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감사합니다"

"이대로 감사합니다"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김영걸 목사
2013년 02월 21일(목) 10:54

목사의 역할 중에 하나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하는 것이 아닐까? 기쁠때 함께 기뻐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슬플 때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때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대구 중앙로역 근처에 있었다. 대구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듣고, 출타했다가 급히 교회로 돌아왔다. 피해자를 살펴보니 집사님 딸이 참사에 희생이 되었다.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대학생으로 목소리도 예뻐서 교회행사 때마다 진행을 맡았던 청년이었다. 얼마전 교회 행사때 진행을 맡아 교인들을 재미있고 흐믓하게 했던 그 예쁜 여대생이 그만 희생을 당한 것이다. 새벽기도회때 예배당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지금 섬기고 있는 포항동부교회로 청빙을 받아 오게 되었다. 그런데 포항동부교회에 와보니 이곳에는 더 아픈 사연이 있는 집사님 가족이 있었다. 대구지하철 사건으로 대학생이 된 두 자녀를 모두 잃어버린 가정이었다. 누나 졸업식에 함께 가던 두 남매가 희생을 당하고 말았다. 두 청년은 어릴적부터 교회학교에서 성장하였고, 청년부에서도 열심히 신앙생활하던 청년이었다. 집사님댁을 심방했을 때 그 막막함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해줄 말이 없었다. 이렇게 막막한 자리에 설 때마다 목사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한지 모른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함께 울어주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때 집사님 남편은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가정의 희망인 두 자녀를 모두 잃어버렸으니 하나남 앞에 할 말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원망을 왜 해보지 않았겠는가? 아마 두분이 함께 죽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교회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작은 것들이었다. 함께 마음을 나누고, 기도해주는 것 뿐이었다. 특히 매년, 그날이 되면 온 교역자가 함께 가서 추도예배를 드렸다. 3년이 흘러도, 5년이 흘러도 10년이 되어도 추도예배를 드릴 때마다 마음에 흐르는 슬픔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남편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두 분이 교회 봉사에 열심을 내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성품도 신실하고 봉사도 잘하는 분이셨다. 두 분이 신실하게 신앙생활과 교회봉사를 잘 해서 마침내 2009년에 집사님은 권사로, 교회에 다니지 않던 남편집사님은 안수집사로 임직을 하게 되었다.
 
두 분은 시외에 별장을 하나 지어 교회의 각종 모임 및 수련회 장소로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교역자들을 초청해 삽겹살도 함께 나누곤 하였다. 어느날 별장에서 집사님 가족과 교역자 모임이 있었다. 별장 입구에 새롭게 걸어놓은 목각이 눈에 띄었다. 그 목각에는 '이대로 감사합니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잔잔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교회가 한 것은 함께 울어주고 슬픔을 나눈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많은 은혜로 채워주셨다. 오늘도 '이대로 감사합니다'라는 목각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고, 인도하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김영걸 목사 / 포항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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