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東隱) 김광현목사 목자상을 제정하자

동은(東隱) 김광현목사 목자상을 제정하자

[ 기고 ] 김광현목사를 기리며

정재훈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28일(금) 09:40

[독자투고]

증경총회장 김광현 목사는 네 번이나 경안 노회장을 역임 하면서 일제 탄압으로 폐쇄된 교회와 폐지된 노회를 복구하는데 선봉장이 되어 혼신의 정열을 쏟았다. 경안학원 설립과 성서학원, 성소병원 운영 등 선교와 연관된 공헌이 지대하다. 총회적으로는 다년간 서기 겸 총무로 일했고 장신대 이사장을 비롯한 산하 각 기관에 이사로 파송되어 봉사한 수고가 눈부시다. 특히 총회가 합동과 분열될 때 김광현 목사는 노회원들과 교회가 이탈하지 않도록 지도력을 십분 발휘했으며 오늘의 장자 교단이 되기까지 통합측 총회가 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총회장 재임 시에는 비범한 식견을 가지고 국내외 에큐메니칼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여 교단의 위상을 한층 더 높였다.

김광현목사의 생애 중 그가 지도자로서 남긴 공헌과 목자로서 귀감이 된 교훈을 약술해 본다.

1. 자비 : 농촌교회 주일학생이 다니는 학교에서 국기에 대하여 경례하지 않는다하여 퇴학을 당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목사는 경북도지사를 찾아가서 "태극기에 절하는 것은 신사참배와 같은 것이고 우상에 절하는 것이기에 이 어린이의 행위가 정당하다" 말해주었다. 당시 신현돈지사는 김목사의 요청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국기에 대한 배례대신 주목례로 고치게 하였다. 따라서  퇴학당한 이 어린이에게는 등교가 해결 되었으니 선한 사마리아인의 자비였음이 분명하다.

2. 살신성인의 사표(師表) : 숭전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자 김형남 박사는 더 유능한 학자에게 총장직을 맡기고 물러나게 되어 이사직 마저 잃게 되었다. 김장로는 누구보다도 이사회에 있어야할 일꾼이었다. 그래서 김목사는 자신이 총회의 대표 이사직을 그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사임하여 살신성인의 본을 보였다.

3. 선한목자 : 교회로부터 추방당한 후배목사를 두 번이나 안동교회에 부목사로 오게 해서 심기일전하여 재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4. 광야의 구세주  : 학력 미달로 목사 될 희망이 전혀 없는 교역자들에게 총회로 하여금 특별제도를 마련하여 목사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5. 남다른 선견지명 : 불의의 사고로 한쪽다리를 잃었으나 전도열이 대단한 무명의 장로를 전도인으로 발탁하여 그로 하여금 동(東)안동 지역을 전도하여 열 교회를 세우게 하였다. 그는 김수만 장로이다.

6. 귀감이 된 후계자 선정 : 김목사는 후임자를 야단스럽게 멀리서 데려오지 않았다. 지근거리에서 신학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기수 목사를을 추천하여 후계자로 삼았다. 그를 친자(親子) 이상으로 자애 했다.

7. 전무(前無)한 역사창조 : 김목사가 아직 건재할 때에 후임 목사가 또 총회장이 되었고 대를 이어 원로목사가 되었다. 일찍이 교회사에 이런 예가  없었다하니 분명 역사창조였다 하여도 무리가 아닌 줄 안다.

8. 주는 자의 대명사 : 일제에 의해서 안동교회로 통합된 안기(서부)교회와 신세(도부)교회를 지역에 따라 사심 없이 권장하여 분리해 주었다. 피난 온 감리교회 목사의 생계를 도와주었고, 그로 하여금 안동에 감리교회를 세우게 하였으며 성결교회와 구세군이 설립되는데도 후원과 협력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과연 김광현 목사는 불세출의 한국교회 지도자였다.

이 분의 사상과 공적 박애주의 리더십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지면 후세에 손해이다. 세월이 더 가기 전에 목사님의 목회 지도자상을 이어지게 해야 하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차제에 김광현 목사의 목자상 제정을 안동교회와 경안노회에 삼가 제언하는 바이다.


정재훈목사 / 총회 역사위원장ㆍ대구서부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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