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곳을 찾아서 III - 광야로 내몰린 사람들

소외된 곳을 찾아서 III - 광야로 내몰린 사람들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빈민선교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02일(월) 12:07

최종률 장로의 빈 방 이야기 <24>

증언의 공연사역에서 또 하나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것은 가난과 술,질병과 사업 실패 등으로 주류사회에 속할 수 없어 속수무책 문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선교하는 일이다. 물론 빈민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계신 목사님들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사역이다. 어찌 보면 하루하루의 생존이 절박한 도시빈민들에게 무슨 호강이라고 한가하게 연극 구경이냐 하면서 마음을 닫아 버리면 자칫 공연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그분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음식을 미리 제공하거나,양말,내복 등 생활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선물을 준비하는 일 등이다. 뿐만 아니라,무대 배경도 그들과 동떨어진 환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삶의 무게에 짓눌려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소외계층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위화감이나 적대감 대신 동류의식을 느끼게 되어 점차 마음을 열고 극에 동화되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80년대만 해도 갈월동처럼 큰 역을 끼고 있는 곳이나 경기도 일원에 일용잡급직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시설이 여럿 있었다. 실비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우리는 그런 곳을 찾아 고단한 삶과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이들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했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노천예배를 드린 후 공연을 갖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연할 때면 으레 산만한 분위기 때문에 집중이 안돼서 배우들이 평소보다 연기하기가 훨씬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의 어두운 영혼에 소망의 복음을 심는 일은 너무도 소중하다.
 
한 번은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 부랑자와 노숙자들과 행려병자들을 보살피며 섬기는 어느 교회에 초청을 받고 설 명절에 공연을 간 적이 있다. 골목을 꺾고 돌아서 겨우 찾은 교회는 교회라기보다는 판자로 대충 엮어놓은 창고에 가까웠다. 교회 이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광야교회'. 정말 이름 그대로 삭풍이 불고 엉겅퀴가 구르는 메마른 땅이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화장실 쪽에서 봉사자들이 데운 물로 부랑자들을 목욕시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담임 목사님의 안내를 받아 목양실로 들어가 보니,손바닥만 한 골방이 성경주석과 같은 신앙서적들 대신 온통 박스들로 채워져 있었다. 초청을 받고 들어오는 노숙자들이 떠드는 소리로 예배실은 금세 시끄러워졌다. 교회에서 준비한 떡국을 배불리 먹은 후,'해 돋는 골목길' 공연이 시작되었다. 관객 중 상당수는 교회로 오기 전부터 이미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정부리는 소리로 공연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분장을 하기에도 좁은 목양실에서 나는 연출자로서 배우들에게 특별한 주문을 했다. "오늘은 강털보의 대사와 술집 장면의 대사들을 대본대로 하지 말고,가능한 한 거친 욕설을 섞어서 하도록." 배우들이 반신반의했다. "정말요?" "정말이야. 이 사람들의 언어,이 사람들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주자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으로 끌어들이기가 어려워져."
 
그날 배우를 겸했던 나는 태어나서 가장 심한 육두문자들을 쏟아냈고,배우들도 거친 연기로 뒷받침을 했다. 그래서 그랬던지 처음에는 배우들 대사보다 큰 소리로 떠들던 취객들도,무전기처럼 큰 초창기의 핸드폰을 들고 자랑하듯 통화를 하던 건달도,조명을 담당한 남자 스태프에게 치근거리며 달라붙던 술 취한 거지 아주머니도,극의 중반부터는 몰입하기 시작했다. 광야의 사람들 가운데 감동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최종률장로 / 연극연출가ㆍ배우ㆍ한동대겸임교수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