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열전-장동진목사 김형태목사 임목목사

총회장열전-장동진목사 김형태목사 임목목사

[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 총회장열전

김수진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05일(월) 14:13

[김수진목사의 총회장열전]


제71회 총회장 장동진 목사(1986년)

장동진(장동진, 1925-현존)목사는 전북 고창군 오산리에서 장용수와 이실거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선친께서 오산교회의 장로로 시무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 교회를 다녔으며, 그의 선친은 일본인 장로 마스도미의 지원으로 받아 도일하여 도쿄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마스도미 장로가 운영하는 농장을 관리하였다. 장동진은 마스도미 장로가 세운 고창고등보통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해방 후 고려대 전문부 철학과에 진학을 하였다. 뜻하지 않는 6ㆍ25전쟁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낙향을 하였다.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고 1954년에 졸업을 하였다.

때마침 김형남장로가 전남방직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서림교회 목회자를 찾던 중 장동진 목사가 1967년에 부임을 하였다. 당시 서림교회는 전남 방직 여공들이 출석을 하였다. 매주 월요일이면 3천여명의 여공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 장동진목사가 설교를 담당하였다. 교인들이 증가하자 서림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과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직공들에게 총회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성경통신과에 입학을 시켜 모두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때 교재대금은 본인이 절반을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서림교회에서 부담을 하면서 성경공부를 시켰다. 장동진목사는 총회 법에 따라 70세가 되자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았다.


제72회 총회장 김형태 목사(1987년)

김형태(金炯台, 1929-현존)목사는 경상북도 포항에서 김은석 목사의 7남매 중 셋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 김은석 목사가 일본 나고야교회에서 시무할 때 일본 나고야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해방이 되자 김은석목사는 서울구치소 형목으로 재직하면서 김형태도 서울 생활을 하게 됐다. 아버지의 큰 뜻을 깨닫고 4형제 모두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됐다. 장로회신학대학으로 편입을 하고 1952년  1954년 3월 경서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3대의 목사로 역사를 이어 가게 됐다.

그의 할아버지 김영옥도 목사였으며 이렇게 3대째 목사 가문을 이어가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도미하여 센프란시스코신학교에 진학하여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1957년 문학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을 하였다. 그 후 연세대학교 교목 및 신과대학 교수로 재직을 하던 중 다시 유학의 길에 올라 미국 피츠버그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계속해서 연세대에서 교육학을 강의 하던 중 서울 연동교회의 청빙을 받고 1968년 부임을 하였다.

1987년 6월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때 부총회장으로서 '인권은 그 누구도 침벌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설교를 마치고 전국에서 모인 목회자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한국백주년기념관까지 행진해 민주화 운동에 앞장이 되기도 하였다.


제73회 총회장 임목 목사(1998년)

임옥(林沃, 1921-2000 )목사는 평안남도 안주 출신으로서 일찍이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평양 숭인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다시 1947년에 평양신학교에 진학을 하였지만 김일성 정권하에서는 신앙의 제약을 많이 받았으므로 월남하여 박형룡박사가 운영하는 장로회신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6ㆍ25의 한국전쟁으로 1951년 부산에서 장로회신학교를 졸업을 하였다. 졸업한 임옥은 육군 종군 목사로 시무를 하였다. 1953년 종군목사를 사임하고 서울에서 다시 문 연 성도교회에서 사역했다. 1957년에는 서울 도원동교회의 청빙을 받고 목회를 하였다. 불우한 청소년들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영생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였다. 한참 교회가 성장해 갈 무렵 1965년 가을 돌연 사임서를 제출하고 도미 유학을 위해서 떠난다는 말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임옥목사는 1970년 서울 영암교회의 청빙을 받고 귀국을 하였다. 제72회 총회 때 부총회장은 3명의 경쟁이었기에 관심들이 많았다. 1차 투표에 과반수를 못 얻었던 관계로 2차 투표에서 임옥목사가 6백 표를 얻어 당선이 됐다. 그 후 임옥 목사가 총회장이 되면서 부총회장이 자동적으로 총회장으로 추대를 받을 수 있도록 선거 조례 법을 만들어 그 전통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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