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회 총회 3일차 아침예배 설교 전문- 이안 토랜스

제97회 총회 3일차 아침예배 설교 전문- 이안 토랜스

[ 교단 ] 97회 총회 아침설교(토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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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21일(금) 14:11
[총회 특별판]

설교자: 프린스턴신학교 총장 이안 토랜스 목사
본문: 마태복음 13:31~33, 이사야 31:1~5
제목: 그리스도인, 북한 동포의 벗
 
   
말씀 나누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저는 프린스턴신학교 총장이고, 스코틀랜드장로교회 증경총회장입니다. 여러분과 말씀을 나눌 주제는,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 구체적으로는 북한 동포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마태복음 말씀과 같이 "너희중에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한 것이 바로 나와 함께 한 것이다"를 특별히 묵상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위기의 순간, 고통의 순간, 십자가에 달리기 이틀 전에 말씀하신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우리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이제 곧 배반당하고 모욕당하고 죽음을 당하실 그분께서 지금 사랑을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사랑을 이야기 하십니다. 사랑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서구사회를 여행해 보면 어디서나 구걸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될 수 있으면 관대하고 신중하게 도우려 합니다. 그런 상황에 접할 때마다 우린 스스로 착각합니다. 내가 마치 사랑을 행하는 것 같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착각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있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동정일 뿐이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사랑이며, 사랑은 그저 베푸는 것이 아니라 희생이 필요하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자존이나 품위를 지키거나 미래의 안전을 도모하는 그런 행위가 아닙니다. 사랑은 실제 무모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위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얘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죄인이라 정죄함을 받은 것은 그들이 그럴듯하게 보일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기독교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물질이 범람하는 서구사회에서 많이 오용되는 단어입니다. 사랑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요한1서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얘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사랑은 대가를 치르고 희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나누는 말씀은 예수님의 가장 위기의 순간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탄원하십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이 항상 말씀하시고 강조하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님에게 사람들은 가장 교묘하고 방어적으로 묻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사마리아는 굉장히 격멸받고 고립된 작은 부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은 보통 생각을 뒤집어 놓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이웃은 내가 무엇인가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관점을 바꿔 길에서 강도만나 상처받고 신음하는 관점에서 누가 그를 도울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누가 바로 상처받은 사람의 이웃으로 행동한 사람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북한 동포들, 골육인 세상에서 가장 헐벗고 소외된 그들이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과연 우리가 누구의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인가요.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기의 길을 떠나서 유산을 탕진하고 헐벗고 굶주린 상태에 놓이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골육의 관계의 의미를 알았기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환영받을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탕자 아들을 바로 뛰어나가서 마중나간 아버지의 마음같이, 잔치를 베풀고 이웃을 초청한 아버지의 심정이 하나님의 심정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를 버리고 떠난 형제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미 교회의 전통 속에서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는 손양원목사님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지금도 그분들은 우리에게 가서 말씀합니다.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다운 삶을 지속하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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