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8일

9월3~8일

[ 가정예배 ] 9.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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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31일(금) 09:36

월-가정예배의 축복
본문 : 출 10:10
찬송가 : 559장
 
과일 중에 석류가 주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 석류는 겉모양이 화려하지 않다. 그런데 갈라서 속을 보면 아주 놀랄만한 아름다움이 있다. 붉은 색깔의 석류 알들로 빈틈이 없다. 최근 우리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생각하면서 교회가 추구하는 영적인 이미지를 그려봤다. 교회의 성공은 가정의 성공이다. 좋은 믿음의 가정들이 꽉 차 있는 교회이다. 석류 한 알 한 알이 빛을 내고 있다. 한 알도 썩은 알이 없다. 한 알도 버릴 것이 없다. 한 석류 안에 수백 개의 알맹이가 차 있다. 한 층을 벗기면 또 한 층이 나온다. 한세대 한세대가 받쳐주고 있는 모습이다. 석류 속에는 틈이 없다. 마귀가 틈탈 공간이 없다. 전부 연결이 되어 있다. 서로 서로를 깊이 의지하고 있다. 이것이 영적인 가정, 영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오늘 본문에 바로는 그 부모와 함께 아이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불가하다고 반대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어른들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어른들만 하나님을 섬기다 그 어른들이 다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정에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아이들이 없다면 교회에서도 다음세대가 끊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될 수 없고 문을 닫고 말 것이다. 사단이 노리는 특급 작전이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하는 가정 운동이 있다. '포커스 온 더 패밀리!'라는 운동이다. 가정에 초점을 맞추라는 운동이다. 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부모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가정은 반드시 그 자녀가 성공하게 되어 있다.
 
성경은 수 천년 전부터 가정의 믿음을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수 천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진리는 가정예배의 유산이다. 아브라함의 가정과 롯의 가정을 보자. 두 가정이 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 롯은 좋은 땅을 차지하고 평지를 가는 인생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가정예배가 있고 롯의 가정에는 가정예배가 없다. 롯의 가정도 하나님을 믿었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벧후 2:7) 성경은 롯을 향하여 의로운 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 앞에 가정의 제단을 쌓지 않았다. 롯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다. 가정예배가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가난할 때도 하나님 앞에 가정예배를 드렸다. 장막을 옮기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다. 아브라함의 성공은 가정예배의 성공이다.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는 가정예배의 차이인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가지 전에 롯의 자녀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추락할 때 함께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은 결코 추락하지 않는다.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가정이 되고, 애굽에 피난을 가서도 승리하며,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가나안 사람들에게 동화되지 않는다. 가정 예배의 축복인 것이다.

<오늘의 기도>
가정예배의 소중함을 알게 하신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에 가정예배가 끊어지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마땅히 아이들에게 행할 길을 가르쳐 알게 하여 가정예배의 좋은 유산이 대물림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판석목사 / 여수안디옥교회

 


 

화-자유하십시오
본문: 시 55:22
찬송가: 268장
 
짐이란 가벼운 짐도 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짐도 있다.
 
첫째, 육적인 짐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의 삶을 살아갈 때에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어떤 사람은 가정 문제로, 어떤 사람은 이웃 간에 문제로 모세에게 나온다. 모세는 그 중한 짐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모세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지도자가 틀림없지만 한 사람 모세에게 수많은 백성들이 맡겨졌다. 그리고는 하루에도 수 십 명씩 모세에게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나온다. 모세의 고민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좋은 해결 방법을 주셨다.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수기 11:17)." 하나님은 모세에게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셨다. 육신적으로 너무 피곤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있는가?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처럼 주님께 맡기시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하시고 우리의 짐을 대신 맡아 주실 줄 믿는다.
 
둘째, 죄의 짐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짐은 죄의 짐이다. 죄는 인간에게 불행, 낙심, 절망, 질병, 죽음을 가져다 주는 원인이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인생은 영원히 절망할 수밖에 없다. 구약시대에는 용서를 받기 위해 반드시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 짐승이 대신 죽지 않으면 속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의 제물을 드려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많은 물질적인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대신 죽고 대신 짐을 지는 일을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지도록 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짐을 대신 지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셨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으며, 오셔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불행의 원인인 모든 죄를 담당하시려고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사실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음을 입고 죄 사함을 받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들이 지고 있는 세상적인 짐들과 우리가 해결 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함으로 말미암아 참 자유를 누리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장현목사 / 옥포새중앙

 


 

수-예수 스타일
본문: 눅 19:1-10
찬송가 : 289장
 
예수님께서 여리고 거리를 걷고 계셨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 때 예수님은 세리장인 삭개오를 보게 된다.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시대에 세리장으로 부자가 되었으니 그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요, 동족을 수탈한 사람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다. 예수님을 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는 키가 작았다. 세리장이고 부자이지만 오늘은 그저 사람 하나 보는 일인데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는지 그는 예수님이 잠시 후에 지나갈 곳을 향해 미리 달려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계속 있으니 이제 예수님이 이 길로 지나가시더라도 잘 볼 수 없을 터…. 삭개오는 나무 위로 올라간다.
 
예상대로 예수님이 그곳에 지나가게 되었을 때 삭개오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은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보셨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는 그 마음을 예수님이 보셨다. 사람이 품은 마음을 예수님은 보신다.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머무시겠다는 말씀은 어떤 이들에게는 시비거리가 된다. 삭개오가 품은 마음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삭개오는 죄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전에 부자 관원이 하지 못했던 일을 삭개오는 해낸다.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으며, 누군가를 속여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겠다는 결심과 약속을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때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다를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 정도면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바가 정확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가 붙잡은 로마제국이라는 정치적 줄을 경멸한다. 그가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것을 미워한다. 분명 삭개오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었고, 그 상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 없었다. 오늘 그에게 나타난 변화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 한 일이다. 그는 정말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본 예수님으로 인해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한다. 예수님을 참으로 만난 이들은 로마 제국 아래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결단한다. 전에는 자신의 치부를 생각도 못했던 그가 이제는 전에 누군가를 속여 빼앗은 것이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이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게 된다. 강력한 힘으로 통치하는 제국이라는 줄을 더 이상 잡지 않고 예수님이 만나주시는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와 같이 자신을 예수님께서 원하는 스타일로 바꾸게 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를 만나 주시는 예수님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눈으로 우리를 보게 하시옵소서. 우리 안에 정한 마음을 주사 불의를 몰아내는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성령 충만한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공훈목사 / 신금호교회

 


 

목-꿈이 넘치는 삶
본문: 창세기 37: 1-11
찬송가: 487장
 
요셉의 꿈에 대한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훈해준다. 꿈은 모든 인류의 이상이며 소망이다. 사람들마다 행복한 꿈이 넘치기를 희망한다. 성경에 보면 꿈이 넘쳤던 분들이 있다. 야곱, 에스겔, 다니엘, 베드로와 같은 분들은 꿈으로 행복한 인생의 보증을 받았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꿈으로 넘쳐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꿈은 미래의 행복에 대한 이상이다. 미래에 대한 이상이 없는 백성은 불행하다. 요셉의 꿈은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과 행복이었다. 이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섭리이다. 공동체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빈곤과 절망에서 풍요와 소망을 안겨 주는 꿈이 있었다.
 
둘째, 신앙 공동체인 가정도 꿈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빛의 꿈을, 절망으로 가득 찬 이웃에겐 희망과 용기의 꿈을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이방 세계에는 소생의 꿈을 각각 안겨 줘야 한다. 오늘 이 시대는 이성으로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성의 빛이 지배하는 세상에 성령의 빛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희망을 안겨 줘야 한다.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 꿈을 안겨 준다.
 
셋째, 꿈이 넘치는 삶은 목표도 분명해야 한다.
 
꿈은 있지만 목표가 없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 꿈은 정신적 세계를 지배하지만 목표는 현실을 지배한다. 소극적인 목표만으로는 행복한 꿈을 실현치 못한다. 만사에 적극적인 꿈을 가져야만 즐거운 인생을 누릴 수 있다.
 
넷째, 꿈이 넘치는 삶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때때로 위기가 닥쳐온다. 요셉에게는 여러 차례의 위기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잘 극복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이 힘은 기도로만 얻을 수 있다. 구하는 이에게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은 꿈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특권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꿈을 주시고, 기도할 때 성령이도우셔서 늘 꿈이 있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않고, 세상의 염려 근심 다 버리고 주님의 꿈만 이루도록 살게 하옵소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함에 조금도 부족함 없는 삶을 채워 주시고 저희의 꿈이 풍성하게 저희의 꿈과 비전이 주님 꿈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범석목사 / 온양영은교회

 


 

금-가장 큰 선물
본문: 에베소서 2:8-10
찬송가: 545장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아직도 가슴 설레이는 기억이 있는가? 우리는 온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자들이다, 선물은 누가 주었느냐가 중요하지만 무슨 선물이냐도 중요하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은혜로 인한 믿음'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실상이 된다.
 
물체가 아니라 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믿음의 선물을 받은 자는 순간 증거가 나타난다.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면 순간 갈증이 없어지듯 믿으면 인생이 달라진다. 생각, 행동, 운명이 바뀌고 꿈이 이루어진다. 믿음이 안경이 될 때, 보이지 않던 하나님을 눈으로 본 것처럼 믿게 된다. 믿음이 현미경이 될 때, 아주 작은 일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믿음이 망원경이 될 때에 멀어서 못 믿을 일이 없을 것이다. 믿음이 지팡이가 될 때에 홍해에 길이 열린다. 믿음이 사랑으로 실천될 때 원수를 불쌍히 여기며 못할 일이 없게 된다. 믿음이 봉사로 드려질 때 이 땅의 작은 자들이 일어나 손과 손을 잡고 힘을 모아 남은 작은 자들을 다 일으킬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이 믿음을 굳게 잡고 산 사람들이 아브라함 요셉 모세 욥이다. 그중 욥의 믿음을 다시 보시기 바란다. 그는 특정인이 아니다. 많이 받았기에 모두 잃은 자리는 너무 컸고 모두를 잃었을 때 고통은 갑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고통의 표현으로 머리를 밀고 베옷을 입고 잿 무더기에 앉아서 회개하며 울고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지 않았으면, 젖을 먹이지 않았으면"이라고 말하며 그 고통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거듭난 욥은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어 가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찬양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자와 같이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믿음 있는 자만이 계속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다. 욥은 바랄 수 없을 때 갑절의 축복의 자리에 서는 주인공이 된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서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이시니라"고 했다. 욥이 아니었으면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었을까. 여러분의 이성, 판단, 경험이 믿음보다 앞서지 않길 바란다. 그러면 살아계신 하나님,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다. 우리는 축구장에서 역전골, 야구장에서 말루홈런이 보장되지 않았어도 응원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믿음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역전골, 말루홈런이 100% 보장된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믿음으로 끝까지 나아가, 은혜로 믿음의 선물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자비로우시며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을 땅 끝까지 증거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믿음의 안경을 쓰고 주님을 보게 하시고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증거로 나타날 때 까지 주님과 함께하게 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숙재목사 / 대곡교회

 


 

토-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본문: 창세기 50:15-21
찬송: 310 장
 
요셉의 인생 가운데 함께 하셔서 일하셨던 사랑의 하나님 모습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를 부르셔서 또 그렇게 일하시길 소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만민에게 생명으로 주시길 원하신다. 요셉을 통하여 보면, 우리도 형제들 간에 우애있게 지내는 일이 중요함을 보게 된다. 배반과 오해, 그리고 고난의 시간. 그 속에서도 요셉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성실과 정직으로 살던 요셉.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며 이 시간 사랑의 하나님은 기억하며 다시 한 번 말씀으로 서길 바란다. 성경에는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우리 가정도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길 바란다.
 
첫째, 죄인을 영원히 미워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앞에서 범죄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미워하지 않으시고, 돌이킬 기회를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신다.(렘 31:3)
 
둘째, 회개하는 자의 죄를 도발하신다.
 
인간이 볼 때 가장 큰 범죄를 행하였을지라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모든 죄가 완전하고도 영원히 사해지는 은혜를 베푸신다.(행 8:22)
 
셋째, 영화로운 자리에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를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옮기시고, 당신의 영화로움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축복을 아끼지 않으신다.(롬 8:30)
 
넷째, 서로 사랑하게 하신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느니라(요일1 3:16)
 
기억하자.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이들을 화나게 하는 요소들이 있다. "하나님 우리의 그런 허물을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한다. 다른 이에게는 인내를 요구하며 나는 인내하지 못하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다른 이에게는 이해를 요구하며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을진데 잘못을 범한 형제를 보면, 여러분에게 해가 된다고 느끼는 대신 참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돕고자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시길 바란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서로 사랑 하는 것, 그것이 거룩이다. 그것이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오늘의 기도>
죄를 미워하시되 죄인을 미워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 때로는 헹져의 잘못을 완전히 용서해 주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주님도 그러실것 같은 어리석을 생각에 죄책감으로 고민하였습니다. 주님! 이제는 자복하는 자의 죄를 도발하시고, 기억도 아니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 고집대로 산 것을 회개합니다. 우리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오늘 하루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광식목사 / 은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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