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7~9월1일

8월27~9월1일

[ 가정예배 ] 8.2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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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24일(금) 13:44

월-영광스러운 메달리스트들
본문: 고전 9:24~27
찬송가: 360장
 
온 지구촌을 열광과 감동으로 몰아갔던 런던 올림픽이 폐막했다. 최종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올림픽에 사용된 금메달의 무게는 400g 정도이다. 이것의 단순 가치는 약 640달러(73만원)정도지만, 경제적 가치는 국가 브랜드 향상, 후원 기업 이미지 재고, 인기도 상승을 고려했을 때 약 2천3백억 원 정도의 값이 된다고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당시 절정에 이른 로마 문화 속에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여러분들도 복음의 경기자요, 신앙의 경기자임을 말하고 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다음과 같이 살아가라고 말씀한다.
 
첫째, 하늘나라의 대표 선수가 되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할 신앙의 경주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을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바울 사도는 생명의 경주자요, 하늘나라 대표 선수의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 표현하면서, 구경꾼으로만 있지 말고 땀과 눈물, 그리고 피 흘리기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가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하여 믿음을 지키고 온 세상을 감동케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스데반 같은 하늘나라 대표 선수로 살아가라고 한다.
 
둘째, 법대로 경주하라.
 
26절의 '향방 없는'의 원어 '아델로스'의 의미는 '지정된, 약속된 선을 벗어난'이라는 뜻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오심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고린도의 성도들에게도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다고 하여 부정으로 대응하는 신앙의 경주를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구금과 구타, 심판을 받기도 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신앙의 선한 경주를 했다.
 
셋째, 상을 받도록 경주하라.
 
고대 올림픽의 선수들은 모두가 사형수, 노예의 신분으로 이들이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된다면 자유인이 되거나 또는 시민권이 될 수 있다. 철학자들은 인생에 성공하는 사람은 세 가지의 에너지를 흘려야 하는데, 첫째는 수없는 땀을 흘려야 하고, 둘째는 수많은 고비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고, 셋째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피를 흘려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상을 얻기 위해 달리는 경기자들처럼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최고의 선수, 금메달 우승자만을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최선을 다한 모든 사람들에게 상을 주기 원하신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예배드리러 온 것인가? 경기에 임하는 선수처럼 하나님 나라의 상과 면류관을 위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경주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이 세상 가운데 보내셔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뜻대로 행하여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게 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호임목사 / 베다니교회


화-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4)
본문: 요 2:1-11
찬송가: 288장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를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하지만 특별히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그렇다. 이 표적에 동참한 하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분명하게 체험하게 되었고, 그들이 믿어야 할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11절에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는 말씀 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마리아는 하인들을 불러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것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았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의 표현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과학적이든지 비과학적이든지, 상식적이든 비상식적이든지 믿으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과학적인 것을 매우 좋아하기에 성경 말씀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죽을 때까지 증명하려해도 증명할 수 없고,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것이 증명되고 이해가 되는가?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 지나가는 태양계가 멈춘 것이 증명이 되고 이해가 되는가?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이 이해가 되는가?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는가? 성경의 모든 것은 신비이다. 그러므로 이해가 안되도, 증명이 안되도 성경 그대로를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절).
 
본문 11절에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표적의 목적 중에 하나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시요, 메시야이심을 제자들에게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표적을 행하신 목적은 능력이 있음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함도 아니다. 오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지신 죄 용서의 십자가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사망권세를 이기신 부활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이 되라. 그러면 구원과 기적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복음을 알게 하시고 복음인 예수님이 믿어지게 하옵소서. 구원의 감격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땅 끝까지 이 복음 전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주환목사 / 석포교회


수-하나님 때문입니다.
본문: 골4:1-9
찬송가: 310장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부자였고, 많은 노예가 있었다. 그에게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많은 손해를 끼치고 도망쳤다. 당시 법으로 하면 도망치다 잡힌 노예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네시모가 편지 한 통을 갖고 돌아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 편지를 읽은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를 자유인이 되게 했다. 사람들이 물었을 것이다. "왜 도망친 노예를 벌주지 않느냐"고. 빌레몬의 대답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하나님 때문에'였을 것이다. 빌레몬이 다른 노예 주인들과 다르게 살았던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 때문이었다.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은 바울 사도였다. 그런데 지금 오네시모가 손에 들고 온 편지가 바로 바울의 편지였다. 바울은 그 편지를 통해서 오네시모를 용서하도록 권면했다. 빌레몬은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는데, 내가 이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하나님 때문에 오네시모를 용서했다. 당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노예를 형제로 대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성경은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행하라고 했다. 당시 로마의 노예 제도 아래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복음이 로마로 들어가면서 노예들도 예수님을 믿었고, 노예를 부리는 주인들도 예수를 믿었다. 노예와 그 주인이 한 교회 안에 있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주인과 노예였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한 형제 자매였다. 바울 사도는 이런 상황에서 노예들에게는 주인을 잘 섬기고, 주인들에게는 노예들을 사랑하라고 권면했다. 결국 주인들이 노예들에게 의와 공평을 행해야 할 이유는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산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하나님 때문에 참고, 하나님 때문에 행동한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 때문에 해야 한다.
 
자기 만족감이나 다른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는 구제는 유치한 행위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행동하기 전에 멈추고 생각하자.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그 때 우리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우리가 모두 등불을 밝힐 때 이 세상은 밝아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랑을 해도 하나님 때문에 하게 하시고, 기도를 해도 헌신과 봉사와 구제를 해도 하나님 때문에 하게 하셔서 세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삶의 동기가 하나님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광우목사 / 양일교회


목-닫힌 뚜껑을 열라
본문: 마 26:6~13
찬송가: 288장
 
본문은 마리아가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께 자신의 향유옥합을 깨뜨려 부어드리는 구절이다. 많은 자들이 그녀의 모습을 보며 화를 내고 비난하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의 지극한 섬김의 모습을 보며 축복하신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 축복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영적인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약자의 편에 서라.
 
예수님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셨다. 예수님은 약자를 사랑하시고 그들의 편에 서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약자란 가난하고 연약한 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하지만 주님 앞에 항상 겸손한 자들이다. 주님께서 낮아진 모습으로 이 땅을 섬기러 오신 것처럼 겸손함으로 주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자, 그런 사람과 예수님은 함께 하시고 축복하신다. 우리 교회는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예수님을 섬기는 비전을 갖고, 실천하고 있다. 성전에서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예배시간이 되면 장애우들의 휠체어를 끌어주어 교회로 인도하며,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이야기 한다.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십대들에게는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기도해주고, 그들의 달란트를 활용하여 마음껏 비전을 펼칠 수 있도록 물질과 장소를 제공해주고 있다.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호흡할 때 주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편이 되어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둘째, 닫힌 뚜껑을 열라.
 
마리아는 향유옥합을 예수님께 부어드려 헌신과 사랑의 향기를 진동케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닫혀있는 옥합의 뚜껑을 열어야 한다. 결단의 뚜껑, 헌신의 뚜껑을 열라! 뚜껑을 여는 행동이 있을 때 그 향기는 드러나게 되어 있고, 주위를 진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당시 향유를 가진 자들은 많이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 부어 드린자는 마리아 뿐이였다. 그렇기에 축복의 이름으로 기록되고 지금도 회고되는 인물이 된 것이다.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주님 앞에 닫혀있는 뚜껑을 열어야 한다. 
 
셋째, 헌신의 때를 잡으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식사하시는 순간에 향유옥합을 열어 부어드렸다. 즉, 헌신의 시간은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령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헌신하라. 헌신의 때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내가 잡고 쟁취하는 것이다. 그 헌신은 바로 축복이 되어 우리들의 삶을 풍요케 하는 놀라운 비밀이 되는 것이다.
 
넷째, 비방하는 자들의 소리에 흔들리지 말라.
 
헌신하고 열심히 섬기는 모습을 비방하는 자들은 어디에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비방하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려 헌신을 멈춘다면, 그건 이미 헌신할 마음이 없던 자이다. 나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예수님과 믿음의 지체들를 기억하고 그들에게 집중하라. 예수님도 그런 우리들에게 집중하여 축복하신다.
 
<오늘의 기도>
주님 앞에 나의 닫힌 결단과 헌신의 뚜껑을 열어 향기로운 사람으로 세워지게 하시며, 헌신의 때를 놓치지 않고 잡아 축복의 주인공으로 세워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선범목사 / 효자천성교회


금-예수님처럼 감사합시다
본문 : 살전 5:18.
찬송가 : 429장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은 감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삶의 속력을 내는 것은 현재 내 삶이 얼마나 감사로 채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낡은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은 감사가 없는 것이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마음이 굳어져서 무지하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으셨으나 감사가 충만하셨다. 예수님은 어떻게 감사하셨을까?
 
첫째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에 감사하셨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요 6:11)." 여기서 축사하신 것은 감사를 드렸다는 것을 말한다. 어린 아이의 손에 들려있던 오병이어는 예수님이 해결해야하는 오천명이라는 사람에 비해서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그 작고 보잘것없는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는 역사가 일어났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감사는 크고 놀라운 것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셨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나사로의 죽음을 보며 생각했다. 예수님이 사랑했던 자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 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우리는 간혹 장애물을 만나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기 쉽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심을 믿는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절대적인 믿음으로 감사기도를 드리신 예수님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불러내신 것이다.
 
셋째로, 예수님은 죽음의 날에서도 감사하셨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마26:27)."
 
'사례하시고'라는 말은 '유카리테스'로 감사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로 축복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장래 있을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상의 감사를 드린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감사는 영어로 'Thank you'인데 'hank'는 'think(생각하다)'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감사는 반드시 '생각'을 선행하게 된다. 예수님의 감사처럼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내 생각과 마음이 온전히 드려지는 감사는 기적을 가져온다. 이러한 기적을 우리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속에서 늘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예수님처럼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근심 걱정과 염려로 감사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덕자목사 / 비전교회


토-그물이 찢어지도록 
본문 : 눅 5:1-11 
찬송가 : 540장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솔직히 한번쯤 맞고 싶은 벼락이 있다. 돈 벼락이다. 구두를 수선하고 다니던 한 사람이 일억 원의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너무 기뻐하며 이젠 구두 수선은 그만 두겠다면서 수선통을 한강에 내던져 버렸다. 하지만 집에 가서 보니 수선통에다가 당첨된 복권을 넣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충격으로 죽어 버렸다. 복은 그렇게 받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말씀은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베드로와 동료들이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게 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 속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복을 받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짜 복을 받아야 한다. 진짜 복을 받으려면?
 
첫째, 오늘 내 인생의 배에 오신 예수님을 모셔야 한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디에 고기가 있는 정도는 손바닥 보듯이 훤한 베드로와 동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수없이 그물을 던져 보았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날이 샐 무렵 이른 아침 시몬과 그 동료들은 처진 어깨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수많은 무리들에게 가르치시던 예수님이 시몬에게 말씀한다. "저 사람들을 보아라. 도무지 이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가 어렵겠다. 네 배가 필요한데 빌려주지 않겠니?" 지친 상황에서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자신의 배에 모시게 된다. 빈 그물이 찢어지도록 넘치는 물고기를 잡는 축복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주저하지 마라. 다음 기회로 미루지 마라. 
 
둘째, 주의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온다. 말씀을 많이 들을수록 믿음이 자란다. 베드로는 예수님 곁에 가까이 함께 배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천국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들었다. 그것이 축복의 시작이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한다. "깊은 데로 가라 거기서 그물을 던져라." 사실 고기 잡는 데는 예수보다 베드로가 더 선수이다. 하지만 그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순종한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했다.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믿겠습니다'란 뜻이다.그리고 순종했다. 이게 믿음이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됐다.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믿는 자에게 진짜 복이 있다. 듣기만 하고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믿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축복의 맛을 누릴 수 없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 5:6)."
 
<오늘의 기도 >
하늘의 큰 은혜와 복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물질 만능에 사로잡혀 사는 저희들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심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을 내 인생의 배에 모셔 들이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함으로 그물이 찢어지는 하늘의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수훈목사 / 동빙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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