고 생각된다. 공원에서 햇볕을 즐기는 노후보다는 무언가 이웃과 사회를 위한 일들, 예컨대 동네 궂은 일에 앞장선다든지, 각종 단체나 모임 등을 통한 사회봉사,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일지라도 무언가 의미있는 일들이 찾아보면 얼마든지 발견된다. 이런 일들로 노년의 시간을 바쁘게 보낸다면 노년의 삶에 찾아오는 허무감을 말끔하게 날려보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노인들에게 곧 다가올 죽음의 문제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남은 날을 게으르게 보내면 영원히 게으른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은 이 땅 위에 남은 내 삶의 첫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어떨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