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열전-림인식목사 박종렬목사 이종성목사

총회장열전-림인식목사 박종렬목사 이종성목사

[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 총회장열전

김수진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29일(월) 16:04

[김수진목사의 총회장열전]

제68회 총회장

림인식(林寅植,1926-현존)목사는 중국 요령성 심양에서 림재수와 김숙현의 사이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3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을 하였다. 림인식은 3세가 되던 해 중국 심양에서 할아버지의 고향 박천으로 이사를 하였다. 해방이 되자 신의주 공업전문학교에 입학을 하였으며, 1947년에 졸업하였다. 1947년 평양신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평양창동교회 전임 전도사로 사역을 하던 중 6ㆍ25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유엔군과 국군이 12월 4일 평양을 포기하고 후퇴하자 이 기회를 이용하여 평양을 탈출하여 해주를 거쳐 미군의 피난선을 타고 제주도로 갔다. 1951년 부산에서 장로회신학교가 문을 열었다는 말을 듣고 졸업반에 편입하여 공부하였다. 곧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제15육군병원에서 군목생활을 하였다. 경희대학교에 적을 두고 공부를 하였다. 1957년에는 부산 동광교회 동사목사로 목회를 하였으며, 1959년 7월 대구영락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영남신학교에서 전임강사로 강의하였다.
 
1962년 아주 어려운 노량진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였다. 결국 2부제 예배를 드려도 오는 교인을 다 수용 할 수가 없어서 노량진 언덕에 새 성전을 신축하고 1976년 봉헌예배를 드렸다. 1977년에는 1천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1984년 한국교회100주년 기념대회에서 4대 목사가정으로 수상을 받은 일이 있었으며, 일본 선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한일선교협력회를 조직하고 이 일에 힘을 쏟기도 하였다. 1994년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고 지금도 원로목사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제69회 총회장

박종렬(朴鍾烈, 1922-2004)목사는 충북 청원군 강내면 내곡리에서 박남규와 김일길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친구의 권유로 내곡교회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기독교를 접하게 됐다. 그가 미국 북장로교에서 설립한 청주 청남학교 6학년 재학 중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옥고를 치룬 일도 있었다. 해방이 되자 목회자가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서울 장사동에 있는 중앙신학교 신학과에 입학을 하였다. 6ㆍ25 전쟁 후 중앙신학교를 졸업한 박종렬은 청주제일교회의 전임전도사로 청빙을 받고 시무를 하던 중 충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기장 예장 분열로 박종렬목사는 예장에 남았다가 결국 청주제일교회에서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 승동교회에서 청주 서남교회를 개척하자 그곳에서 얼마동안 시무를 하다가 1966년 서울 충무교회의 청빙을 받고 22년간 목회를 하였다. 그의 22년간의 목회 중 가장 인상적인 일은 오직 말씀 중심의 설교였으며, 어려운 시골교회 목회자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면서 충무교회, 을지로교회가 연합하여 헤브론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해 직접 강의를 하였다. 은퇴 후 자신이 가야 할 길, 한국교회의 목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갔다.
 
그가 2004년 6월 29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날 그의 유언대로 시신을 기증을 하여 그 중 박종렬목사의 두 눈은 두 사람에게 기증되었다. 세브란스병원에서는 그의 시신을 의학도들로 하여금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자신의 시신을 화장했기 때문에 경기도 양주군 양수리에 서울 충무교회묘지에 안장을 하였다. 
 
제70회 총회장

이종성(李鍾聲, 1922-2011)목사는 경상북도 의성에서 이규봉과 김성련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철저한 유교가정에서 성장하였다. 큰 누나 이순해의 안내를 받고 교토에 정착을 하였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리찌메이칸중학교 야간부에 입학을 하였다. 주일이면 누나가 출석한 교토한인교회에 나갔다. 원래 머리가 명석하였던 이종성은 중학교 2년 과정을 다 마치고 1년을 남겨 두고 도쿄에 있는 성립상업학교에 편입하여 5년 과정을 마쳤다. 도쿄신학대학에 진학하여 4년간 신학을 이수한 후 1952년 3월 1일 도쿄한인교회에서 모인 재일대한기독교회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시모노세끼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미국 루이빌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프린스톤신학교에서 2년간 연구를 하고 1957년 귀국하여 서울 영락교회의 부목사로 청빙을 받고 목회사역을 하는 한편 장로회신학대학교, 숭실대학교 강사로 출강했다. 잠시 도미하여 프린스톤신학교에서 1년간 연구했던 것을 인정받고 센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3년과정의 신학박사과정을 이수하고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로 활동을 하다가 1966년 장로회신학대학 교수겸 학감으로 재직하다가 계일승박사가 은퇴를 하자 1971년 학장으로 취임을 하였다. 은퇴후 1991년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화진흥원을 설립했다. 원래 연구하기를 좋아했던 이종성학장은 2001년에는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40권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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