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칼과 칼집

목회자의 칼과 칼집

[ 목양칼럼 ] 목양칼럼

노창영 목사
2013년 06월 26일(수) 16:15

목회를 하다보면 칼집에 꽂혀있던 칼을 뽑고 싶은 육신의 충동이 꿈틀거릴 때가 있다. 목회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나,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갈등이 생길 때에 목회자들은 분노의 칼, 혈기의 칼, 저주의 칼, 역습의 칼, 비난의 칼, 복수의 칼을 뽑아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버리고자 하는 유혹이 생긴다. 특히 다윗의 은혜를 잊은 나발같이 천박하고 완고한 고약한 인물들이 우리를 무시할 때에 우리들은 다윗처럼 칼을 차고 끝장을 내버리고 싶은 자아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삼상25:1~13).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것이셨다. 베드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께 3년간 올인 하였다. 인생의 모든 것 되시는 그 예수님께서 체포되는 순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라는 사람의 오른편 귀를 베어버렸다. 어떤 미국 강해설교가의 해석대로 베드로는 그 혈기로 말고를 죽이려고 칼을 내리쳤으나, 말고는 피하다가 오른편 귀가 잘려나간 것이 맞는 것 같다. 베드로는 움직이는 인간의 귀만 떨어뜨릴 수 있는 검술의 유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분노와 혈기의 칼을 칼집에서 뽑은 것이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Put your sword away, NIV)고 말씀하셨다(요18:11). 같은 상황을 서술한 누가는 복음서에서 "이것까지 참으라"(No more of this, NIV)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눅22:51). 섣불리 분노와 혈기의 칼을 뽑지 말고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칼집 속의 필살의 무기인 복수의 칼을 슬며시 꺼내고 싶은 충동을 초극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평생의 대적인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결정적 기회를 얻었다. 한번은 엔게디황무지의 굴 속에 숨어있을 때이고(삼상24:1-7), 다른 한번은 십황무지에 진을 친 사울이 잠자는 진 속에 들어갔을 때이다(삼상26:1-12). 이 결정적인 순간은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라고 주신 기회이니, 단칼에 사울왕을 죽여 버리자는 다윗의 부하들과 아비새의 혈기의 행동을 금하고, 다윗은 칼을 뽑지 않고, 그의 평생의 대적, 원수 사울에게 관용을 베풀어 평안히 보낸다.
 
위대한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자신의 후임자 디모데목사에게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자신을 말로 대적하고, 힘들게 했던 구리 장색 알렉산더를 언급한다(딤후4:14-15). 이처럼 위대한 복음과 사랑의 사도바울도 자신에게 해를 많이 보였고, 자신의 말을 대적한 알렉산더를 요주의인물명단(Blacklist)에 올린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지간히도 바울을 괴롭게 한 것 같다. 그러나 사도바울도 알렉산더의 문제에 대하여 치리의 칼을 뽑는 극단적인 처방을 피하고, 주님의 갚으심과 주의할 것을 디모데에게 권면한다.
 
1928년 캐나다의 피플즈 처치(Peoples Church)를 창립한 지나간 세대의 목회자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목사는 그의 책 '구령의 열정'(The Passion for Souls)에서 자신의 목회 좌우명을 소개한다. 그것은 '무공무방'(無功無防, No Attack NO Defence)이다. 어느 누구도 공격하지 말며, 어떠한 경우에도 방어하지 말라는 원칙이다.
 
비난, 공격, 분노, 혈기, 고소의 칼부림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말고의 귀를 고쳐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관용의 힘으로 비난과 공격과 복수의 칼을 칼집에 꽂아 넣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면 좋겠다.

노창영 목사 / 개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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