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열전-한영제장로 김창인목사 김기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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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 총회장열전

김수진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19일(월) 10:16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제77회 총회장 한영제장로

한영제(韓永濟 1925-2008)장로는 평안북도 구성에서 한경호와 김치호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해방을 만나 선천성경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북한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신앙의 자유를 위촉받아 1947년 고향을 탈출하여 독신으로 월남하였다. 이미 부인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언제나 피난을 올까 하고 주일이 되면 서울 영락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월남한 교인들의 등록을 확인하던 차에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6ㆍ25전쟁 때 대구에서 미 8군 특수부대에 입대하여 퇴각하는 인민군을 추격하다가 강원도 치악산 전투에 참전을 하게 되었다. 제대를 한 후 대구에서 정문사라는 서점을 운영하게 되면서 오늘의 기독교문사가 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자연히 교회와 총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다가 그의 신앙의 많은 감화를 받았던 통합측 총회에서 그를 총회장으로 추대를 하자 무난히 당선이 되어 한국 장로교 역사상 장로가 총회장이 되는 새로운 기록을 남기었다. 한영제장로는 재산을 한국교회에 환원한다는 뜻에서 경기도 이천에 '한국기독교박물관' 또한 북에 두고 온 부모를 생각해서 양로원인 '한나원'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제78회 총회장 김창인 목사

김창인(金昌仁, 1933-현존) 목사는 황해도 출신으로 6ㆍ25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고생 끝에 1ㆍ4 후퇴를 만나 미군이 준비해 준 피난민 수송선을 타고 신안군 도초도란 섬으로 피난을 갔다. 공부해야 할 나이에 도초 염전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다행히 주일이면 도초 성광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릴 때는 감격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이 후 부산신학교에 입학, 1958년 졸업 후 장로회신대학교 진학하였다. 졸업 한 후 부산으로 내려가 목사안수를 받았다. 학사편입으로 부산동아대학교 졸업하고 광나루 건너편 강동구 풍납동에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해야겠다는 기도의 제목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1966년 천막을 치고 시작한 것이 오늘의 광성교회가 됐다.

1993년 9월 서울소망교회에서 모이는 제78회 총회에서 부총회장인 김창인 목사가 개회 설교를 하였다. 그는 "예언자는 시대를 막론하고 뒷전에서 관망하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전제, 교회는 시대에 앞장서서 복음을 증거 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이끌어 가며 방향을 제시하는 선구자적 구실을 다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총회법에 의해 2003년 12월 말에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제79회 총회장 김기수 목사

김기수(金基洙, 1933-2007) 목사는 경상북도 영주군 장수에서 김병두와 신둔선 사이에서 8남매 중 6번째로 출생하였다. 일찍이 선친께서 땅을 교회에 헌납하여 장수교회가 출범하게 됐다.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에 진학, 1957년 12월 졸업했다.

그 후 김기수는 안동에 있는 경안성경학교 교사로 초빙을 받고 24년간 교수와 교장을 역임 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1994년 9월 제79회 총회가 서울소망교회에서 개회될 때 김기수목사를 총회장으로 추대하는 박수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여성안수문제를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

김기수 총회장은 총회장 메시지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면서 현 상황에서는 재검토(Review), 회개(Repent), 그리고 갱신(Renew)의 3R 운동을 전개하자고 외쳤다. 1995년 1월 5일 총회 신년하례식에 합동측 총회장 김덕신목사가 출석과 함께 축사까지 나누는 등 합동측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귀한 행사를 마련하였다. 김기수목사는 2003년 안동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고 제자들을 재교육시키겠다는 뜻에서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고 이사장직을 맡기도 했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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